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를 태연히 맞아준 인천공항 출입국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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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6.28 11:31


지난 시간 장춘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입국하던 이야기 들려드렸는데, 이야기 하다가 중간에 뚝 끊으면 실망하겠죠. 오늘은 인천공항에서 합동조사기관까지 오던 과정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 몇 시간 동안에도 여러 차례의 놀람과 실망이 교차했습니다.

제가 인천공항에 딱 내리니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가만 살펴보니 제가 탄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다 한 방향으로 가고,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무작정 따라갔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비행기 탈 때 출국 수속, 구독 수속이란 것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장춘공항에서 한국까지 타고 온 비행기가 제가 타본 첫 비행기였습니다. 북에 있을 때 비행기라는 것을 타면 어떤 느낌일까 정말 몹시 궁금했고, 죽기 전에 비행기를 한번 타보기는 할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소원을 이뤘는데, 너무 긴장해서 기내 서비스도 받지 못하고 솔직히 너무 불안하게 왔습니다.

내려서 안도감이 제일 컸지만, 동시에 각종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중국에선 남조선 사람 한번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인천 오니 여기저기 다 남조선 사람이었습니다.

냄새와 말투부터 확 다른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러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화장실이 보여서 전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브로커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느라 들어가 위조여권을 찢어 변기에 버리고 좀 기다리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왔는데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인천공항 통로가 오죽이나 깁니까. 계속 가니까 이거 어디까지 가야하지 도대체 이 끝엔 뭐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와보니 그때에야 사람들이 출입국 심사대에 쭉 줄을 서서 여권 제시하고 도장 찍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권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다 빠지길 기다렸다 인적이 없을 때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려고 뒤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줄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계속 몰려와 줄을 서 있는데, 거기에 가서 제가 북에서 왔다 이러면 다들 놀라서 큰 소란이 벌어질 것 같았습니다.

한참 기다리니 그나마 사람들이 좀 없길래 그때 딱 가서 용기 내서 출입국 사무소 직원 앞에 섰죠. 여권 안주고 서 있으니 올려다보는데, 그때 “북조선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렇게 말하면 그 직원이 깜짝 놀라 입을 벌리고 굳어졌다가 경찰을 부를 줄 알았습니다. 2002년 봄만 해도 탈북자들이 많이 오지 않을 때였거든요.

그런데 이 직원의 반응에 제가 더 놀랐습니다. 전혀 놀라지 않고 찬찬히 살펴보더니 침착하게 누군가 부르더군요. 그 반응이 너무 태연해서 제가 오히려 놀랐습니다. “아니, 북조선에서 인천까지 비행기타고 왔다는데 놀랍지도 않아” 이런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 “나는 죽을 고비 엄청 헤치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태연한 것을 보니 여기로 매일 탈북자들이 밀려드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색하게 있는데 직원이 부른 사람이 왔고, 귓속말로 소곤소곤 이야기했습니다. 새로 온 사람이 저보고 따라 오라고 합니다. 가니 어떤 방에 데리고 가더군요. 방이 두 칸인데, 사람들이 몇 명 있는 방을 지나 조용한 안쪽 방에 데리고 갑니다.

“어떻게 왔냐. 뭘 타고 왔냐. 여권은 어떻게 했냐. 북에서 뭘 했냐” 등을 물어보더군요. 저는 그때 한국에 가도 제 신분은 증명해야 한다고 해서 북한 증명서 하나 갖고 왔습니다. 김일성대 명의 도장도 잔뜩 찍혀 있는 겁니다.

대답을 하면서 그걸 딱 주니까 쓱 봐요. 좀 있다가 이 사람이 조사한 내용을 갖고 이쪽 방에 가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군요. 이 한마디는 확실하게 들렸습니다. “간만에 쓸만한 사람 하나 온 것 같습니다” 이러는 겁니다. 그 사람이 공항 직원인지 공항 주재 국정원 직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인천공항에서 저를 만났던 분이 혹시 이 유튜브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옆방에서 들리는 그 말을 듣고 저는 정말 안도했습니다. “아, 나는 한국에서 쓸만한 사람인가보다” 싶어 자신감이 확 들었거든요. 전화를 걸고 그 사람이 다시 들어와 서울에서 마중 올 거니 기다리라고 합니다. 한 두세 시간 걸렸나. 누가 와서 가자고 합니다.

따라 가는데 “인천공항 엄청 멋었죠?”라고 하는 묻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화장실이 멋있는 것은 봤고, 엄청 긴 통로에 번쩍번쩍 대리석이 깔린 것도 봤는데 공항을 전체로 보진 못했습니다. 공항 좀 돌아봐야 멋있는지 아닌지 알겠는데, 그리고 대리석 복도는 중국에서도 봤으니 그냥 “네, 네”하면서도 속으로 “남조선에선 이 정도가 자랑거리인가”하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인천공항 정말 많이 다녔고, 해외공항도 많이 다녀봤는데 이제는 압니다. 인천공항이 정말 세계적으로 탑이라는 걸 말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죠. 커튼이 쳐진 소형버스를 타고 서울 조사기관까지 들어왔는데, 요원이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오니 어두워졌는데 서울 거리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커튼 살짝 밀고 밖을 보니 요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커튼 걷지 마세요”라고 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아직 조사를 받은 몸은 아니지만, 설사 간첩이라도 서울에 처음 온 손님인데, 그렇게 야박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커튼 걷지 않아도 창밖에 건물들과 교통체증으로 꽉 찬 차들이 보였습니다. 여의도에서 KBS라고 쓴 빌딩을 지날 때는 반갑더군요. 제가 중국에서 봤던 티비가 저기서 만들어지는구나 싶어서 말입니다.

여의도까진 올림픽대로를 타고 왔는데, 그때 저기 건너편에 가로등이 쭉 늘어선 것이 뭔지 진짜 궁금했습니다. 어두워서 옆이 한강인 줄은 모르고 논밭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논밭의 저쪽 끝에 쭉 가로등이 늘어섰으니 이해가 안됐죠. “여긴 밭에도 저렇게 불을 환하게 켜고 있나. 왜 그러지”라고 조사기관에 들어가서도 궁금했습니다.

조사기관에 도착하니 입고 온 옷을 다 벗게 하고, 운동복, 칫솔 등 세트로 주더군요. 감옥 들어갈 때와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때부터 20일간의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저는 탈북한 뒤 중국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한국에 간 탈북민이 1200여명이란 이야기 들었습니다. “나는 1500번째 안으로 가야겠다” 마음먹었지만, 도중에 북송돼 고초를 겪는 등 사연이 있어 늦게 왔습니다. 제가 와보니 저는 2000 몇 번째였습니다.

“너무 늦게 왔구나. 2000명씩이나 왔으면 내가 할 일이 남아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한국에 탈북민이 3만5000명이나 올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는 거의 상위 5%안에 들 정도로 빨리 온 셈입니다. 지금 왔으면 정말 할 일이 남아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인천공항에서 조사기관까지 제 입국 스토리 말씀드렸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ㅇㅇ 10/10 06:12 수정 삭제
말투가 담담해서 참 읽기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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