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에 빠진 북한, 한눈에 보는 북한 마약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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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19.05.28 17:48


#2017년 말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밀거래되던 고순도 북한산 필로폰 가격이 갑자기 하락했다. 한 작대에 한화 60만 원 정도에 밀거래되던 필로폰은 25만 원 선까지 하락했다. 작대기는 1회용 주사기 한 대 분량을 의미하는데, 약 4그램 정도를 의미한다.  

중국 현지의 북한산 마약 거래에 정통한 소식통은 "유엔의 강력한 대북 제재로 중국에 있던 북한 식당이 한꺼번에 철수하면서 이들이 깔고 있던 마약들이 대거 방출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 내 북한 식당들이 북한산 마약의 유통거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8월 미국 뉴욕 맨해튼연방지법에서는 북한산 마약을 미국에 밀반입하려던 홍콩 범죄조직 소속의 영국, 체코, 필리핀, 대만 등 다국적 조직원 5명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이들은 북한산 마약을 필리핀에 들여와 숨겨놓은 뒤 100㎏을 태국을 경유해 반입하려다 미 마약단속국(DEA)에 적발됐다. 한 조직원은 자신의 조직이 필리핀에 북한산 필로폰 1t을 숨겨놓고 있다고 고백했다.
 
 최근 박유천 황하나 로버트 할리 등 유명인은 물론 버닝썬 사건으로 우리나라의 마약 남용에 경종이 울리고 있다. 자유한국당 소속 윤상현 외교통일위원장은 2012년에 "2010년 국내에서 적발된 외국산 필로폰 8200g 중 57.3%가 중국에서 반입됐고 그중 상당량이 북한산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외 여러 마약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필로폰의 최소 30~40%는 북한산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마약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북한의 마약 실태를 파악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북자와 북한 소식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털어놓은 북한의 마약 제조와 유통, 중독 현황 등을 정리해 본다.

●중앙당 간부들부터 시작한 마약

북한은 1980년대 중반 이전까진 마약이 거의 퍼지지 않은 지역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북한에선 중앙당 간부들에게 필로폰을 비밀리에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것이 북한 마약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다.

평양 출신의 고위 소식통은 "북한에선 고위 간부들은 간부진료과 대상이라고 따로 치료하는데, 1980년대 중반부터 건강 치료용이라며 소량의 필로폰이 든 알약을 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의 경우 매달 1~2알의 필로폰이 든 알약이 뇌출혈, 뇌혈전 예방약, 피로 회복제, 건강치료제 등의 이름으로 지급됐다"며 "간부들도 이 약이 마약이란 점을 알았다"고 증언했다.

중앙당 간부들에 대한 공급은 김정일의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70~80대 고령의 간부들이 증가하며 건강 문제가 자주 발생하자 이런 조치가 내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국가차원의 아편 재배와 헤로인 생산 시작

북한은 1990년대 초반부터 국가 차원의 양귀비 재배를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1980년대부터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각 도별로 경작지를 10㏊ 혹은 20㏊ 규모로 할당하여 재배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1980~1990년대 초반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자 북한은 마약 밀매를 부족한 외화를 보충할 방법으로 선택했다. 김일성의 건강을 책임진 만청산연구원 출신의 한 탈북자는 "1990년 금수산의사당 경리부 당위원회에서 나와 백도라지 농장을 금수산의사당 경리부가 맡을 데 대한 교시를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김일성은 마약 생산을 "미 제국주의와 싸우는 새로운 방법"이라고 정당화시켰다. 미국 등 적국을 마약에 중독시켜 자본주의 사회를 마비시키고, 북한은 돈도 벌어 사회주의를 지킬 수 있는 1석2조의 사업이란 논리였다.
 
이후 북한의 북부 지역 농장들마다 2~3정보씩 양귀비를 재배했다. 북한은 양귀비를 백도라지라고 불렀다. 양귀비 진(아편)을 채취할 때엔 학생들까지 동원했다. 이렇게 전국에서 만든 아편은 평양으로 올라왔고 헤로인으로 제작했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한 탈북민은 "생산기지는 평양 외곽의 상원군에 위치했는데, 국가과학원 상원분원이란 외피를 쓰고 있었고 이곳에서 생산된 헤로인은 항불안제인 디아제팜과 외형이 똑같아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보위사령부 등 최정예 공작원들이 홍콩과 마카오 등의 동남아 마약조직과 접촉해 판로를 개척했는데 신분이 드러날 경우를 대비해 철저히 개인별로 움직였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어지면서 점차 북한산 헤로인이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고 미국이 제재할 움직임을 보이자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상원분원을 폭파시켜 흔적을 없앴다.

