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숨어 있는 천사와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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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19.05.11 11:31


제2차 세계 대전 때 아우슈비츠까지 갔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유대인 심리학의사 빅터 프랭클 박사는 훗날 이런 회상을 남겼다.
 
당시 수용소에는 J 박사가 있었는데 그는 프랭클 박사가 일생 동안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메피스토펠레스(괴테의 희곡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의 영혼을 파멸시키려던 악당)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스타인호프의 도살자라고 불렸다. 나치가 안락사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그는 모든 권한을 손에 쥐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혈안이 되어서 단 한 명의 정신병자도 가스실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전쟁이 끝난 뒤 프랭클 박사는 J 박사를 찾았으나 소련 군인들에게 붙잡혀 갔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누구도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먼 훗날 프랭클 박사는 소련에 끌려가 오랫동안 옥살이를 했던 전직 오스트리아 외교관 한 사람에게서 J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 외교관은 J 박사와 함께 악명 높은 러시아 모스크바 루비앙카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이렇게 회상했다.

"루비앙카 감옥에서 J를 알게 됐습니다. 그는 방광암으로 마흔 살 때쯤에 죽었지요. 하지만 죽기 전에 그는 프랭클 박사님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었죠. 그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적 차원에 도달해 생을 마쳤습니다. 감옥에 그렇게 오랫동안 있는 동안 내가 사귄 친구 중에서 가장 좋은 친구였습니다."
 
나는 이 회상이 놀랍지 않았다. 길지 않은 생을 살아왔지만 인간의 마음속에는 악마와 천사가 늘 함께 도사리고 있음을 체험을 통해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선으로만 이뤄진 사람은 없다. 심지어 성인처럼 추앙받는 김수환 추기경님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분도 청년 시기에 잔혹한 삶의 시험에 들었더라면 어땠을지 모른다. 다만 그 분은 오랫동안의 수양과 훈련으로 내면의 선이 악을 누르는 방법을 깨우쳤을 것이다.
 
전에 쓴 글에 제 블로그에 단골로 찾아주시는 어르신이 이런 댓글을 남긴 바 있다.
 
"삶의 지혜를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사람들은 절대 란 단어는 쓰지 않는다."고...
 
나는 탈북 했다가 북송돼 7개의 감옥과 수용소를 옮겨 다니며 인간의 한계를 어느 정도는 겪어봤었다. 인간의 영혼이 황폐해지고 육체적 파탄이 인격의 파탄을 가져오는 현상을 체험했고 목격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훗날 인간의 마음속에 혼합돼 공존하는 선과 악에 대해 가끔 생각해볼 때가 있다.
 
인간에게는 절대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지금 아무리 진수성찬 앞에 마주하더라도 수용소에서 옥수수 몇 알을 몰래 얻고 행복했던 그 기쁨과 절대 비교할 순 없다.
 
사람들은 대개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인격과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육체에 뼈만 남는 뒤 정신력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 붕괴되고 나 자신이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에 지배됨을 깨닫고 소스라칠 때가 있었다. 서서히 말라가지 않고 그냥 총살형을 선고받았더라면 나도 누구보다 당당해지고 인격과 자존심을 지켰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내면에 선과 악이 공존하지만 대체로 평화적 순간에는 선이 악을 누르고, 신상에 위험이 닥친 위기 상황에서는 악이 선을 누르는 경우가 많다. 선의 기운이 강한 사람은 고매한 인격을, 악의 기운이 강한 사람은 미천한 인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이들은 사회의 모든 집단에 들어가 있다. 선으로만 이뤄진 인간이 없듯이 집단도 고매한 인격 즉 착한 사람들로만 이뤄진 집단, 또는 악한 사람들로만 이뤄진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어느 곳에도 없다.
 
한국에 와서 보니 전라도니, 경상도니 하면서 싸우는 것을 보게 됐다. 다행히 나는 북한에서 왔으니 전라도니, 경상도니 하는 지역감정에서 자유롭다.
 
자신을 어느 집단에 스스로 속해놓고 상대 집단을 나쁜 집단으로 매도하는 편 가르기 문화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자기가 속한 집단은 절대 선이라고 맹신하면서 상대 집단을 쉽게 악으로 단정지어버린다. 그리고 선이라고 생각한 그 집단 속에 속한 것만으로 자신이 선한 사람이 된 것처럼 착각하고 살고 있다. 자신이 마음속에 있는 선과 악도 통제 못하는 것이 나약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문턱에 갔다고 온 사람들은 아마 그렇게 편 갈라서 손가락질 하면서 사는 삶이 자기 인생에 대한 학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낭비하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귀중한 것이니깐, 삶이 너무나 짧으니깐.
 
