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내는 김정은, 스토킹이 돼가는 대북희망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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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19.11.01 17:42

지난해 9월 20일 백두산 장군봉에 올라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1년 뒤 깊은 금이 간 둘의 신뢰는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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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연애를 하려면 크게 두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선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어필해 호감을 사야 한다. 교제에 성공하면 그 다음은 신뢰를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상대에게 주어야 하는 것이다.
  
주변에는 호감은 샀으나 신뢰를 주지 못해 깨진 커플들이 부지기수다. 연애가 실패하면 보통 다른 인연을 찾지만, 일부는 미련을 던지지 못해 스토킹이라는 집착에 빠진다. 스토킹은 대개 결말이 좋지 않다.
  
최근의 남북관계가 바로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판문점 회담과 평양 방문을 통해 김정은의 호감을 사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백두산에서 두 사람이 함께 손을 번쩍 쳐들었을 때의 표정은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이후 신뢰의 단계에서 양쪽은 크게 틀어졌다. 난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무엇을 약속했는지 모르지만, 많은 약속들을 했다고 확신한다.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그리고 평양에서 두 사람이 비공개로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당시 김정은도 희망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약속들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후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는 낌새를 조금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 역시 신년기자회견에서 이 제안에 크게 환영하며 “이로써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위해 북한과 사이에 풀어야 할 과제는 해결된 셈”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딱 그 말뿐이었다. 행동은 따르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남북 관계는 미국의 허락 없이 전진시킬 수 없다는 태도를 지금까지 유지해 왔다.
  
그런데 당시에 정말 방법이 없었을까. 김정은이 지난 주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하자마자 정부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한에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며 “북한의 관광산업 육성 정책 등도 충분히 고려하면서 금강산 관광 문제에 대한 창의적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은 만나자는 요구를 거절했다. 그런데 올 초 김정은의 제안이 나왔을 때 왜 진작 이렇게 움직이지 않았을까. 

자신이 신년사를 통해 북한 주민과 전 세계에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했음에도 상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 무안을 당한 김정은이 이제 와서 남쪽의 제안에 협조할까.
  
김정은의 눈에는 1년 넘게 미국만 쳐다보며 남북관계 진전에 손을 놓고 있는 남쪽이 미국의 ‘마마보이’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올 봄부터 문 대통령과 더는 교제하려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마음을 바꾸지 않고 있다.
  
연애를 잘하려면 눈치도 있어야 한다. 상대의 마음이 떠날 조짐이 보이면 재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북한이 떠나가려 하자 ‘남북 평화경제’ ‘비무장지대(DMZ) 국제평화지대화’ ‘올림픽 공동개최’와 같은 뜬금없는 메시지를 줄기차게 던졌다.
  
상대가 나를 마마보이로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제일 시급하다. 그래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그런데 “결혼해주면 신혼집은 어디에 잡고, 애는 몇 명 낳고, 결혼 10주년엔 하와이로 가족 여행가자”는 식의 먼 미래의 희망만을 혼자 쏟아낸다면 어떻게 될까. 현실에선 이쯤 되면 스토커로 간주돼 상대의 마음이 완전히 닫힌다.
  
이런 스토킹은 당장 멈춰야 한다. 올 여름부터 한국엔 실용적 대북정책은 사라지고 대북희망정책만 남았다. 먼 미래를 약속하며 북한에 매달릴 시간이면 미국을 찾아가 설득하는 시늉이라도 보이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또 대통령이 이제라도 북한을 꿰뚫어보는 전문가를 발탁해 의지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문 대통령에게 누가 대북정책을 조언하는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다만 나는 작년 청와대가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가서 평양 번화가를 찍은 사진집을 읽었다고 홍보할 때 솔직히 적잖게 실망했다. 

읽은 사람이나, 추천한 사람이나 대북 인식이 사진집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큰일이다. 아직 임기가 반이나 남았다. 새롭게 도전할 시간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