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치료제 붕괴, 북한 의사 실력 향상으로 이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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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19.07.22 16:16


1990년대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기존의 사회주의 의료 시스템이 붕괴된 이후 의외로 북한 의사들 속에서 실력으로 키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기존에는 치료를 잘하든 못하든, 해고란 것을 몰랐다. 또 환자 백 명을 보든 열 명을 보든 자기가 받는 배급과 월급이 거의 변함이 없던 상태에서 살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자체의 의술을 높이고 특기를 가지지 않으면 환자들이 찾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치료할 때마다 의사들에게 뇌물을 건네야 하는 환자들 입장에선 굳이 실력이 없는 의사에게 병을 보일 필요가 없어졌다. 반면 의사의 입장에선 환자를 많이 봐야 집안이 잘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북한 의술도 1990년대 이후로 나름 발전해 북한 의사들의 실력이 그리 호락호락한 편은 아니다.

물론 약이나 설비의 부족으로 치료의 효과성은 떨어질지라도 개별적 의사들의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무상 치료제의 붕괴가 북한에서 진짜 의사들을 만드는 발판이 된 것이다.

하지만 북한 병원들이 열악한 조건 때문에 환자 치료를 제대로 할 만한 조건이 못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하던 2007년 평양을 다녀온 의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북한 병원 이럴 줄이야. 우리의 1980년대 수준은 되는 것 같다. 정말 이렇게 열악할 줄 몰랐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들이 돌아본 병원이 바로 평양, 아니 북한을 대표하는 3대 병원이라고 하는 평양적십자병원, 평양의학대학병원, 김만유병원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나름 자랑스럽게 보여준 병원의 실태가 이 정도니 다른 병원들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지방 병원 같은 경우는 소독 조건이나 전력 조건이 제대로 보장되는 환경이 없어 간단한 수술도 불가능한 곳이 많다.

가장 선호하는 임상학부, 기초의학부

의사 직업은 간부보단 못해도 예전부터 북한에서 평균 이상으로 그나마 선호되는 직업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대학 추천 시에도 평양의학대학과 도급 의학대학들이 김일성대와 같은 중앙대와 견줄 정도로 지망생이 많다. 지방 의대를 졸업하면 해당 도병원이나 대학병원에 배치 받는 것이 최고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의사가 되기 위해 선호하는 과가 크게 다르다.

평양의학대학에서 제일 선호되는 학부는 임상학부, 그다음이 기초의학부, 구강학부, 고려의학부 순이다.

이렇게 대학을 졸업하면 역시 임상학부와 기초의학부 석사 과정까지 마친 졸업생들 중 일부만이 중앙급 병원에 배치되고, 그 외는 시급 병원이나 구역 병원에 배치된다.

중앙병원에서도 봉화진료소와 남산병원 같은 특수의료기관은 당연히 첫 째 가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약학부나 위생학부 같은 데는 대부분 학생들이 추천받으니 할 수 없이 간다는 심정이다. 어떤 의대 졸업생들은 아예 의사 진급 자체를 포기하고 개인의사로 발전하고 만다.

개인의사란 병원에서 일하지 않고 지방을 돌아다니며 치료해주는 의사를 말한다. 물론 이는 북한에선 불법이다.

하지만 지방 산골부락에 가면 의사도, 돈도 없어 치료를 포기한 사람이 많다. 이런데 약을 갖고 나타나 치료를 해주고 대신 식량을 받고 시내에 나와 파는 사람들이 개인의사다.

사실상 떠돌이 의사인 셈이다. 그래도 뇌물도 받지 못하는 인기 없는 과에서 일하기보단 그나마 먹고 살기에 괜찮기 때문에 북한에는 이런 개인 의사가 적지 않다.

북한에선 간부가 되려면 6촌까지 신원조회를 철저히 한다. 반면 의사는 출신 성분이 나쁘고 배경이 신통치 않아도 크게 지장이 없다. 그래서 은근히 의대에 지망하는 학생이 많다.

특히 의사들은 제도가 어떻게 되든 기술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은 수십 년 전 사회주의 시절부터 북한에 남아있는 암묵적 인식이다.

외부에서 의사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잘 모르더라도, 6.25전쟁 때 의사들만은 어느 편이든 이용했다는 사실을 북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이고, 그런 경험이 자식을 의사로 키워야 한다는 인식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약장사 겸하는 북한 의사들

약을 팔고 사는 것은 의사들이 고난의 행군 이후부터 가장 먼저 시작한 부업이기도 하다. 아직은 무상 치료제이기 때문에 유엔에서 온 지원이나 그나마 돌아가는 제약공장들에서 생산된 약들이 병원들에 무료로 공급되기도 한다.

