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IT 발전에 기여한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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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19.03.02 15:37


북한의 IT 역량은 외부의 지원으로 급성장했다. 북한의 IT 관련자들에게 물어보면 북한 IT 외화벌이의 1등 공신을 삼성전자로 꼽는 경우가 많다.

북한 IT 인력의 해외 진출은 2000년 삼성전자가 대북 사업의 일환으로 조선컴퓨터센터(KCC)와 손을 잡고 중국 베이징(北京)에 세운 ‘남북 소프트웨어공동개발센터’를 시작으로 본격화됐다. 삼성전자는 당시 73만 달러를 투자했고, 북한 KCC 인력 10명이 베이징에 나왔다. 이것은 시초일 뿐, 2004년쯤에 이르렀을 때 삼성전자가 투자한 돈은 325만 달러를 넘었다.

중국에 나온 북한 IT 기술자들도 늘었다. 이들은 이때에야 해외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해 팔면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해외 업체와 일하는 노하우도 적지 않게 익혔다.이때 삼성전자의 혜택을 입고 해외에 나온 인물 중에 바로 앞서 이야기한 정성화 대표도 있다.

2009년 남북한 합작으로 세운 평양과학기술대 인력들도 북한 IT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북한은 과거에는 IT 분야에서 금성학원 졸업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했지만 이제는 금성학원 출신과 과기대 출신 등으로 구분된다.

소식통에 따르면 과기대 출신들은 웹, 모바일, 데스크탑, 크랙(복사방지나 등록기술 등이 적용된 상용 소프트웨어의 비밀을 풀어서 불법으로 복제하거나 파괴하는 것) 등 전문분야를 갖고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다.

워낙 이들은 기초과학 실력뿐만 아니라 영어 실력도 있어 해외에 파견돼 돈을 버는데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 과기대 측은 졸업생들은 해커로 활동하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과기대가 이를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분명 이들 중에는 해커도 있을 것이라 보는 것인 유력하다.

최근 2~3년 동안 북한 내부의 인터넷 환경이 좋아진 것도 IT 역량의 급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현재 북에는 수백 회선의 인터넷 망이 들어가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내부에서 자료를 다운 받는 속도는 중국보다 더 빠르다고 한다. 다만 정보 노출 우려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 직접 해킹은 하지 못한다.

과거 북한은 IT를 통한 외화벌이를 하려면 중국에 나오는 방법밖에 없었다. 또 중국에 나와서도 같은 팀 중 몇 명만 인터넷 접속이 허용됐다. 하지만 지금은 대다수 IT 인력들에게 북한에서 인터넷 접속을 허용했다. 즉 북에 앉아서 외부에서 수주한 프로젝트 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 내부에선 감시 프로그램을 깔아 어느 사이트에 접속했는지를 파악하기 때문에 한국 사이트 등 민감한 사이트엔 접속을 못한다.


보위부를 경악시킨 내나라망 사건

북한의 인터넷 개방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인터넷 관련해 가장 특기할 사건은 2006년 일어난 ‘내나라망’ 사건을 들 수 있다. 이는 북한 IT 관련 하나의 큰 사건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조선컴퓨터센터(KCC)’ 소속 내나라망관리센터가 운영했던 인트라넷 사이트 내라라망은 1996년에 개설된 북한 최초의 홈페이지였다. 게시판 형식의 이 사이트에 2006년 한 누리꾼이 “내나라망 개설 10주년 기념일에 평양체육관에서 네티즌의 체육경기를 발기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북한에서는 누리꾼을 네티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10주년 기념일 당일 평양체육관에 무려 300여 명의 누리꾼이 모였다. 북한판 플래시 몹(flashmob·불특정 사람들이 특정 장소에 모여 깜짝쇼를 벌인 뒤 흩어지는 행동)인 셈이다. 이날 모였던 이들은 말이 누리꾼이지, 따지고 보면 평양의 ‘오렌지족’이라 할 수 있다. 당시엔 어느 정도 경제력 있는 집에만 컴퓨터가 있었기 때문이다.이 사건은 북한 보위부를 깜짝 놀라게 했다.
북한에선 당국이 허가하지 않은 모임을 엄격히 금지한다. 평양은 더하다.남한에서 타종(打鐘) 행사를 한다고 새해 첫날 종각 일대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처럼, 한때 북한에도 신정 때마다 김일성광장에 나와서 인민대학습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문화가 확산돼 김일성광장에 자연발생적으로 모이는 사람 숫자가 점점 많아지자 보위부는 만일의 사태를 우려해 강제로 해산시켰고, 다시는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런 체제에서 건전치 못한 회색분자로 볼 수밖에 없는 청년들이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이용해 300여 명씩이나 삽시에 모이니 정말 묵과할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더구나 평양체육관에서 10분가량만 걸으면 중앙당 청사가 나온다.

보위부는 이날 긴급 출동해 누리꾼들을 해산시키고 체육경기를 무산시켰다. 사실 이전에도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청년들이 모여 축구나 농구경기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북한 당국도 이를 눈감아줬다.

하지만 모이는 숫자가 수십에서 수백 명 단위로 커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다가 300명이 넘어가자 칼을 뽑아 든 것이다.이 사건으로 단순히 체육경기만 무산된 게 아니었다. 인터넷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이 뒤따랐다. 사실 이 망은 북한 내부에서만 쓰는 인트라넷에 더 가깝다. 북한에선 이를 보통 ‘망’이라 부른다.

보위부 요원들은 망을 검열해보고 깜짝 놀랐다. 문제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채팅방에선 남한 말투를 쓰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 있었다. 당국의 의도와 다른 내용의 게시물도 적지 않았다.

북한 보위부는 긴급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망에서 채팅 방이 모두 사라졌다. 또 당시 북한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PC방들도 모두 폐쇄됐다. 집 전화 모뎀을 이용한 개인의 망 접촉도 금지됐다. 망 접속은 기관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게 됐다. 북한에 선풍적 인기를 몰고 오던 인터넷 문화가 급작스럽게 찬 서리를 맞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의 여파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북한 인사들과 인터넷 개방을 이야기하면 내나라망 사건을 드는 경우가 많다. 북한이 인터넷을 개방했을 때 무엇을 가장 우려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주민이 연결되고 감시가 통하지 않는다면 북한 체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