●평양 고위층에 퍼진 헤로인-덴다
 
상원분원이 폭파됐지만, 이미 만들어진 대량의 헤로인은 북한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판로가 점점 막히자 이 헤로인이 1990년대 중후반부터 북한 내부 부유층에 퍼지기 시작했다. 헤로인을 북한에선 덴다 총탄 등으로 불렀다.

덴다는 디아제팜과 똑같은 흰색의 알약은 물론 특이하게 빨간색 알약도 있었다. 상원분원에서 만든 덴다는 3~4개 루트를 통해 평양에 흘러나왔는데, 주로 젊은 아가씨들이 부유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팔려 다녔다.
 
덴다는 가루로 부셔 코로 흡입했는데, 중독자들은 하루에 수십 알씩 흡입했다. 함유량에 따라 80캄마, 120캄마, 240캄마로 구분됐는데, 2000년 평양에서 거래된 덴다 120캄마 한 알의 가격은 2달러였다.

이 정도면 웬만한 부유층이 아니고선 감당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평양의 극소수 부유층과 원산 신의주의 무역회사 사장 정도만 헤로인을 경험했다. 탈북자 중에 덴다를 경험한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상원분원의 생산량은 한계가 있었다. 2003년경부터 평양에선 덴다가 거의 사라졌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바로 아이스 얼음으로 불린 필로폰이었다.
 
헤로인과 필로폰은 완전히 상반되는 마약이다. 헤로인은 중추신경을 억제해 그 자체로만 쾌락을 느끼게 하는 마약이지만, 필로폰은 강력한 중추신경 흥분제다. 상반된 마약이 시점을 두고 북한에 등장한 이유는 식량난 악화와 연관된다.
 
●얼음의 시대와 상원분원 출신들의 활약
 
북한은 상원분원을 폐쇄한 뒤 소속 과학자들을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으로 대거 내려 보냈다. 같은 화학 계열의 연구소란 이유도 있었지만, 애초에 상원분원에서 마약을 만들던 기술자들은 화학공업의 중심지인 함흥 출신들이 많았다.
 
이들이 고향에 내려갔을 때는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식량난이 심각하던 시절이었다. 국가의 배급만으로 먹고 살기 막막해지자 마약제조 전문가들인 이들은 원료가 비싼 헤로인보단 원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필로폰을 제조했다.
 
필로폰 원료는 중국에서 의료용으로 수입하는 염산에페트린이었다. 이들이 개발한 필로폰은 2003년경부터 헤로인 판매망을 타고 평양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1그램에 5~10달러 정도에 공급되는 필로폰은 순식간에 평양의 중산층까지 중독시켜 나갔다.
 
지방에는 필로폰 밀매가 2006년경부터 본격화됐다. 이 때문에 그 이전에 탈북한 사람들 중에는 마약이란 소리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 물론 지방에도 처음에는 돈이 있는 사람들부터 하다가 2010년경부턴 중산층 계층까지 사용자가 확대됐다.
 
북한 내부의 마약 생산은 개인들 중심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마약 제조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정찰총국, 보위성, 보위사령부 등 군부 조직도 마약 생산과 해외 밀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소식통은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북한군 총정치국 산하 53부에서 평양과 평성 사이 배산점이란 지역에 필로폰 생산 공장을 만들어 운영했다"며 "해마다 국가차원에서 20톤 이상의 필로폰이 생산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한국과 북한의 기술자들  

북한산 얼음은 96~99% 정도의 순도를 보장하기 때문에 해외 밀매조직에겐 인기가 높다. 북한산 필로폰의 순도가 높아진 데엔 한국 기술자들이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정통한 탈북 소식통은 "필로폰 생산 초기 기술자로 불리던 한국인 3명이 단속이 강화되자 동남아, 중국을 거쳐 북한까지 넘어왔다"며 "이들의 경험과 지식이 북한에 전수됐다"고 말했다.

