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재건축 바람과 투기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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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19.09.02 15:02


올해에는 좀 많이 식긴 했지만, 지난 20여년동안 평양에서는 서울 못지않은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다.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 더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사람들의 욕망은 어디나 같아서, 아늑한 보금자리를 가지려는 평양 사람들의 열정은 지금도 식을 줄 모른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북한 사람들도 주택을 자식에게 물려줄 하나의 자산으로, 자기의 노후를 담보해줄 마지막 자산으로 여기게 되었다. 북한에도 개인 소유의 부동산이 있고 재건축 붐을 탄 투기 열풍도 분다. 북한의 토지 문제와 부동산 개발 방식에 대한 내용은 향후 북한 투자를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북한은 형식상으론 개인의 토지 소유, 건축물 소유를 인정하지 않은 사회주의 체제다. 과거 김일성 집권 시대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계에 따라 국가가 무상으로 주택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체계였다.

북한의 주택 정책은 1가구 1주택 분배 원칙으로 기본적인 전기, 수도, 난방 등 사용료를 지불하면서 평생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국가 중심의 주택 공급 체계는 더는 제 구실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됐다.

특히 이 시기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부동산 거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먹지 못해 당장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집이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 됐고,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집을 팔아 식량을 사려 했다.

또 돈이 좀 있는 사람들에겐 헐값으로 좋은 부지의 집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당국의 공급만 기다리다간 평생 차례지지 않는 기회였다. 당국도 죽어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력하게 처벌할 수도 없었다.

주택 거래 형태도 매매, 임대차(전세, 월세) 등의 방식으로 다양해졌다. 이런 방식이 점점 자리를 잡으면서 최근에 와선 단순한 매매를 넘어 돈주들이 자금을 투자해 주택을 공급해 팔아먹는,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는 부동산 거래 행태가 발달해지고 있다.

주택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부동산 중개인도 도처에서 생겨나고 있다. 주택 시장은 어쩌면 북한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주택의 소유권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대신 거주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주택에 대한 ‘입주권’을 발급해주고 있다. 입주권은 상속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사고파는 행위가 부동산 시장의 형성과 함께 암암리에 진행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구매자와 판매자는 상호 합의를 통해 입주권을 거래한다.

거래가 이뤄지면 입주권을 구매한 사람은 해당 기관에 찾아가 자신의 명의로 된 입주권을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 즉 명의 변경을 하는 셈이다. 이 입주권의 발급은 해당 구역 인민위원회 주택배정지도원의 의뢰를 받아 시 인민위원회 주택배정처에서 진행하는데, 주택 거래가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그들 역시 뇌물을 받는 재미에 빠져 시장에서 공인된 일정 금액의 뇌물을 찔러주면 큰 무리 없이 명의 변경이 진행된다.

주택배정지도원과 주택배정처는 노동당과 군부, 보위부 등에 밀려 별 실권이 없어진 인민위원회에서 가장 ‘노른자위’ 업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곳에 들어가려는 간부들의 노력도 눈물겹다. 물론 노력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뇌물 액수가 절대적으로 당락을 좌우한다.

2000년 이후로는 기업 활동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일련의 정부 조치로 북한 내부에서 시장화가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택 건설 자금과 시멘트, 철근, 모래, 자갈 등의 자재, 건설 인력을 해결할 수 있는 건설 시장도 빠르게 형성되면서 주택의 재건축과 신축 공급이 급증했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평양도 시내 중심부는 아파트를 신축할 만한 신규 부지가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평양 부동산 열풍은 재건축에서부터 불기 시작했다. 평양 시대 중심부의 아파트는 대다수 1950년 6·25전쟁 직후에 지은 낡은 아파트들이다. 전쟁 시기 40만 발 이상의 폭탄이 평양에 떨어졌고, 시내에 형체가 남은 건물은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폐허 위에 북한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1950~1960년대 주요 도로들을 따라 수많은 4~5층 아파트들을 건설했다. 지금 와서 볼 때 이 아파트들은 서울 같으면 벌써 재건축이 두 번 됐을, 60년이 훌쩍 넘은 낡은 아파트가 됐다. 하지만 소련의 건설 도면대로 지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구조에는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매우 든든한 것이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아파트의 용적률을 늘려 리모델링을 하거나, 낡은 아파트나 단층 주택 지대를 완전히 허물고 그 부지에 새롭게 짓는 재건축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식의 부동산 개발이 평양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 시작됐다. 마진도 꽤 남아 평양의 부동산 붐을 타고 북에서 돈이 좀 있는 많은 사람들이 평양 아파트 재건축과 분양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른바 리모델링은 주로 외랑식 저층 아파트들에서 진행된다. 이런 개축이 진행된 근본 원인은 평양시 도시 미화 계획에 따른 정부의 조치에 있었다. 아무리 골조가 든든하다고 해도 세월이 흐르면 수십 년 된 아파트들이 점점 볼품없어지고 지붕에서 비까지 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파트가 개인 소유가 아니라 국가 재산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 경우 주민들은 해당 구역에 결함을 퇴치해달라는 신소(민원)를 하게 된다.

