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 본 한국물건 그건 하필 귀순삐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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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5.27 18:07


유튜브 하면서 너무 진지한 모드의 뉴스만 계속 했는데, 가끔 제 얘기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북에 있을 때 겪었던 많은 이야기 중에 한국 삐라 주어보던 일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도 어릴 때 삐라 주어서 본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그 삐라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태풍을 타고 바다로 온 것이거든요. 신기하죠. 저도 어떻게 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시작할건데, 주성하TV는 구독, 좋아요도 좋지만 끝까지 시청해주시면 더욱 힘을 얻습니다.

제 고향은 멀리 북쪽의 어느 외진 어촌마을입니다. 자랄 때 집 앞에 20m 정도 폭의 백사장이 바로 있었고, 그다음에 파도가 치는 해변이죠.

그 집에서 자라면서 별 일을 다 겪었습니다. 해일이 들어오는데, 수십 미터나 수직으로 섰다가 확 밀려 들어와서 집안이 물에 잠긴 적도 있고, 한번은 러시아 쪽에서 밀려온 얼음에 바다가 다 얼어서 바다를 걸어서 몇 천 미터씩 나간 적도 있습니다.

7살에 학교에 들어가니 또 간첩을 막는다면서 백사장에 개우리를 짓게 하고, 거기에 집에서 기르던 똥개들을 밤에 가서 묶어놓고, 아침에 풀어오고 그런 짓도 했습니다.

저는 기억이 날 때부터 바다에서 뛰어놀았습니다. 특히 여름에 태풍이 오면 저의 피는 끓었는데, 높은 파도가 휘감기는 곳까지 흰 거품이 이는 파도를 가르며 정신없이 나가곤 했죠. 그리고 파도에 휘감겨 물속에서 몸이 휙휙 돌아가고 정신이 아찔해지는 듯싶은 순간 백사장에 몸이 팽개쳐지고, 그런 짓을 하며 놀았습니다. 이건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그 재미 다 알길 없을 건데, 제 어린 친구들은 다 그렇게 자랐습니다.

‘바닷가에 어린 아이 내놓은 심정’이란 속담은 우리에게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매번 태풍이 오면 바닷가 마을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놀았지만 바다에 빠져 죽은 아이는 없었죠. 오히려 도시에서 온 어른들은 해마다 몇 명씩 바다에 빠져죽기는 했습니다. 바닷가 마을 부모들도 아이들이 바닷가에 노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인민학교 1~2학년쯤 되던 해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태풍이 왔다 간지 이틀 정도 지나서였는데 파도는 여전히 진정되지 않고 있었는데, 여느 날처럼 저는 바다에서 놀다가 문뜩 파도에 이상한 종이가 떠다니는 것을 봤습니다.

“뭔 종이가 물에도 빠지지 않고 떠다니지” 하는 생각이 들어 헤엄쳐 다가가 종이를 집어 들었는데, 그게 바로 한국에서 바다를 타고 온 삐라였습니다.

저는 “태어나 처음으로 본 한국 물건이 무엇입니까”하고 누가 물었을 때 삐라라고 대답할 겁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바다에서 무엇인가 주었을 수도 있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고, 기억 속엔 그 삐라가 첫 한국과의 만남으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 내용은 40년 가까이 지났지만 너무 생생하게 남아있어 저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만큼 삐라가 충격이었던 것이죠.

어린 나이지만 그때도 남조선은 나쁜 놈이라고 충분히 배웠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러니깐 지금도 기억이 나는 5살 즈음부터 영화관이나 TV에서 영화를 보면 “엄마 어느 게 조선이야?” “어느 게 미국이야?”하고 물었는데, ‘조선은 긍정인물’, ‘미국은 부정인물’이라는 이분법이 그때 벌써 머리에는 확실히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남조선은 미국놈의 앞잡이인 괴뢰군”이라는 말쯤도 그때 할 줄 알았죠.

그런 제가 남조선 글씨로 쓴 삐라를 주었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리고 그때 벌써 삐라는 몰래 봐야 한다는 것을 알아서 두근거리면서 팬티 안에 삐라를 숨기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때에야 삐라를 자세히 봤습니다.

