남편 어린 두 딸 앞에서 공개총살된 세기의 미녀 우인희 사건
2614 0 4
주성하 2020.05.19 14:12

오늘 시간엔 북한 사람들에겐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사건, 북한 최고의 미녀 톱스타 여배우가 남편과 두 딸 등 가족이 맨 앞에 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숱한 사람들 앞에서 공개총살당한 사건을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요즘 최고의 여배우가 누구입니까. 각자 다르시겠지만, 어쨌든 여러분들이 제일 좋아하고 바로 떠올리는 그 미모의 여배우가 가족과 동료들 앞에서 공개 총살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상상조차 안 되죠. 그런데 북한에선 실제 그런 일이 있었고, 현장에서 직접 본 탈북민만 제가 알건대 한국에 4명이 있습니다.

처형된 여배우의 이름은 우인희였습니다. 1960년대 성혜림이란 당대의 톱스타가 등장했는데 김정일이 유부녀에 딸까지 있는 그녀를 빼앗아 김정남을 낳은 사실은 잘 아시죠.

성혜림의 뒤를 이은 1970년대 북한의 최고 톱스타가 우인희였습니다. 우인희를 보았던 사람들의 그의 미모가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라고 말하고, 연기도 너무 잘했답니다.

한국에도 1970년대 후반부터 정윤희, 장미인, 유지인이라는 미녀 트로이카 시대였고, 지금도 정윤희가 최고라는 분들을 적잖게 봤는데 그 시절 북한의 원톱은 우인희였습니다.

그녀는 왜 죽었을까요. 1980년 2월 평양시 중심부에 장관들만 사는 최고급 아파트, 북한에선 ‘상아파트’라고 불리는 그 아파트 주차장 승용차에서 두 명이 나체로 발견됐습니다. 남자는 죽었고, 여자는 병원에 가서 살았습니다. 그 여인이 우인희였습니다.

죽은 남자는 일본 조총련 거부의 아들인 주정기라는 사람입니다. 아들이 하도 난봉질을 하니 아버지가 북한에 아들을 보내 사람 좀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북에 온 주정기는 조선중앙방송 기술부장이 됐습니다. 

김정일이 당시 텔레비전을 통한 세뇌의 중요성을 알아서 투자를 하고 싶은데 돈이 없었죠. 그래서 아들을 중앙방송 기술부장에 앉히고 일본 부호에게 엄청난 신형 방송장비를 바치게 했습니다. 덕분에 아들은 상아파트에 살며 자가용 승용차를 몰았고, 매달 엄청난 돈을 술과 유흥에 썼습니다.

이 주정기가 당대의 톱스타 우인희를 보고 반해서 스폰을 자처해 비싼 옷을 사주며 유혹한 끝에 둘이 불륜이 났습니다. 2월이면 추우니 자가용차에서 시동을 켜고 온풍기를 켜고 성관계를 하고 잤는데, 가스가 새어 나와 둘이 질식했죠.

사실 우인희는 남녀관계는 그리 정숙하진 않았다는 소문은 있는데, 제가 계속 말씀드리다시피 북한은 권력형 성범죄가 아마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과 한국에서도 미투운동 시작되니 경악할 일이 많았는데, 하물며 북한은 권력자가 자기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언론도 당에 장악돼 있고, 인터넷도 없고 어디가 고소할 데도 없고, 사실이 알려지면 여자만 손가락질 받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인희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영화 관계 권력자들이 치근덕거렸죠. 오죽하면 하루는 우인희 사생활을 비판한다며 사상투쟁회의를 열었는데, 우인희가 그 자리에서 “나랑 자겠다고 말하지 않은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라” 했답니다. 월북한 원로배우 추석봉 하나만 손을 들었답니다.

우인희가 병원에 실려 간 것도 모를 때에 갑자기 평양에서 하루는 영화·예술·방송 관계자, 기타 중앙기관 일꾼들을 태워 버스로 강건군관학교 사격장에 데리고 갔습니다. 평양사람들은 행사복 치마저고리 사무실에 늘 갖고 있는데 화려한거 입지 말라는 말만 하며 그냥 태워갔죠.