그러나 정부가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당국은 이런 민원에 대해 각 구역별로 능력껏 퇴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국이 할 일을 각 지역에 떠맡긴 것이다. 지방 행정조직이라고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아무래도 지붕 공사도 하고 외장재도 새로 바르고 해야겠는데 자금은 없고, 그래서 간부들이 생각해낸 방식이 리모델링이다.

평양의 리모델링은 아파트를 보수하면서 층수가 낮은 아파트들을 골라 그 위에 증축을 하는 식으로 새 집을 얹는다. 오래전에 지어진 외랑식 아파트들은 대체로 5층짜리인데 여기에 3~4층씩 더 올려 새 집을 지은 뒤 이를 다시 판다. 워낙 아파트 골격이 든든하기 때문에 5층 아파트 위에 3~4층씩 더 올려도 크게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새로 지은 아파트를 팔아 번 돈으로 해당 지구 안의 1선 도로 아파트(메인 도로를 따라 지어진 아파트)들의 지붕 공사도 하고 외장재도 새로 바른다. 그런데 이렇게 증축해 지은 새 집은 승강기도 없는 아파트의 맨 위층이니 그렇게 비싸지 팔리지 않는다. 결국 이익이 적기 때문에 북한에서 전문적으로 아파트에 투자하는 돈주들이 이런 판에는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이런 리모델링은 1970~80년대 지어진 세워진 소규모 벽돌 아파트들을 대상으로도 진행된다. 소규모 벽돌 아파트는 보통 3층짜리인데 한 층에 15평 정도의 살림집 2개가 있는 경우다. 이런 아파트는 시내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대성구역, 모란봉구역, 서성구역 등에 많은데 현재는 거의 다 증축돼서 5층짜리 아파트로 변신한다.

소규모 아파트들은 층수가 높지 않기 때문에 5층짜리 아파트보다 이익금이 좀 남는다. 5층짜리 아파트에 증축을 해 8층짜리가 되면 8개 층이나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하지만, 3층짜리 아파트가 5층이 되면 5개 층만 걸어 올라가면 된다.

걸어 올라가기만 하면 큰 문제가 없지만, 식량 석탄 등을 모두 메고 올라가야 하니 한 개 층이 높아지는 것에 평양 사람들은 꽤 민감해 한다.

사회적 지위가 있고 고위층과 인맥이 밀접한 사람들은 아예 혼자서 소규모 아파트 증축 사업을 벌여 완공하기도 한다. 대개 3층짜리 아파트에 두 개 층을 올려 집을 4채 정도 얻는데 1채는 자기가 쓰고 3채는 팔아버리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서로 잘 알거나 신뢰가 만들어진 사람들끼리 공동 투자해서 다 지은 다음 함께 나누거나 파는 경우도 있다. 본인이 직접 증축에 뛰어들면 설계부터 시공까지 일일이 참여할 수 있으므로 자기의 기호대로 살 집을 짓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이런 증축에서 제일 큰 걸림돌은 돈이 아니다. 증축 허가를 받아내려면 해당 지역 기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 허가를 받는 것이 돈 뿐만 아니라 권력과 인맥까지 동원돼야 하기 때문에 여느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