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 북한의 주례사-"사회주의 대가정 한 송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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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0.02.21 17:11


결혼식이 시작되면 주례자가 주례를 한다. 이런 주례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결혼식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결혼식에 주례가 등장한다.

물론 주례라는 것이 남쪽에서 생각하는, 교수나 목사 등이 하는 주례를 생각하면 안 된다. 북한에서 ‘주례자’라는 것은 사실상 ‘사회자’의 역할을 한다.

주례자는 신랑, 신부의 직업상 선배이거나 연장자가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특별히 초청된 ‘분위기팀’이나 친구들 중의 이미 결혼한 사람이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분위기팀’은 결혼식이 성황리에 진행되도록 분위기를 잘 이끌며 전문 놀아주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주로 명배우들이나 가수들이 얼굴을 팔며 이런데 참석한다.

사실 북한에서는 공훈배우쯤 된다 해도 먹고 사는 것은 몰라도 어디 가서 돈을 마음 놓고 쓸 처지는 절대로 못 된다. 옥류관이나 청류관 같은 국영식당에 가서 국정가격표를 얻어 이용하거나 맥주 집에서도 얼굴을 팔아 쉽게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 이들의 낙이라고 할까.

북한에서 배우라고 불리는 탤런트들은 어디 가서 장사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업을 할 수도 없다. 그들이 돈을 버는 부업이 아닌 진짜 직업이 바로 이런 결혼식 주례다. 그야말로 얼굴을 팔아 살아가는 것이다.

결혼식에 분위기조로 참가하면 한 번에 100달러 이상은 벌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모든 배우들이 다 이렇게 받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는 이미 이런 ‘행사’에 잘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진 배우들이 특정되어 있으며 이들도 결혼식을 위해 주례부터 마감에 이르기까지 언제든 달려가 맞춰주는, 이른바 ‘행사보장’에 항상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결혼식에 많이 가는 이들은 드럼수나 피아노연주가와 같은 소규모 악단까지 대동하고 다닌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퍼지면서 부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요즘은 좀 꺼린다.

왜냐하면 유명 배우들이 결혼식장에 나타나면 결혼식 분위기가 이상하게 되기가 일쑤이다.

사람들이 신랑, 신부를 축하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연기를 보면서 거기에만 집착하게 되기 때문인데 물론 신랑, 신부도 함께 즐거워하는 것은 좋은 측면도 있지만 주인공이 바뀐 것 같은 분위기가 생긴다고도 한다.

그래서 최근에 설립된 전문예식장들에서는 아예 이런 주례꾼이나 악단 같은 것을 준비해놓고 있다.

주례는 주례사를 준비하는 사람에 따라 내용과 수준이 각이하지만 일반적으로 “온갖 꽃이 만발한 뜻 깊은 4월의 오늘 화창한 이 봄날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는 희망을 간직한 신랑 000 동지(혹은 동무는)와 신부 000 동지(혹은 동무)는 만 사람의 축복 속에서 사회주의 대가정에 피어날 또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으로 오늘 두 사람의 인생을 하나로 합치는 뜻 깊은 결혼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라는 식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 신랑 신부의 부모, 경력 소개와 직업 소개를 한다. 이때 당과 수령의 배려도 어찌어찌 되었다는 부분은 꼭 포함된다.

앞으로 어떤 환경 속에서도 서로의 사랑을 변치 말고 아들딸 많이 낳고 백년해로 하라는 식으로 마감을 장식한다. 다음 신랑, 신부의 결혼을 축하해 첫잔을 들것을 제의하고 “축하합니다”하는 인사말과 함께 다 함께 첫잔을 든다.

그 다음은 신랑, 신부가 부모들과 친척들에게 술을 붓고, 사진을 찍고 등 예식을 진행한다.

신랑, 신부 상호간 결혼반지를 끼워주는 의식이라든가, 시계를 채워주는 의식,  신랑, 신부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의식이라든가 어쨌든 주도자가 끌어나가는 방식에 따라 신랑, 신부를 축하해주기 위한 각이한 형식의 과정들이 진행된다.

물론 이러한 예식들이 얼마만큼 어떤 수준에서 포함되는가도 결혼 당사자들의 재력, 그들 부모들의 능력에 따른다.

북한 결혼식에서 특이한 것은 이런 예식이 끝나면 오락회가 진행된다. 대체로 신랑, 신부 측에서 번갈아 가며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춘다.

오락회 도중 신랑이 신부를 안고 친구들 사이를 통과하게 만들거나 친구들이 함께 춤을 추면서 쌍무를 하게 하는 등 역시 이때도 신랑, 신부를 최대한 즐겁게, 그리고 연회장은 최대한 활기 있게 만드는 것이 주도자의 기본 역할이다.

이런 과정에서도 결혼상을 배경으로 한 사진 촬영은 계속된다. 당연히 마감은 신랑, 신부의 2중창으로 장식된다. 이렇게 식당 결혼식이 끝나고도 신랑과 신부가 살게 될 집으로 가서 2차를 하는 것도 요즘 추세이다.

물론 이때에는 신랑, 신부의 가까운 친구들과 친척들 몇 명만이 참가한다. 신부도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밤새 마시고 놀며 새 날을 맞는 것이 흔한 일이 되고 있다.

신부의 분장 모습으로부터 마감 결혼식이 끝났음을 선언할 때까지 이 모든 과정을 촬영 편집해 ‘**과 ***의 결혼 비디오’라는 식의 이름을 단 다큐 비슷한 편집들을 만들어 신랑, 신부에게 선물하는 것이 촬영가의 임무이다.

2000년대 이후 결혼한 새 부부들이 이런 편집물을 수록한 CD 한 장 쯤 가지고 있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역시 결혼의 추억은 이 CD판이나 몇 장의 사진 속에 담기는 것이다. 평양의 결혼식은  대체로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장기간의 시각에서 볼 때 남북은 어쨌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함께 갈 것이다. 언젠가는 남북의 청춘남녀들이 사랑을 속삭이며 결혼까지 할 그날도 꼭 올 것이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며 국제 결혼도 추세인데 다른 민족도 아닌 남과 북의 청춘들이 한 가정을 이루는 그날, 새로운 남북 결혼식이 수많이 태어나 한반도 전체를 휩쓰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해 본다.

그런데 그런 결혼식은 한국식으로 해야 할까, 북한식으로 해야 할까. 살짝 상상해봤다.

   
박혜연 02/22 17:09 수정 삭제
북한의 결혼식은 전세계의 결혼식들을 통틀어 가장 빡빡하고 가장 경직된문화라고 배웠는데요? 주성하기자님을 통해서 북한의 결혼식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는걸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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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02/22 17:10 수정 삭제
전체주의 국가들의 결혼식들을 유튜브동영상으로 보면 오히려 우리나라의 결혼식들보다 훨씬 자유롭고 훨씬 멋지고 요란하더라구요? 심지어는 이란의 결혼식조차도 상류층여성들일 경우 히잡을 벗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참석할정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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