양은 많지 않지만 이런 무료 약들이 실제 환자들에게는 대부분 유료로 전달된다. 환자가 어떤 병에 걸렸다고 진단하고 어떤 약을 구입해 쓰라고 알려준다.

이때 환자는 이런 약품을 장마당에서 자체로 구매하기 보다는 그래도 전문의를 통해 구입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의사는 이럴 때 자기가 빼돌린 약품을 환자들에게 팔아먹는 것이다. 물론 조용히 잘 처리해야지 이것도 문제가 제기되면 처벌을 받는다.

북한에서 퇴직한 의사들의 대부분은 집에서 동네 의사노릇과 함께 약장사를 하며 살아간다. 장마당에서 약품 판매가 공공연히 진행되면서 민간의료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돈을 축적한 일부 돈주들은 제약공장이나 의료기관에도 투자하기 시작했으며 겉으론 각종 회사 간판을 달고 실제론 개인 약국인 곳들이 평양 시 도처에 널려있다. 여기서 약을 파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의사 자격을 갖추고 있으며 개인 의사 경력도 가지고 있다.

평양에도 개인 의사가 적지 않다. 가령 지방에서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남편을 따라 평양에 거주한 의사 자격자는 평양에서 의사 직업을 갖기 거의 힘들다. 지방대를 졸업한 의사는 평양에서 아무리 잘돼 봐야 구역 병원 정도 의사 정도나 할 수 있고, 보통은 진료소 의사 자리도 얻기 힘들다.

대학 때 실력도 있고 나름의 수기 치료 경험도 지고 있으면 집에서 개인의사로 시작해도 별 문제는 없다. 입소문을 타고 누가 치료를 잘한다고 소문이 나면 슬그머니 간부들이 찾아온다. 그렇게 자리를 잡으면 약방도 하나 마련하고, 여기서 약도 팔고 단골에게 치료도 해주는 것이 개인 의사다.

개인 의사들은 나름 의료 기술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실력을 쌓아 단골들에게 인정받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건 불법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체포하진 않는다. 개인 의사가 치료하는 범위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의료 사고는 많지 않다.

무료로 약이 가장 잘 공급되는 병원은 중앙당 간부들이 주로 이용하는 적십자병원이나 김만유병원, 평양의대 병원 정도나 꼽힌다.

이 병원에는 진료권 대상이라는 특권 계층들이 다니고 있다. 진료 대상이란 성, 중앙기관 사무원 이상이나 교육, 과학기관 교원, 연구사 이상으로 각급 병원에서 우선적으로 치료받을 권리를 나타내는 증서를 가진 사람이다.

무상으로 의료를 한다는 북한에서도 이렇게 사람의 계급에 따라 우선적 치료권리를 분리해 놓고 있는 것이다. 일반 주민들은 이런 특권을 절대 가질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진료 대상도 또 특권에 따라 치료가 다르다. 간부와 교원이 어떻게 같은 진료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또 돈만 많으면 진료권 대상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돈만 많으면 가장 수준 높은 병원에 가서 가장 높은 기술을 소유한 의사의 치료를 받는 것은 절대 어렵지 않다.

물론 북한에서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갈 수 없는 병원이 딱 한 개가 있으니 바로 김 씨 일가와 중앙당 핵심 간부들만 가는 봉화진료소이다.

의사로서 해외 진출에 성공하는 것은 북한의 모든 의사들이 품고 있는 최고의 희망 사항이다. 1990년대 이후로 아프리카를 비롯한 발전도상나라들에 치료 의사로 파견되는 북한 의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단 이런 곳에 한번 파견되면 적어도 10만 달러 이상 벌어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물론 분쟁지역이나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이 광범위하게 퍼진 지역에 나가 생명의 위험을 당한 실례도 있지만 북한에서는 일생을 다 바쳐 모아도 마련할 수  없는 큰 돈을 벌수 있다는 유혹은 물리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파견되는 의사도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의대 같은 최고수준의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적어도 적십자병원이나 김만유병원 같은데서 현실 의료경험이 풍부한 의사들만 바라볼 수 있는 길이다.

특히 해외에 있는 북한의 큰 공관들에 담당 의사로 파견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이다. 오늘도 이런 실낱같은 희망을 잡으려 노력하는 평양 의사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