4절지 크기의 삐라의 앞면에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귀순용사들” 이렇게 적혀 있고 사진  4~5장이 실려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명동 거리 같은데, 5~6명의 양복을 빼입은 남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서 있는 사진. 젊은 여성과 어깨동무한 채 앉아있는 사진 등등이 있었고 거기에 귀순하면 상금 몇 억을 준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얼굴에 색칠을 많이 한 여자는 본 적이 없었는데, 착한 분위기가 전혀 풍기지 않는 무슨 요물들 같았습니다. 얼굴도 못 생겨 보였는데, 그때까지 제가 아는 미녀는 둥글고 복스러운 얼굴인데 삐라에 실린 여자는 턱선이 뾰족한 것이 무슨 여우처럼 생겼더군요.

삐라에 실린 귀순자들을 보면서 “음, 그러니깐 이게 미국 놈들에게 도망친 역적놈들이구나” 이런 생각도 했죠. 얼굴에는 미소를 지었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도 미국 놈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총칼로 억지로 시켜서 지은 억지웃음 같기도 했습니다.

“이제 미국 놈들이 비밀을 다 뽑아내고 선전용으로 실컷 부려먹다가 죽여버리겠지”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았습니다. 삐라 뒷장을 보니 “귀순시 지켜야 할 안전수칙”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었습니다.

총 6장의 사진으로 구성된 해설서였는데 첫 번째 사진은 어둠 속 갈대밭 사이로 38선이라는 팻말이 서있고 AK-47 자동총을 멘 인민군 복장의 병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림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례로 지뢰밭은 어떻게 넘고 전기철조망은 어떻게 넘는지 설명한 뒤 국군 앞에 북한군 병사가 두 손을 들고 있는 사진 아래 “우리 지역에 와서 ‘나는 귀순용사다’하고 소리치면 병사들이 성의껏 마중하고 잘 안내해 줄 것”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삐라를 들고 집에 들어가서 아버지에게 이런 걸 주었다고 주니 아버지가 대충 읽더니 “너 어디 가서 이런 걸 주었다고 절대 말하면 안 된다. 그럼 널 붙잡아간다” 하시고는 얼른 재떨이에 그 삐라를 올려놓고 불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 놈의 삐라가 불이 안 붙습니다. 한참 휘발유 라이터를 들이대고 있자 마지못해 타들어갔는데 그것도 새까맣게 변하더니 돌돌 말리며 타들었고, 다 타서 재가 돼도 글씨가 보였습니다. 그게 북에서 말하는 수지종이였죠.  재를 손으로 비벼보며 “세상에는 이렇게 좋은 종이도 있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삐라 내용은 탈북할 때는 물론 지금도 제 머리 속에 있습니다. 대학 시절에 이곳에서 더는 살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때도 삐라가 늘 떠올랐고, 두만강을 넘을 때도 떠올랐습니다. 중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이제 청년이 된 저는 그 삐라 내용을 떠올리며 “갈대밭을 헤쳐야 가는 줄 알았던 남조선을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가다니”하며 감개무량했습니다.

그 삐라는 어떻게 파도를 타고 수백㎞나 왔을까요. 그때 벌써 한국 심리전단의 삐라 살포 기술은 매우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이상 오늘은 제가 태어나 처음 봤던 한국 물건, 그게 하필이면 귀순하라는 내용의 삐라였다는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종원 06/02 18:53 수정 삭제
안녕하세요? 주기자님께서 쓰시는 글은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매번 눈팅만 하다가 글 올립니다 주기자님 글 뿐만 아니라 탈북민들의 글도 많이 찾아서 읽는 편인데... 재미있는건 남.북의 언어습관 차이인거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남한은 일키로, 이키로 하는데 북한은 한키로, 두키로 하는것. 또 남한은 못 올라간다, 못 먹어봤다 하는데 북한은 올라 못간다 먹어 못봤다 합니다. 이글에서는 "주었다"가 이렇게 지적질(?)을 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주었다"는 누구에게 뭘 준(give) 것이고 삐라를 습득 한것은 "주웠다"가 맞습니다 여러군데서 비슷한 사례들을 보다가 참고하시라고 올립니다 핸드폰에서 작성하느라고 오타및 띄어쓰기등 맞춤법에 오류가 많을것 같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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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 06/02 18:55 수정 삭제
맟춤법 지적하면서 맞춤법 틀린걸 양해해 달라니 좀 뻘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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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운 06/06 04:39 수정 삭제
아마 바쁘시게 글쓰다보니 오타아닐까요?? ㅋㅋ
어디서 이런걸 주웟다고 말하지 마라. 저같으면 알면서도 쌍 시옷대신 시옷으로 썻을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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