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파견되려면, 피 검사 300달러, 키 1cm 100달러
536 0 0
주성하 2019.09.27 16:51


여성 노동자들의 해외 파견 증가는 거기에 기생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만들어냈다. 소위 직업 거간꾼으로 불리는 이들은 전문 해외에 파견될 여성들을 모집해 소개해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중국 상대방과 거래해 계약을 따낸 무역일꾼이 급히 100명 가까운 여성 인력을 모집해야 한다면 이런 거간꾼들에게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거간꾼들은 자기의 채널을 모두 동원해 사람들을 모집하는데, 일은 쉽고 생활비는 많이 받는다는 등 각종 감언이설을 퍼부어 지망생들로부터 적게는 50불, 많게는 100불 이상 받아낸다. 역시 인맥 관계가 절대적인 북한에서 권력을 이용해 이런 초기 투자 없이 ‘무료’로 해외에 나가는 여성들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런 소개비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 물론 그 이익을 거간꾼 혼자서 먹을 수는 없고 여직원을 모집하는 해당 무역업자는 물론 파견에 관여하는 기관이 있는 사람들과도 일정하게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번 기회가 또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식당의 접대원이나 요리사로 파견되는 경우에 이런 소개비는 무조건 100불 이상이다. 특히 동남아 나라들의 식당에 나가려면 200불 이상이다.

해외에 나갈 수만 있다면 이 정도 뇌물은 당연히 감수하는 분위기이다. 이렇게 돈을 내고도 정작 계약이 파기되거나 조건이 허락하지 않아 돈만 떼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이 모집되면 ‘간부사업’이 진행된다. 북한에서 간부사업이란 간부가 되기 위한 조사를 의미하는데, 해외 파견의 경우 해당 인물의 경력과 가정 주위 환경 등을 파악하고 외국 파견 자격이 된다는 증거를 마련하는 일이다. 출신성분이 나쁘면 해외에 나갈 수가 없다.

북한에서는 외국 파견뿐 아니라 사무원과 관료 전체에 대해 이러한 간부 사업이 진행되며, 그에 따라 해당한 사람들에게 두툼한 ‘신원요해’ 자료철이 붙어 다닌다. 물론 이 자료철은 본인이 볼 수는 없다.

이런 자료를 다루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외할아버지가 해방 전에 소 한 마리를 갖고 살았던 부농”이라는 것까지 당시 주변에서 함께 살았던 증인들의 증언과 함께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고 한다.

간부사업을 담당하는 노동당 간부부 간부들도 이 틈을 타 돈벌이를 한다. 물론 일반 외국 파견 노동자보다는 유학생과 무역일꾼 등 급수 높은 대상일수록 받을 수 있는 뇌물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이 뇌물을 요구하는 명분은 다양한데, 이중 빠지지 않는 것이 “당신의 신원 조회를 하느라 차를 타고 많이 다녔는데, 기름값도 많이 들고 식비도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민등록 체계가 정연한 북한에서 간부사업이 그렇게 품이 들일은 아니지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어쨌든 자기가 수고했으니 그 대가를 뇌물로 달라는 뜻이다.

그리고 대상 인물의 문건이 구색에 맞게 마련되지 않았거나 가족, 친척 중 신원이 불명확한 인물이 한명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빌미 삼아 더 큰 뇌물을 받아낸다.

물론 이들도 자기 살 구멍은 파놓는다. 무리를 해가며 하기엔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대상은 아예 손대려 하지 않는다.

이런 간부 일꾼들의 직업도 북한에서는 역시 선망의 대상이지만 위험도는 높다. 신원을 보증해 외국에 보냈는데 그 사람이 탈북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 경우 간부 사업을 잘못한 책임을 지고 파면당하는 ‘운 나쁜’ 간부들도 꽤 있다고 한다.

