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최고 부자는 어떤 계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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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19.10.23 16:27


뇌물은 인류사 기원 이후 어떤 사회에서나 있었다. 지금도 많은 나라와 정부들이 뇌물과 그에 따라 만연하는 부패를 줄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한다면서 수십 년 넘게 인민의 정신개조에 힘을 쏟아온 북한이 사실은 세계적으로도 뇌물 행위가 극심한 나라들 중의 하나라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현재 북한 형법에는 뇌물죄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자기의 직위 또는 직무상 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하지 않는 대가로 돈이나 물건을 비법적으로 받는 범죄. 뇌물죄는 객관적으로 일정한 직무상 행위를 수행했거나 수행하지 않은 ‘대가’, 그 ‘사례’로 돈 또는 물건을 받았거나 채무를 면제 받았거나 계통적으로 음주접대를 받은 것과 같은 일정한 물리적 이득을 얻었을 경우에 성립된다.

북한은 뇌물 행위에 대해 착취 사회가 남겨놓은 낡은 유습이며, 당과 국가에 대한 인민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개인에 대한 아부 아첨을 낳게 하는 행위라고 하면서, 이런 행위의 근절을 지속적으로 외치고 있다.

그러나 뇌물 행위는 없어지기는커녕 날로 심해지고 있으며 이제는 ‘예물 행위’로 발전해 북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일종의 ‘동력’처럼 되었다. 평양의 뇌물 이야기를 통해 그 실상을 알아보자.

물론 뇌물이 오가는 일은 한국에서도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아래 글을 읽으면서 “역시 우리는 한민족”이라며 머리를 끄덕일 수도 있고, 또는 “평양에선 요건 다르네”하고 웃음을 참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뇌물과 관련된 블랙유머는 정말 많지만, 마음에 드는 가장 대표적인 유머를 고르라면 이걸 선택할 것 같다.
 
“100원 떼먹은 놈은 자기비판하고 1000원 떼먹은 놈은 호상비판을 하며, 1만 원을 떼먹은 놈은 주석단에 앉아 회의를 집행한다.”
 
생활총화와 같은 회의 때 대중 앞에서 잘못을 고백하고 반성하는 것이 자기비판이고, 비판 대상이 된 사람을 꾸짖는 역할이 호상비판이다. 주석단에 앉은 간부들은 비판 대상이 될 사람을 정하고 어떤 처벌을 줄지 결정한다.
 
하지만 불법 행위를 따진다면 가장 큰 처벌받을 사람들은 다름 아닌 간부들이다. 북한 간부들이 각종 제도와 규정의 잣대를 휘둘러 주민들을 착취해 부정 축재한다는 사실은 남쪽 사람들도 다 아는 것이니 새삼스럽진 않다.

배급과 월급으로 살 수 없게 된 지 수십 년째이고, 시장경제라 볼 수 있는 장마당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됐는데 간부들이 쥔 제도와 규정의 잣대는 과거 사회주의 유물이다 보니 휘두르면 걸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선 살아있는 것 자체가 비사회주의고 비법(非法)이다”고 푸념한다. 법대로 살면 이미 오래전에 굶어죽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간부에도 레벨이 있다. 뇌물이 쏠리는 ‘물 좋은 곳’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갓 탈북한 북한 주민 100여 명씩을 대상으로 4년째 매년 조사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 주민들은 평균적으로 가계소득의 20% 정도를 뇌물로 바친다. 얼추 한국 근로자가 세금을 내는 것과 비슷한 수치다.
 
북한의 뇌물도 소득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농민처럼 별로 뜯길 것이 없는 저소득층은 거의 뇌물을 쓰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큰 장사를 할수록 뇌물액은 커져 소득의 50%가 넘기도 한다. 이것 역시 소득에 따라 세금 액수가 크게 늘어나는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북에서 가장 잘사는 사람을 묻는 질문엔 4년째 중앙당 간부와 법 관련 종사자가 압도적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법 관련 종사자에는 검찰, 보위부, 보안서(경찰) 등이 속한다. 주민들은 단속이라는 구실로 뇌물 받는 자리가 최고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부자 1위로 꼽힌 중앙당 간부는 워낙 출신성분이 빼어나게 좋아야 하니 사실상 타고나는 자리이다. 하지만 숫자는 많지 않다. 반면 2위로 꼽힌 법 종사자들은 웬만한 출신성분이면 평민 출신도 노려볼 수 있는 자리다.

