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일가가 사랑한 한국 가수와 가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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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19.10.09 18:29


사실 북한에서 한국 노래가 이 정도로 널리 불리게 된 것은 새 것을 동경하는 젊은이들의 진취성에도 있겠지만 김 씨 일가의 공이 제일 크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은 생전에 남한 노래를 즐겨 불렀다.

1978년 북에 납치됐다가 8년 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배우 최은희와 신상옥 감독은 공동 수기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에서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납치됐던 기간 김정일의 특별한 신임을 얻은 그들은 김정일이 주최한 연회에 자주 참석할 수 있었다. 당시 그의 요청으로 남한 대중가요인 패티김의 ‘이별’을 불렀다고 한다.

이 곡은 김정일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노래 중의 하나로 알려졌다. 이별을 들으면 김정은이 이번에 요청했던 장덕의 ‘뒤늦은 후회’가 떠오른다.

김정은은 이 노래를 들으며 아버지와의 어떤 추억의 연결 고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북에서 이 노래는 매우 생소한 노래인데, 김정은은 이 노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김정일은 이 노래 외에도 남한 가요 ‘하숙생’과 ‘동백아가씨’도 좋아했고, 당시 남한에서 유행했던 노래는 모두 알고 있었다고 한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도 자신의 수기 ‘김정일의 요리사’를 통해, 김정일과 측근들이 연회장에서 자주 남한 가요와 일본 가요를 비롯한 ‘자본주의 나라’ 가요들을 듣거나 불렀다고 회상했다.

하루는 김정은의 생모로 2004년 사망한 고용희가 김정일과 연애하던 시절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는데, 당시 고용희는 김정일과 벤츠를 타고 밤새도록 남한 노래를 들었다고 말했다.

고용희는 그 추억의 노래를 자신 앞에서 직접 불렀는데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라고 후지모토는 밝혔다.

2009년 8월,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논의차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김정일의 한국 노래 사랑을 목격한 일인이다.

당시 묘향산 특각(별장)에서 김정일과 함께 오찬을 진행했다. 와인이 들어가고 흥이 오르자 김정일은 “밴드 들어오라 그러라우”라고 지시했다.

여기에 출현한 밴드는 모두 11곡의 노래를 불렀는데 그 가운데 3곡이 한국 가요였다. 여기에는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도 포함됐다.

이렇게 김정일이 생전에 한국 노래를 얼마나 좋아했는가 하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고 많은 이들의 증언들도 있다. 그렇다면 그의 아들 김정은은 어떨까.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유학하던 시절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독일의 남성 듀오 그룹 모던토킹(Modern Talking)의 ‘브라더 루이(Brother Louie)’였다고 영국의 일간 텔레그라프가 그의 동창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 ‘브라더 루이’라는 노래는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북한에서 대인기를 끌었던 ‘보천보전자악단’의 음반에도 도이칠란트 가요 ‘브라저 루이’로 수록되어 있다.

보천보전자악단은 사실 1983년 김정은의 파티에 동원되던 밴드였다. 파티 때마다 김정일과 북한 권력층은 자기들이 단속하는 ‘자본주의 퇴페 문화’를 즐기면서 밤을 보냈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이런 연회장, 파티장들에서 어떻게든 하나둘씩 흘러나온 노래들이 북한 사회 전반에 한국 가요 열기를 일으키는 데 상당히 기여했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 북한 주민들은 이런 비밀 파티가 있었다는 것은 물론 거기서 한국 노래가 공공연히 불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다.

보천보전자악단은 한 8년 듣다보니 질렸는지, 김정일이 이들을 1991년 일본에 보내면서 일반 주민들에게 공개했다.

어쨌든 보천보전자악단의 공연 기간은 김정은의 어린 시절과 겹친다. 어릴 때 브라더 루이를 평양에서 접한 김정은은 스위스에 가서도 이 노래를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전용 음악 밴드인 모란봉악단이 올해 초 한국에 와서 한 공연을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노래에 대한 사랑은 김정일과 김정은을 통해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