한국인 기술자들도 99% 순도는 만들지 못했지만, 북한이 정예 연구진을 투입하고 전문 생산기지까지 제공하자 순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것. 그러나 이중 2명은 북한에서 총살되고, 1명은 탈북해 숨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로폰 제조기술을 전수받은 북한기술자는 해외에 진출하기도 한다. 중국의 소식통은 "중국 단둥에서 북한과 크게 교역을 하고 있는 송 모 사업가가 2004년 북한 기술자를 10만 달러에 계약해 데려온 뒤 기술을 전수받고 죽인 사건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북한의 필로폰 기술은 다시 한번 진화했다. 과거엔 중국의 염산에페트린이 원재료였는데 이것이 수입하기 어려워지자 원재료가 다시 바뀐 것이다. 탈북 소식통은 "새로운 방식의 필로폰 제조를 두고 내부에선 마약 제조의 기본을 바꾼 혁명이 일어났다고 비유한다"며 "새 재료를 쓴 필로폰의 질이 훨씬 더 좋다"고 말했다.
 
북한 마약은 해외의 부패 관리들과 결탁돼 해외로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대북 소식통은 "신의주와 마주한 중국 동강(東港)시 공안국 부국장과 변경변방정찰 대대장이 2015년 북한과 필로폰 밀거래를 하다 체포됐는데, 압수수색에서 50㎏ 이상 필로폰이 나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도 "동남아엔 북한 얼음이 이미 점령했고, 필리핀엔 유통거점 없이도 보내는 수준"이라고 증언했다. 동남아와 필리핀에 간 북한 필로폰은 현지 밀매조직을 통해 다시 미국과 유럽 등으로 넘어간다.

 
●급속히 마약에 빠져드는 북한

북한 당국은 2013년 형법 개정을 통해 비법아편재배·마약제조죄에 대해 사형까지 하도록 했지만, 마약 사용은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다. 단속을 해야 할 보위성 요원들부터 마약에 빠져 있거나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평양 출신의 한 탈북민은 "2010년에 검사로 일하는 친구가 술을 마시며 전당, 전군, 전민이 약을 한다며 개탄했는데 몇 달 뒤 그도 약을 빨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 입국한 탈북민들은 "어느 마을에 가나 약을 파는 집은 꼭 있으며 이런 집을 소분집이라 한다"고 일치하게 증언하고 있다. 북한 내에서 현재 10회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얼음 1그램 가격은 15달러(약 1만8000원) 이하로 거래된다. 한국 밀매 가격의 수십 분의 1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북한인권정보센터가 탈북민 1467명을 설문조사해 2016년 발표한 자료는 북한 마약 확산의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북한에서 마약을 접촉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탈북시점에 따라 2010~2012년 13.6%, 2013년 26.8%, 2014년 25.0%, 2015년 36.7%로 상당히 빠른 증가 추세에 있다.
 
"북한 인구 몇 %가 마약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2010년 이전 탈북한 사람 중 가장 많은 비율인 35.7%가 10% 이하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2014년 탈북한 309명 중 "10% 이하"라고 대답한 사람은 16.2%에 그쳤고, "10~30%"란 대답이 27.8%, "30~50%" 26.9%, "50~70%" 17.8%, "70~90%" 9.1%, "90% 이상" 2.3%에 이르렀다.

심지어 2016년 탈북한 2명은 모두 북한 사람의 90% 이상이 마약을 사용한다고 대답했다. 이 조사는 2010년 이후 탈북자 686명이 대답한 것이다.
 
똑같은 질문에 2016년 탈북한 2명의 대답은 충격적이다. 이들은 "북한 주민의 90% 이상이 마약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 대답이 과장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북한의 조사 결과는 마약 사용이 해마다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다 북한이 이렇게 된 것일까?


유튜브로 듣는 북한 마약의 암역사,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1편/ https://www.youtube.com/watch?v=cTd_vez07tM 


2편/ https://www.youtube.com/watch?v=XmpTh64pMHI&t=13s 

3편/ https://www.youtube.com/watch?v=Mn1rx2ms9kQ&t=20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