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의 진화 5편-북한의 공식 환율과 장마당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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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19.08.30 17:36


 장마당은 나름의 환율도 갖고 있다. 북한을 좀 연구한 사람들은 북한에 공식환율과 장마당 환율(또는 시장 환율)이 존재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물론 대다수 나라들에서 자국 화폐와 외화의 시세차익을 노리고 돈벌이를 하는 암시장은 다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만 봐도 대도시의 국영은행들 앞에 인민비와 기타 외화를 교환해주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 이익을 탐하는 사람들의 눈은 자그마한 공간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화폐 암시장은 좀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암시장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거의 공공연한 외화거래가 이루어지며 미화나 중국 인민폐, 엔, 유로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특히 미화는 평양시내의 거의 모든 상점, 식당들에서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북한의 통화인 원의 ISO 4217 코드는 KPW이며 기호는 ₩이다. 일상생활에서는 한글로 ‘원’이라고 한다. 고정환율제를 택하고 있는 북한은 환율을 국가가 지정한다. 공식 환율은 조선무역은행이 고시하는데 이 자료는 독일연방은행이 매월 제공하는 미 달러화 및 유로화에 대한 매입매도율 통계가 주로 사용된다.
 
2018년 7월 현재 북한에서 발표되는 공식 환율은 1달러=102원~112원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한다. 이것은 북한 당국이 개설해놓은 공식 환전소에서 전환가능하다.
 
그러나 당국의 개설한 공식 환전소에서 돈을 바꾸는 사람은 천하 바보라고 할 수 있다. 1달러를 들고 인근 시장만 가도 1달러에 북한돈 8400원(2018년 7월 기준)이나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즉 멋모르는 외국인이 북한에 입국해 100달러를 북한돈으로 바꾸면 1만 원, 즉 북한 5000원권 지폐를 2장 받을 수 있지만, 시장에 가서 바꾸면 84만 원, 즉 5000원권 지폐를 168장이나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북한의 공식 환율과 시장 환율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북한 화폐의 신뢰도가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북한 화폐의 신뢰도를 떨어뜨린 것은 역설적으로 북한이 1948년 정권 수립 이후 5차례 실시한 화폐개혁 때문이다.
 
1차는 1947년 12월 6일부터 1947년 12월 12일까지로 당시 일본의 조선은행권 1엔을 조선중앙은행권 1원으로 제한적으로 교환해주었다.
 
2차는 북한 경제의 전성기인 1959년 2월 13일부터 1959년 2월 1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구화폐와 1:1로 무제한 교환해주었다.
 
 3차는 1979년 4월 7일부터 1979년 4월 12일까지 역시 1:1로 무제한 교환해주었다. 이 시기부터 외화와의 태환권이 발행되어 환율을 도입하였는데 이때 공식 환율로 미화 1달러는 북한돈 2.18원이였다. 1988년 조선무역은행에서 외화와 ‘바꾼돈표’라는 이름의 태환권을 정식 발행하였다.
 
 4차 화폐개혁은 1992년 7월 15일부터 1992년 7월 20일까지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북한 당국의 날강도 행위가 본격화됐다고 할 수 있다.
 
이때 교환비율은 역시 구화폐와 신화폐가 1:1이였지만 문제는 1인당 교환한도를 400원으로 정했다. 당시 북한 노동자의 월급이 80~100원 정도 할 때였다. 화폐교환 때 400원 이상 갖고 있는 사람은 나머지 금액은 모두 은행에 저금하도록 하였다. 저금액수도 1인당 3만 원으로 제한함으로써 이 화폐개혁은 재정 회수를 위해 계획적으로 자행한 것임을 드러냈다.
 
그리고 북한 당국의 자살행위는 5차 화폐개혁 때 극에 달했다. 2009년 11월 30일부터 12월 6일까지 진행된 5차 화폐 개혁은 북한 사상 처음으로 실패를 인정한 통화 개혁이다.

이때 구화폐 100원을 신권 1원으로 바꾸고, 1인당 구화폐 10만원까지만 교환 한계를 정했다. 2009년 11월 당시 북한의 쌀 가격은 1㎏에 2200원 정도였다. 결국 쌀 50㎏ 정도 살 수 있는 돈을 제외한 나머지 돈은 모두 휴지조각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 화폐개혁은 국가가 인플레를 억누르고, 장롱에 보관된 개인의 돈을 무용지물로 만들기 위해 단행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교환비율로 따지면 오히려 200배 이상의 인플레를 초래하여 완전히 실패하였다.
 