이런 대외 파견 기회를 노리고 이익을 얻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서성구역에 있는 평양시 제2인민병원에는 해외 파견자들의 신체검사를 전문으로 맡는 검역소가 있다. 여기서는 해외에 파견되는 노동자, 사무원, 무역일꾼 등 모든 사람에 대한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검역소의 권한이 대단하다. 여기서는 종합검사를 진행하는데, 이들의 먹이감이 되는 항목은 피검사와 키 지표다. 피검사 결과가 항원 양성으로 나오면 해외 파견되는 길이 막힌다. 항원 양성이란 쉽게 말해 피에 병균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 외국에서는 피 항원 양성이란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지표지만 해외에 파견되는 북한 근로자들에겐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 이유인즉 북한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보험에 들지 못하기 때문에 외국에 나가 병이라도 걸리면 그 부담이 쉽지 않고, 결국 이런 것을 막으려고 사전에 파견을 막는다는 명분이다.

피검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300달러 이상이 필요하다. 그것도 인맥을 내세워 검역소 소장을 겸하는 병원 원장이나 병원 당 비서와 직접 통해야 한다. 일단 거래가 이루어지면 소장은 아랫사람들에게 위임해 신체검사표를 다시 조작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조작도 아무에게나 해주는 것은 아니다. 꼬리가 길어 걸리면 무조건 파면이기 때문에 검역소장도 믿음직한 인맥 관계가 아니고서는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피 항원 양성이 나온 일반 지망생들은 바로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태반이다.

다음 지표는 키다. 북한도 해외에 나간 근로자들이 북한의 생활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외국 파견 시 합격 몸무게와 키를 정해놓고 그것을 통과하지 못하면 파견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

키 지표는 여성 근로자 153cm 이상, 남성 근로자 160cm 이상이다. 그러나 실제 중국에서 피복 제작이나 식료기업 같은 데 선출되는 여성들의 경우 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키가 150cm 정도면 누구나 시도하는데 이때 키 1cm를 조작해 늘이는 데 100달러가 소요된다. 이 키 계측은 검역소 책임간호장이 직접 진행한다. 양말도 신지 못하게 하고 머리카락 속에 뭘 숨기지 않았는지도 검사하면서 엄격히 진행한다.

하도 깐깐히 하면서 어떤 경우는 실제 키보다도 작게 나와, 해외 파견 근로자들 속에서는 검역소 키를 측정하는 자는 분명히 제 규격이 아니라는 말까지 돌 정도다. 이렇게 되어 측정된 키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할 수 없이 돈을 뿌려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번 해외에 파견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적어도 수백 달러를 뇌물로 줄 밑천이 있어야 시도해볼 수 있는 있는 일이다. 실제 중국에 나와 일하는 접대원과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 물어보면 적지 않은 여성이 빚을 내 뇌물을 주면서 해외에 나왔다고 대답한다.

이제 그들은 낯선 땅에서 자기의 노력을 팔아 그 빚도 갚고 앞으로 북에 돌아가 살아야 할 밑천도 벌어야 한다. 이들이 어떤 열악한 조건에서도 묵묵히 열성껏 일하는 이유다.

열사(熱沙)의 땅에서, 시베리아의 동토에서 이들이 피땀 흘리며 벌어온 외화는 오늘날 북한 주민의 삶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장마당으로 표현되는 시장경제의 윤활유가 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북한이 해외에서 번 돈은 빼앗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화 다발을 보면 세관에서 이런저런 트집을 걸어 까다롭게 굴긴 하지만 뇌물을 좀 주면 통과할 수 있다.

해외에 나온 노동자들의 고통은 남쪽에도 낯설진 않다. 우리도 1960~80년대에 똑같은 과정을 밟아왔다. 그렇지만 국가 과제와 뇌물로 훨씬 더 많은 돈을 뜯겨야 하는 데다 노동당과 보위부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북한 노동자는 훨씬 더 힘들다.

해외 파견은 외화를 벌기 위한 북한 당국의 목적과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해외 기업들의 목적이 하나로 어우러지고, 여기에 피땀으로 자신과 가정의 앞날을 개척할 자본을 마련해가는 북한 사람들의 노력이 함께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