한국의 뿌리 깊은 지역감정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편 가르는 방법은 내가 속한 집단인 탈북자들조차 쉽게 배워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례로 대다수 탈북자들은 노무현 정권에 실망을 느끼고 이명박 후보를 찍었다. 노무현 정권이 김정일에게 비굴하고 퍼주는 꼴이 보기 싫다는 이유(비단 탈북자들만의 생각은 아니지만)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면 합리적 판단 기능이 정지되는 모양이다. 그렇게 지지했던 이명박 정권이 임대주택 문제 등 탈북자들의 혜택을 축소시킨 사실, 무리한 원정화, 김동순 간첩사건을 겪으며 냄새 맡을 수 있는 탈북자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 등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그렇게 북한에 비굴하다고 미워했던 노무현 정권이 북한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특별 전세기를 내서 동남아에서 400명이 넘는 탈북자들을 한꺼번에 데려왔고, 한해 수백 명이 입국하던 탈북자들이 노무현 정권에서 수천 명씩 입국하게 됐다는 사실 등도 언급하는 탈북자들이 거의 없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사람들이 자기편인 줄 알지만 내가 보건대는 술자리에서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극좌 운동권은 제외하고) 속에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참상에 눈물을 흘리고 탈북자들에게 자신의 돈지갑을 열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편과 남의 편의 경계는 객관적 시각으로 평가하면 뚜렷하지 않다. 지금은 내 편이지만 내일은 남의 편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편이라는 장벽을 쌓아놓고 사는 사람들은 너무나 막무가내다. 자신의 맘속에 선과 악을 함께 품고 살면서도, 절대 선과 절대 악을 너무나 쉽게 만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거행을 바라보면서 이상하게 첫머리에 썼던 J박사가 떠올랐다. 왜 하필 J 박사였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절대 선인, 성자 노무현을 만드는 요 며칠 방송보도들의 행태들을 보면서는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절대 선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지만, 성자 노무현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 개인적인 가장 큰 존경의 이유는 잘 나가는 변호사를 하다가 독재 타도를 외치며 재야의 길에 들어선 노 전 대통령의 용단 뒤에 숨은 고뇌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도 같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천성이 훌륭한 사람인 것이 증명된다. 남한에 오기까지도 나도 나름 비슷한 고뇌를 조금 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인들 중 몇 안되는 사람 냄새가 나는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부르면 화합과 통합의 리더보다는 네편 내편이 뚜렷했던 타협없던 재야투사의 이미지가 맨 떠오른다. 분노할 줄 아는 노무현, 개인적 분노를 공적 분노로 승화시켰다고 방송사들은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의 시대가 지난 뒤 우리 사회에 더욱  넘쳐나게 된 증오와 비타협을 생각해본다.
 
측근과 가족의 줄줄이 이어지는 비리 앞에 모두가 실망하고 손가락질을 하다가 죽음 뒤 갑자기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면서 마치 순교자를 바라보듯 돌변한 사람들을 보면서 이 나라 국민의 품격을 생각해본다.
 
통합을 당부하고 갔건만 자신을 노무현의 편으로 자칭하는 사람들의 조시에선 증오가 뚝뚝 묻어난다. 이를 보면서 업보를 생각해본다.
 
그렇긴 해도 나도 진심으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한다. 노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애도하는 이유는 각자 나름대로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애도한다고 해도 솔직하게 방송사들의 요란한 수식어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나의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의 애통함에는 비교되진 않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는, 추억은, 평가는 이래야 한다고 전 국민들에게 하루 종일 획일적으로 가르쳐주는 듯한 방송들을 보면서, 김일성이 사망했던 1994년 7월의 북한 방송이 떠올려져 거부감이 생긴다.
 
열흘 내내 이곳, 저곳에서 눈물바다가 된 북한 주민들을 반복적으로 비춰주면서, "저 사람들처럼 통곡하지 않는 사람은 이상한 놈이고 우리 편도 아니다. 정상인이라면 울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강요했던 그날의 조선중앙TV 화면들이 오버랩 된다.
 
노 전 대통령을 마지막 길을 보내면서까지 마냥 순수하게 찬양만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내 맘 속에, 그대의 맘 속에 천사와 악마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나 자신의 고통스런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니체의 말을 생각한다.
 
"왜(why)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글을 마치며 이번 일이 누구에게나 한번쯤 스스로 다짐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why만은 놓지 않겠다고...
 
그 why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짐승 취급을 당하면서도, 뼈만 남은 육체를 끌면서도 나 자신이 끝까지 놓치지 않고 꼭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었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주성하.
   