한국으로 치면 사법시험을 통과하는 셈이다. 그런데 북엔 사법시험이 없고 법률대학이 김일성대에만 있으니 입학 자체가 곧 사시 합격에 연수원 입학과 마찬가지다.

전국의 판검사는 모두 김일성대 선후배들이니 이들의 결속력과 군기는 정말 세다. 한국에 김일성대 졸업생이 적잖게 탈북해 왔지만 아직 김일성대 법대 출신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은 안에서 잘 먹고 잘 사니 올 일이 없는 것이다.
 
북에선 판사보다는 검사를 훨씬 더 선호한다. 법에 걸리지 않는 기관이나 기업이 없으니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뇌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검사 몇 년이면 호화주택은 물론이고 자식들까지 다 새 집을 사줄 수 있다.

기업을 상대로 하는 검사에 비해 직접적으로 주민들을 협박하거나 단속해야 하는 보위부 보안서는 좀 불쌍하고 비열해야 하는 자리다. 보안원들 속에는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검사는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다.
 
남을 잡아넣을 수 있는 칼을 쥐지 못했다면 도장을 틀어쥐고만 있어도 괜찮다. 큰돈을 다루는 무역 기관 사람들도 제품을 수출하거나 수입하려면 노동당, 무역성, 외무성, 인민위원회 등 도장을 받아야 할 곳이 10곳이 넘는다. 도장 하나마다 뇌물이 들어간다.
 
도장으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자리 중 하나는 각 지역 노동당 간부부(간부들을 관리하는 부서) 해외파견과이다. 외국에 노동자로 나가려 해도 담당자에게 수백 달러를 주어야 한다.

평양의 경우 해외파견과에 1년만 있으면 몇 만 달러는 기본으로 챙길 수 있다. 북한의 생활수준을 감안할 때 한국으로 치면 매년 10억 원 이상 뇌물을 받는 자리인 셈이다.
 
노동당 조직지도부 산하 간부들은 간부 승진과 노동당 입당을 돈 받고 판다. 보통 500달러면 입당이 가능하다. 과거엔 10년 군 복무를 하면 입당시켜 주었지만 이제는 군인조차도 200∼300달러는 줘야 한다.

대학생은 훨씬 어려워서 건설장에 나가 입당하려면 공사 지원비와 당 비서 뇌물로 각각 3000∼4000달러는 써야 한다. 노동당원이 되지 못하면 간부가 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노동당 민방위부는 과거 가장 인기가 없는 자리였지만 최근 연간 장마당이 활성화된 뒤론 인기가 급상승했다. 북한에선 누구나 민방위 훈련과 비슷한 적위대 훈련을 무려 보름이나 받아야 하는데 이 기간 동안 장사를 못하면 손해가 크다.

요즘 평양의 경우 중심구역에선 훈련을 빠지는 대가로 18달러 상당의 15㎏짜리 휘발유표 두 장 이상이, 주변구역에선 한 장이 뇌물로 쓰인다. 1만 명만 훈련 불참을 눈감아주면 20만 달러가 생긴다. 그러니 구역당 민방위부장은 웬만한 무역회사 사장 저리가라 하는 자리가 됐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부자는 중앙당 간부가 맞다. 주민들을 뜯어먹고 사는 간부들의 생살여탈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뇌물 액수는 점점 커진다. 손자뻘인 김정은에게 머리 조아리며 기를 쓰고 버틸 때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간부들만 뇌물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북한에서 뇌물은 중앙당, 지방당에서 시작해 사법, 검찰, 보위, 보안기관, 문화예술기관, 교육기관, 공장, 기업소, 외화벌이 단위, 어느 공장 보위대에서 시작해 중앙당 간부에 이르기까지, 유치원생부터 퇴직한 노인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살고 생활하는 모든 장소, 모든 공간이 뇌물과 연결되어 있다.



   
고가자리 10/23 23:53 수정 삭제
어느정도는 자본주의식 경제논리가 뇌물이란 이름으로 통용되는게 아닐까 싶네여. 앞으론 뇌물이 아니라 성의라고 불러도 될듯 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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