말뚝이 있고, 제일 앞에 우인희 남편이자 당대 최고의 연출가인 류호선, 두 딸을 앉혀놓았고, 그 뒤에 영화 관계자들 앉히고 제일 뒤에 다른 중앙기관 일꾼들 앉혔습니다.

모두들 왜 여기 왔는지 어리둥절할 때 갑자기 갱생 승용차 두 대가 오더니 한 차에서 우인희를 끌어내 말뚝에 묶었습니다.

한 목격자는 당시 그녀가 진한 자주색 스웨터에 곤청색 바지를 입었고, 카트 머리가 바람에 날렸는데, 늘씬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고 하더군요.

죄명이 낭독됐는데, 오랫동안 바람을 피워 많은 가정을 파탄시키고 어쩌고 한 뒤 반당반혁명분자로 사형에 처한다고 선고하더랍니다.

그러더니 우인희의 입을 수건을 막고, 7명의 군인이 나와서 AK 47로 각자 한 20발씩 쐈다고 합니다.

남편은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고, 두 딸은 공포에 떨고 있었죠. 100발 넘게 맞았음 어떻게 됐겠습니까.

몸만 죽은 게 아니라, 북한이 잘하는 기록 말살형에도 처해졌습니다. 그가 나온 모든 잡지, 출판물에서 얼굴이 도려내졌고, 심지어 그가 출연했던 수십 편의 영화들까지 여주인공을 바꾸어 모두 다시 찍게 했습니다.

저희 집에도 검열단이 와서 집에 있던 달력과 화보에서 우인희 얼굴 찢어갔다고 합니다. 북한만 가능한 짓이죠. 그래서 우인희 얼굴은 유감스럽게 남아있지 않습니다.

우인희는 김정일의 지시로 죽었습니다. 여기까지는 팩트입니다.

사람들은 “아니 바람 한번 피웠다고 이렇게 잔인해도 되냐”고 경악했습니다. 그럼 김정일은 왜 죽이라고 했을까요. 그건 미라가 된 본인만 알겠죠. 그러나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김정일이 자기와 잔 우인희가 딴 남자와 정사를 나누다 발견됐다니 화가 나서 죽였다는 겁니다.

솔직히 문화예술부분을 지도한다며 성혜림이 뺏어 살고, 고용희는 물론 당대의 숱한 여자들을 건드린 김정일이 최고의 톱스타를 안 건드렸겠습니까. 개가 고기보고 참는 거 봤습니까.

게다가 우인희가 불륜사건 조사과정에서 “장군님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는 말도 돌았습니다. 자기와 관계가 드러날까 봐 입을 막느라 죽였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 국민의 사랑 받는 여배우를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겠습니까.

북한은 나중에 남편까지 불러내 반성문 쓰고 토론하라고 했는데, 남편이 “잘 죽었습니다”고 했답니다. 그리고 남편과 딸은 지방에 추방됐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런 경악스러운 북한에서 태어나 살다 왔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김 씨 일가 찬양하는 인간들을 보면 눈에서 불이 나옵니다. 북한 독재정권이 무너지면, 우리는 우인희 처형을 능가하는 수많은 경악할 내용을 접하게 될 겁니다. 억울한 원혼들이 편히 잠들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랍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혜림 05/19 15:35 수정 삭제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김정일이 자기와 잔 성혜림이 딴 남자와 정사를 나누다... => 우인희 말씀하시는 거죠?
댓글달기
박혜연 05/19 20:59 수정 삭제
우인희는 1959년도에 춘향전에 출연한게 전부였고 세동서나 한자위단원의 운명등에서는 출연한적이 없는것으로 밝혀졌답니다~!!!!!
댓글달기
박혜연 05/19 21:01 수정 삭제
우인희에 대한 첫 기사는 1983년도에 나왔답니다~!!!!! 그것은 바로 미그기타고 귀순한 고 이웅평씨를 통해서요~!!!!!
댓글달기
박혜연 05/20 23:19 수정 삭제
주성하기자님 저 우인희사진을 봤는데요? 별로 안 예뻤구요~!!!! 오히려 우리나라의 여배우들이 훨씬 더 미인들이었어요~!!!! 몰라도 한참몰라~!!!!!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