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회의 축소판- 연애와 결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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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19.11.12 16:46


결혼은 그 사회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북한도 연애와 결혼문화를 보면 그 사회를 엿볼 수 있다. 처지가 비슷한 집안끼리 결혼하는 것은 북한도 다를 바가 없다. 결혼을 인생을 바꾸기 위한 인간의 욕망도 북한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요즘 평양의 결혼식은 한국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대세다. 전문분장사를 초청하는데 200달러 이상 쓰고, 전문 촬영가도 대동한다.

특히 북한의 유명 배우들이 결혼식에 와서 사회를 봐주고 100달러 이상 받아가는 것이 유행이 됐는데, 결혼식에 많이 초청받는 배우들은 드럼수나 피아노연주가와 같은 소규모 악단까지 대동하고 다닌다. 북한의 연애관과 결혼 풍습에 대해 알아보자.

결혼 상대-까치는 까치끼리

“북에선 연애로 결혼하나요, 중매로 결혼하나요?”

한국에 와서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그만큼 북한을 잘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사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다.

북에도 중매결혼과 연애결혼이 있다. 북한 젊은이들도 데이트도 하고 혼전연애를 즐길 수 있다. 다만 그 비율이 몇 퍼센트인가가 문제일 뿐이다.

이 비율에 대해선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여러 증언을 종합해 보면 80% 이상의 청춘남녀가 중매결혼을 한다고 한다.

중매는 주로 친척, 형제들, 친구들이 서주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찬 합당한 대상이 있다고 여겨지면 중매를 선다. 북에서는 가정경력이나 토대가 발전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만큼 중매쟁이는 결혼 상대방 본인은 물론 가정환경까지 대체로 요해하고 중매에 나선다.

결혼 후 모르던 사실이 알려져 안 좋은 일이 발생하는 경우 중매쟁이도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중매는 잘 서면 술 석잔, 못서면 뺨 석대’라는 말이 북한에도 있다.

게다가 중매를 많이 서면 자기 복이 나간다는 풍설도 있다. 그래서 젊은 층은 대체로 중매에 나서지 않고 중년 이상의 나이든 여성들이 중매쟁이로 나서는 것이 보편적이다. 누가 중매를 서든 결혼이후 가정생활이 행복하면 일생을 두고 중매쟁이와 친척처럼 지내기도 한다.

요새는 연애결혼도 차츰 많아진다고 하지만 진짜로 결혼까지 가는 연애는 보기 힘들다. 북에는 “까치는 까치끼리 산다”는 말이 있는데 이러한 연애도 대체로 주위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가끔 양가 부모의 신분이 크게 차이 나는 연애도 물론 존재하지만, 이런 것은 대개  결혼까지 이어지는 것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때문에 대부분 수준이나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결혼한다고 보면 된다. 집안을 따지는 것은 북한도 남쪽에 못지않다.

“조강지처 절대 버리지 않겠습니다.”

북한에서 여자는 25살, 남자는 30살을 넘으면 혼기를 넘어섰다고 본다. 내가 북에서 살 때도 여자 25살이면 시집가라는 독촉이 심했고, 27살이면 이젠 포기한 노처녀로 보는 분위기였다.

요즘엔 북한도 결혼하는 나이가 많이 늘어났다고 보지만, 그래도 결혼해야 할 나이는 보통 23-26살 사이로 본다. 남성인 경우 27-30살 사이로 보면 된다. 이 나이가 지나면 왜 장가 안 갔냐, 시집 안 갔냐 하며 들볶는다.

남자는 군대에서 제대하면 만 27살이 넘는다. 10년 산골에서 여자를 거의 보지 못하다가 집에 오면 부모들이 장가부터 가라고 들볶는 것이다.

