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보건정책에 반기를 든 평양 의대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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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19.07.19 16:52


무상 의료 시스템과 자본주의 의사들

앞선 글에서 무료교육 제도의 붕괴와 사교육 시장의 번창을 다루었다. 이번에는 교육과 함께 북한이 무상이라고 자랑하는 의료실태에 대해 다뤄보려 한다.

사실 북한에서 무상치료제는 무료교육제와 무세금 제도와 함께 사회주의 시책을 이루는 하나의 기둥이었다. 1990년대 사회주의 공급 체계의 사실상 붕괴와 함께 이러한 의료 봉사 체계도 사실상 붕괴되었다.

무료 교육제와 마찬가지로 명목상 남아 있는 북한의 무상 치료제의 실상을 알아보자. 물론 외국인이나 한국 사람이 평양에 가서 갑자기 아프면 북한 당국에서 알아서 잘 치료해준다.

이런 체험을 하고 북한의 의료제도를 칭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회의 일반 주민이 받는 일반적인 치료 시스템은 완전히 다르다. 그 속내를 파헤쳐본다.

인구 400명당 의사 1명

북한에서 무상 치료제는 1953년 1월부터 실시되었다. 그 후 자체 발전을 거듭하면서 1980년대에 이르러 무상 치료제와 의사담당구역제, 예방의학을 핵심으로 하는 전반적 의료 보장 제도가 사실상 완성되었다.

의사담당구역제는 의사가 일정 지역 주민의 건강을 담당하고 책임지는 형태로, 의사는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뿐 아니라 자기 담당 구역 내에 있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가정들에 직접 찾아가 검진하기도 하고 질병 예방 대책도 세우고, 예방접종 사업을 하는 등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제도다.

동구권 사회주의가 남아 있고 그런대로 북한식 계획경제가 유지되던 1980년대까지는 북한의 의료 봉사 체계가 괜찮은 수준이었다.

북한의 헌법에 모든 주민은 “무상으로 치료받을 권리와 노동능력 상실의 경우 물질적 방조를 받을 권리를 가지며 (중략) 이는 무상 치료제에 의해 보장된다”라는 문구가 있을 정도로 무상 치료제는 북한이 내놓고 자랑하던 사회주의 시책이었다.

북한에는 수도인 평양에 최고의 의학대학인 평양의학대학이 있고 각 도 역시 의학대학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김형직군의대학과 같이 군의관을 전문 양성하는 군부 대학도 있다.

역시 도별로 의학전문학교가 한두 개씩 있으며 간호원 양성 같은 것은 의학전문학교에서도 하고 도마다 하나씩 있는 보건간부학교라는 곳에서도 한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해마다 의사 수천 명이 새로 양성되는 셈이다.

현재도 북한에 5만 명 이상의 의사 자격자가 있다고 하는데 북한 인구를 감안하면 의사 비율은 400명당 한 명꼴로 높은 편이고, 한국의 500명당 한 명보다도 많다. 이런 의사들이 북한의 의료 체계를 유지해왔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국가의 배급 체계 붕괴와 함께 약품 공급 체계나 의료 설비 공급은 물론 의사들에게도 배급이나 생활비 공급이 중단되면서 더는 이런 체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실제적으로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보장제도는 작동을 멈추었고, 현재까지도 북한 주민의 대다수는 무상 치료제의 실제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신문, 방송에 무상 치료제의 혜택으로 병을 완치했다는 사례들이 자주 실리고 있지만 말 그대로 사례에 불과한 것, 실제로 소개된 그 몇 십 명에 그치는 극소수인 것이다.

북한 병원의 제일 큰 문제는 약이 없는 것이다. 물론 장비가 열악한 것도 문제가 심각하지만, 병원에 가도 약이 없으니 결국 장마당에서 필요한 약을 조달해야 한다.

의사는 진단만 해주고 돈을 받고, 약을 또 돈으로 사야 하니 북한의 의료는 사실상 유료인 다른 국가와 다를 바가 없다. 특히 한국처럼 의료보험조차 없으니 북한에서 병을 치료하려면 체감 상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실정이다.

김일성 정책에 반기를 든 평양 의대생들

예방치료제는 북한의 의료 체계의 또 한 가지 핵심 기둥이다. 1966년 10월 김일성이 ‘사회주의 의학은 예방의학이다’라는 제목의 문헌을 발표한 후 북한은 이것을 사회주의 의학의 본질이라고 하면서 의대 학생들에 대한 교육 교양에서 빼놓지 않고 있다.

예방의학은 말 그대로 사람들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생명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인자들을 미리 없애거나 막는다는 것이다. 목적은 옳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이런 이론을 내세우고 너무 강조하다 보니 오히려 치료 기술의 진보를 막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평양의 의대 학생들은 예방의학으로는 발전이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물론 병이 나지 않도록 예방하면 좋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 모든 병을 예측하고 예방할 수는 없다. 의학은 치료의학이 되어야 더 높은 난도의 질병에 대한 도전력도 생기고 그것을 치료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또 역사를 놓고 보아도 대부분 의료 기술과 명약들은 사람들의 목숨이 좌우되는 전쟁을 동반하면서 탄생한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우리처럼 계속 예방의학만 외치면 진짜 의료 기술의 진보를 가져올 수 없다”는 말이 평양의학대학 학생들부터 내세우는 주장이다. 사실상 김일성이 내놓은 정책에 현장을 담당하는 의대생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이를 의식했는지 최근에는 북한도 ‘예방의학이 사회주의 의학의 본질’이라는 말을 그리 외치지 않는다.

북한에 수많은 위생방역소와 위생방역기관이 있지만 실제 가장 원시적인 전염병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나라가 북한이니 예방의학 제도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기 북한의 각 지역에서 이미 일제 식민통치의 종말과 함께 종식되었다고 선고한 콜레라, 발진티푸스, 파라티푸스, 장티푸스 등 전염병이 발생해 매해 국가비상이 걸리곤 했다. 임상 진료와 예방 능력의 저하, 영양 상태 악화에 따른 감염 증가, 상하수도 오염과 위생 체계의 붕괴가 가져온 필연이었다.

이런 티푸스는 고열과 탈수를 동반하면서 며칠씩 앓는데, 두 번만 걸리면 간부 사업도 안 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크게 고생한다. 티푸스 한번 걸리면 사람이 이상해진다는 뜻이다. 각종 티푸스는 거의 2000년대 말까지 이런 전염병 환자들이 속출했다.

현재는 이런 전염병들이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아직도 결핵이나 간염과 같은 만성 질환자 비율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보아도 높은 발병률을 나타낸다.

몇 년 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배에서 기생충이 발견된 것이 크게 화제가 됐다. 그런데 기생충은 거의 문제도 아니다. 2015년 단국대 의대 김석배 교수가 대한내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탈북자들의 기생충 감염률은 41.18%로 나타났다.

그런데 탈북자 대다수는 중국을 거쳐 오면서 기생충 약은 먹고 살았던 상태이기 때문이 이것을 북한의 정확한 수치라고 할 수 없다.

사실 기생충은 북한에 너무나 일반적으로 만연돼 있는 상태다. 아무리 예방의학을 떠들고 위생방역을 강화한다고 해도 기생충 감염조차 제대로 막을 수 없는 것이 북한의 현 의료 실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