이주원 05/14 19:22 수정 삭제
국민 모두가 분열되지 않고 하나되어 아름답고 자유로우며 정의로운 통일 대한민국을 이 땅위에 하루빨리 건설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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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arcel Kim 05/14 22:15 수정 삭제
요즘 시대에 온라인에서건 오프라인에서건 쉽게 볼 수 없는 훌륭한 글입니다

전에 읽은 적이 있는 글이지만 다시 한 번 그렇게 느낍니다

저는 요 며칠 간 주성하 기자님께서 올리시는 글들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들은 일생동안 거의 다가서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미지의 영역을 향하여
온 힘을 다하여 한 발자국씩 발을 내딛고 계신 게 느껴집니다.

멀리서나마 늘 응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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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운 05/18 23:42 수정 삭제
저도 기자님 말씀대로 상황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상황을 만든다고 생각 합니다. 결코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속에서 그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저도 햇볕정책을 지지한 사람이지만 그것은 보편적인 인간적 관점에서 지지한 것이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로 지지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를 지지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저는 좌우로 편이갈려 한쪽에서 욕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한쪽의 선택을 강요받는 사회에 있다보니 저도모르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가더군요.

이런 극단의 대립이 통일이된다고 저는 바뀔거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때는 지역이 아닌 남과북으로 나뉘어 서로를 헐뜯게 되겠죠.

하지만 이점은 분명히 알겠더군요. 지금은 탈북자들과 결을 함께하는 극우들이 통일 대한민국에서는 그들에게 술한잔 나눠줄 관용이 있을거라 생각되진 않습니다.

이렇게 시대와 상황에따라 마음대로 바뀌는 분열의 씨앗은 우리 민족성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기자님 말씀대로 절대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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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ode Sinode 05/23 11:07 수정 삭제
우파나 좌파중에 누가 북한의 인민을 위해 더 눈믈을 많이 흘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파는 현실주의자들이고 좌파는 이상주의자들이죠.

그렇지만 제가 좌파를 극혐하는 이유는 인간의 기본권이 자유로운 세계를 추구한다고 떠들면서
하는 행동은 정반대로만 하는 이중 인격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독재자 박정희, 전두환을 욕하면서 문재인의 저 악랄한 언론통제와 정부통제를 보면 할말을 잃지요

각설하고
저의 태생의 반은 전라도이지만 전라도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의 삐툴어진 사회관을 보면 상종하기도 싫지요...

오늘 노무현의 추모행사를 보며 정말로 씁쓸함만 느낍니다.
냉정히 한국현대사의 나타나지 말았어야 할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같은 인물의 시체팔이
하는 인간들이 횡횡하고 있는 지금
후대가 어떻게 평가할지 눈에 빤히 보입니다.

권력의 화신인 김대중, 인간적으로 좋지만 정치인으로썬 실패한 노무현
개인의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양손에 쥐었으나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모두 실패한 이명박
능력부족인 박근혜 등....

한국사의 허상을 깨달았을때의 절망감이 컸는대... 후대에도 똑같은 역사서가 나올걸 예상해보면
안타까움을 넘은 분노가 아니라 분노를 넘어선 한심스러움과 안타까움만 교차 합니다.

-아치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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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01/31 21:33 수정 삭제
우리나라는 더이상 우파보수정권이 들어서기 힘든대신 빤스먹사 전광훈과 태극기부대들이 활개치는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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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03/12 13:33 수정 삭제
북한사람들은 악마를 천사로 믿는처지이니 어쩌겠습니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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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11/18 01:27 수정 삭제
노무현은 남들 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것을 따라가지 않았죠 영남정치인으로 호남의 상징 김대중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고 3당합당 때 손 힘차게 들며 이의 있다고 반대 토론을 해야한다고 외쳤습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는 탈북인으로서 쉽게 이해하기 힘들껍니다. 일본의 반응도 그랬고 그 당시 중국의 반응도 그랬고 대부분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 보도하기 바빴지 왜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그를 추모했는지 이유를 제대로 분석하지는 않았습니다

남한사람들도 노무현의 진가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주성하 기자님이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노무현은 김한길 당시 열린우리당 대표에게 법안 통과로 치열하게 한나라당과 정쟁중일때 김한길 대표에게 대통령이 먼저 길을 터줘야 야당이 원내로 돌아오지 않겠나며 양보하자고 말했고 열우당은 투쟁을 포기하고 한나라당에게 양보했죠

김일성 김정일에게 노무현의 죽음을 비교하는것은 너무 실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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