화폐개혁 전 쌀값이 1㎏에 2200원이었으면, 화폐개혁 이후엔 쌀값이 22원으로 떨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2009년 12월 중순에 쌀 1㎏은 50원, 2010년 1월 초에는 150원, 1월 중순에는 300원, 1월 말에는 800원 수준까지 폭등했다.

결과적으로 2달 만에 물가가 최소 30배 이상 급등한 것이다. 현재 북한에서 쌀값은 5000원 정도로 이 화폐개혁의 참혹한 실패를 반증해주고 있다. 북한 시장을 말할 때 쌀값을 많이 인용하는 것은 쌀이 북한 시장의 모든 물품 가격의 바로미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3차 화폐개혁 이전까지는 미화를 인정하지도 이용하지도 않았다. 당시 사회주의권 나라들의 원조만으로도 경제운영에 차질이 없었으며 필요가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1968년 1월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었을 때 상당한 양의 미화도 회수되었지만 쓰레기라고 하면서 모두 태워버렸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이때부터 미화와 엔을 비롯한 자본주의나라 화폐들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외화를 탐하는 사람들의 욕심도 함께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날에 와선 외화가 없으면 시장 거래가 형성되지 못할 수준이다.
 
북한의 이중적 외화 환율은 외국 투자자들의 투자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에 눈 여겨 보아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북한 휴대전화 사업에 투자한 이집트 다국적 통신회사 ‘오라스콤(Orascom)’이라고 할 수 있다.

오라스콤이 남겨준 교훈

  오라스콤이 한반도 뉴스에 종종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이다. 이동통신 서비스가 부실하기 짝이 없던 북한에서 독점 사업권을 따내 고려링크라는 회사를 설립한 뒤 평양은 물론, 북·중 접경지역과 변방에 이르기까지 휴대전화 열풍을 불러일으킨 당사자다.
 
불과 몇 년 만에 휴대전화 보급 대수가 300만 대에 이르는 아찔한 성장 속도를 자랑한 것은 오라스콤의 성공 스토리로 포장돼 널리 인용됐다. 그러다 2015년 6월 말,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독점사업 기간이 마무리된 이후 이 회사가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이 무렵 공개된 오라스콤의 1분기 회계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3월 31일을 기준으로 이 회사가 고려링크를 통해 보유 중인 총자산은 58억 4400만 이집트파운드(약 7억 6600만 달러·약 8800억 원)로, 그중 현금 자산이 41억 2000만 이집트파운드(약 5억 4000만 달러)에 이른다.
 
보고서의 현금 자산 대부분은 북한에서 벌어들인 원화 수익금을 북한 공식 환율로 환산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 2014년 기준 북한 공식 환율은 98.4원이었다.
 
이를 토대로 오라스콤은 북한에 5억4000만 달러를 내놓으라고 했고, 북한은 시장 환율인 8400원으로 계산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 오라스콤의 수익률은 640만 달러로 낮아진다.
 
오라스콤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고, 북한도 당연히 5억 달러를 내놓을 생각이 없다. 오라스콤의 이야기는 북한 투자의 불투명성과 위험성을 상징하는 사례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언론플레이로 세계를 기만하고 탐욕을 부리는 것은 오라스콤이다.
 
오라스콤은 대북 투자 성과를 자사 투자자들에게 부풀리기 위해 투자 이후 수익을 북한 공식 환율로 계산해 고시했다. 실제 북한에서 이뤄진 대다수 판매는 장마당 환율로 이뤄졌다. 따라서 수익금도 장마당 환율로 받아야 했지만, 투자자들에게 몇 년 동안 거짓말을 해온 오라스콤은 이를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라스콤은 북한 통신사업에 1억5000만 달러 정도 투자했다. 오라스콤의 논리대로면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5억 달러를 벌었다는 것인데, 상식적으로 봐도 북한과 같은 나라에서 4년 만에 투자금약의 4배를 벌어들였다는 그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오라스콤의 사례는 아무리 북한이 밉다고 해도 팩트를 따지지 않고 무작정 욕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함께 주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 08/30 21:30 수정 삭제
그렇다면 북 당국이 달러당 8,000원을 넘는 장마당 환율을 굳이 인정하지 않고 백몇원에 불과한 공식 환율을 악착같이 유지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혹시 자존심 이상의 이유가 따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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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09/01 14:33 수정 삭제
저도 잘은 몰라도 환율 결정권을 시장에 넘기면 자본주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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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 09/01 21:42 수정 삭제
아......
이삭 09/14 07:43 수정 삭제
공식환율로 달러를 받고 장마당에서 다시 원화로 환전하면 80배 남겨먹는 거네요. 권력이 있어야 공식 환율로 달러를 받을 수 있다거나, 자국민에게는 달러를 내주지 않는다거나 하는 제한이 있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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