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평천아파트 붕괴 사고의 자세한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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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19.08.05 16:17


2014년 5월 13일 평천구역 안산동에 건설 중이던 23층 아파트가 붕괴된 것은 부동산 투자 열기가 불러온 대표적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1970년 33명의 사망자를 낸 서울의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나 1995년 502명의 사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평천 아파트 붕괴 사고라고 할 수 있다.

평천아파트 붕괴 사고는 당시론 엄청난 화제가 됐지만, 폐쇄적인 북한의 특성상 자세한 내막이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당시 평양에 살았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글은 평천아파트 붕괴사고의 전모를 외부에 최초로 소상히 전하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평천 아파트는 재건축된 아파트였다. 이곳엔 원래 7층짜리 소규모 아파트 3동이 나란히 있었다. 투자자들은 그중 가운데 아파트의 주민들을 철거시키고 그 자리에 붕괴된 아파트를 재건축했다.

빨리 돈을 뽑으려는 투자자들의 욕망과 건설 열기를 타고 착공한 지 불과 1년 남짓해 아파트가 완공되었다.

다른 재건축 아파트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골조가 완성되고 내부 미장이 끝나자마자 입주가 시작되었다.

철거된 7층 아파트에 살던 주민들에게 일부 배정되고, 공사에 관여한 일부 간부들에게도 집이 배정됐고, 나머지는 판매되기 시작했다. 붕괴될 당시 아파트는 다 판매되지는 않고 일부는 주인 없는 집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5월 13일 오후 갑자기 아파트가 무너져버렸다. 붕괴는 오후 4시쯤 일어났는데, 이로 인해 한 가족 중에서도 직장에 출근한 사람들은 살고 집에 남아 있던 주부와 노인이 많이 죽었다.

또 직장인이라고 해도 휴가를 받고 집 인테리어를 하던 사람들도 아파트와 유명을 같이했다.

거의 평생을 바쳐 내 집 마련의 소원을 이룬 사람들이 그 집의 붕괴와 함께 생을 접어버린 것이다. 새 집을 받은 김에 휴가를 내고 집에 와있던 비행사까지 죽었다는 소문도 있다.

한 가족에서도 엄마가 죽고 아버지와 딸이 남은 집, 부모가 다 죽고 어린 자식만 남은 집, 자식을 잃고 부부만 남은 집, 온 가족을 잃고 홀로 남은 사람 등 이 참사는 많은 가정의 참담한 비극을 초래했다.

이 밖에 붕괴 당시 아파트 주변에서 뛰어놀던 어린이들과 밖에 앉아 한담을 나누던 다른 아파트의 노인도 몇 명 죽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파트 후속 공사를 하느라 남아 있던 건설 부대 군인들 수십 명과, 개별적인 집들에 청부되어 꾸리기를 해주던 건설 노력들도 많이 죽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파트의 시공을 책임졌던 사람도 함께 죽었다. 그는 당시 상무용이란 명목으로 이 아파트의 한 집을 차지해 만든 ‘사무실’에 있었는데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만약 살았더라도 모든 책임을 지고 죽음보다 더 엄한 처벌을 받았을 테니, 이것도 그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이 사고로 적어도 3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아파트 붕괴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조사됐지만, 기본은 아파트 시공에 필요한 철근과 시멘트가 정량 품질이 아닌 것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됐다.

이런 부실한 자재마저 건설에 동원된 노력들이 빼내 술이나 부식물과 바꿔치기를 했으니, 그렇게 지어진 아파트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이나 돌격대원 같은 실제 건설자들은 거의 무보수 노동을 한다.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건설 과정에 시멘트나 철근, 모래와 같은 자재를 빼돌려 팔아 배를 채우고 용돈을 벌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아파트가 무너진 현장을 보니 얼마나 허술히 지었는지 골조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흙더미를 방불케 했다고 한다. 붕괴 후 아파트에 있던 사람들은 다 죽고 구조된 인원은 하나도 없었다는 점 역시 이 아파트가 얼마나 허술하게 지어졌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나마 다행히 아파트가 수직으로 붕괴되어, 10m 안팎에 있던 양 옆 7층 아파트 2채는 유리창이 깨지거나 베란다가 좀 손상되었을 뿐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붕괴 직후 인민보안성과 무력부가 동원되어 사고 현장에 울타리를 치고 일반인 접근을 불허했으며 수많은 인력과 기계를 동원해 이틀 만에 사고 현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주민들을 모아놓고 사과를 하는 모임도 진행했다.

최부일 인민보안부장(경찰청장)이 직접 나서서 “이 죄는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으며 용서받을 수 없다”며 반성했고, 사고 건물의 건설을 담당한 인민내무군 장성 선우형철은 “평양 시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당시 전했다.

이유가 어떻게 됐든 평양의 거주 지역 한복판에서 일어난 이런 대형 사고를 감출 수 없다고 보았는지, 아니면 진짜 책임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북한 고위 간부가 주민들 앞에 머리를 숙이는 북한 역사에 전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붕괴 사고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무너진 아파트 자리에 똑같은 모양으로 새 아파트가 건설됐다. 그렇게 빨리 지어진 이유는 당시 김정은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기념일까지 무조건 본래 모습으로 초강도 세기로 다시 지으라”고 지시를 내려 군인들이 달라붙어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북한 당국은 300마르카가 넘는 초강도 시멘트를 공법상 표준 이상으로 투입해 만년대계가 될 것이라고 선전했다. 다시 무너지면 안 되니 많이 신경 써서 지었으리라는 것은 믿을 수 있다.

문제는 저 아파트의 입주자들이다. 북한은 아파트 붕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원수님의 배려니 해당 아파트에 입주하라”고 아주 선심을 쓰는 듯이 말했다.

사고 이후 유족은 별다른 보상을 못 받았다. 북한엔 보험도 없으니 보험을 받았을 리 만무하다. 결국 피해를 본 유족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혜택은 입주 우선권밖에 없다. 하긴 원래 들어가 살던 사람들이니 혜택이라고 말할 수도 없긴 하지만….

그러나 이는 다시 좀만 생각하면 정말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아파트는 유족에게 얼마나 트라우마가 되는 곳이겠는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끔찍한 기억이 있는 곳으로 다시 들어가 산다는 것이 이들에겐 정신적 고문이나 다를 바가 없다. 살면서 사고 전의 기억과 사고 이후에 처참한 광경이 계속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새 아파트는 김정은의 지시로 무너지기 전과 똑같은 모양으로 지어 유족들이 느끼는 괴로움은 더욱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고문을 배려라고 내려주니 정말 북한답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김정은 선물이라고 주는데 거절하기도 힘들다.

평양에서 그 정도 크기의 새 아파트는 최소 몇 만 달러로 거래되는데 받지 않으면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입게 된다. 저들에겐 저것이 전 재산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니 다시 입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아파트 붕괴 사고로 가족 전부가 몰살된 집은 거의 없고 한두 명씩은 살아남은 까닭에 남은 이들은 새 아파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이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말았다.

원래는 김정은의 배려로 들어간 집은 팔고 사는 것이 금지됐지만, 당국도 이것만은 팔고 다른 곳에 가는 것을 묵인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아파트가 이미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 ‘액막이’가 잘되었다며 서슴없이 사는 사람들도 꽤 있어 수요도 나쁘지 않고 판매도 잘 이루어졌다고 한다.

참고로 붕괴된 아파트 이름은 은정아파트라고 한다. 거꾸로 읽으면 아파트 이름이 정은이 되는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터져 나온 최초의 대참사가 김정은의 이름을 연상케 하는 것은 참 기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