북에선 군에서 갓 제대한 총각들의 눈에는 어떤 처녀들이나 다 고와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멋모르고 장가들었다고 일생을 후회하며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특히 제대 후 대학 추천이라도 받은 경우 이미 자기 부모님들은 늙어 뒤를 봐줄 형편이 못되고 장가를 가는 것으로 대학 과정의 재정적 환경을 준비하는 총각들이 많다. 북에선 대학을 하나 졸업하려면 집 한 채를 팔아도 감당이 안 되는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쉽게 대상을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의 입장에선 4년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것이데, 그러니 남자가 제대군인에 당원에 대학까지 입학한, 이를테면 북한에서 갖출 수 있는 것은 다 갖추었다고 해도 쉽게 딸을 주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북에선 제대군인 대학생의 경우 3학년쯤은 되어야 몸값이 올라간다. 물론 정 살림이 구차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장가를 가는 총각들도 있는데 이렇게 1~2학년 때부터 처갓집 뒷바라지를 바라다보면 자기 조건에서 이것저것 가릴 형편이 못된다. 그래서 시골에 산다든지, 인물이 없다든지, 성분이 떨어진다든지 하는 여자들을 얻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급해서 장가를 갔다가 3,4학년쯤 아쉬운 맘이 든다. 같은 제대군인 출신 친구들은 집안도 좋고, 미모도 뛰어난 여성들과 장가를 가는데, 자기는 같은 조건인데도 이미 유부남인 것이다.

그래서 눈이 높아진 남자 측에서 바람을 피우는 경우가 많다. 지방 남자가 평양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제대하자마자 집에서 맺어줘 결혼한 여성을 버리고 평양 여자와 눈이 맞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자기가 바라는 대로 지방 여성과 이혼하고 평양 여성에게 새 장가를 드는 경우도 있지만, 여성 쪽에서 대학에 열심히 신고하면 퇴학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북한에선 아직도 조강지처를 버린다는 것을 큰 허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보위부와 같은 곳에 있으면 이혼한 남성은 바로 제대시켜 버린다.

내가 김일성대를 다니던 1990년대도 대학 내에서 이런 사건이 계속 벌어졌다. 김일성대는 분기에 한번씩 전체 대학생을 모두 모아놓고 사상투쟁회의란 것을 연다. 그런데 사상학습 이런 것은 빼먹어도 이 사상투쟁 회의는 너무 재미있어 참가율이 높다.

각종 사건을 저지른 대학생들이 모두가 지켜보는 연단에 올라 자기 잘못을 이실직고하고 반성하는 것인데, 담배 피우다 잡힌 대학생, 술을 마시다 걸린 대학생, 도둑질하다 걸린 대학생 등 잘못이 다양하다.

그중에 지방의 조강지처를 버리고 평양 여자와 바람난 사례도 보통 끼워져 있는데 자아비판이 끝나면 대학 당비서가 “그래서 동무, 자기 처 버릴 건가 안 버릴 건가”하고 소리치면 문제가 된 대학생은 “살겠습니다”하고 소리친다.

“거 뭐 소리가 왜 그 모양이야. 온 대학이 다 듣게 크게 대답하라우”하면 “예, 절대 안 버리고 같이 살겠습니다”하고 목청껏 소리치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 말을 들어보니 지금도 그러고 있다고 한다.


   
궁금 11/13 17:07 수정 삭제
주기자님, 얼마 전에 일어났던 북한 선원 2명 귀순거부 사건의 진실관계와 북한쪽 반응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혹시 글 하나 써 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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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나무 01/11 16:19 수정 삭제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고 사는 것을 가치있게 여기는 문화, 그것은 고상한 문화입니다. 북에 그런 문화가 더 잘 보존되어 있다니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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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01/16 19:25 수정 삭제
어느나라든지 조강지처를 버리면 남편들 벌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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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01/16 19:25 수정 삭제
어느나라든지 조강지처를 버리면 남편들 벌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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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01/16 19:25 수정 삭제
어느나라든지 조강지처를 버리면 남편들 벌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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