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오래살라 당부한 할머니는 왜 3달 뒤에 얼어 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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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0.02.18 18:11

김정은이 “장수” 당부했던 할머니, 몇달 뒤 세상 뜬 사연

“할머니, 앓지 말고 건강하여 노동당 시대에 장수하십시오.”

지난해 9월 4일 평양 창전거리 종로동 1반 1현관 3층 1호를 찾은 김정은은 이 집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당부했다. 

그는 이날 평양의 랜드마크로 우뚝 선 창전거리를 찾아 평양기계대학 교원 심동수의 가정을 방문했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이 ‘방석을 연세 많은 할머니에게 양보했고, 집 안 구석구석 살피며 물은 잘 나오는지,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는지 자상하게 요해했다’고 전했다. 다음 날 한국 언론은 이 집 싱크대에서 컵을 닦는 이설주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어떻든 김정은이 “장수하라” 당부하고 떠난 지 불과 몇 달 뒤 할머니는 사망했다. 다름 아니라 난방이 안 되는 집에서 영하의 추위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새로 건설된 창전거리는 평양에서도 매우 인기가 좋은 거주지역이다. 전기 사정이 열악한 겨울에도 보통 오전 5시부터 7시 사이, 오후 6시부터 11시 사이엔 불이 들어온다. 

주택은 정전돼도 외부 장식등은 꺼지는 법이 없이 번쩍거린다. 수돗물도 하루 두세 번은 나온다. 문제는 난방이다. 작년 겨울에도 창전거리 아파트 입주자들은 추위로 크게 혼이 났다.

난방이 안 들어오기는 평양 대다수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아파트들은 심지어 난방관이 다 삭아 버렸다. 그래서 많은 집들은 집에 ‘무동력 난방장치’를 설치했다. 

이는 부엌이나 베란다에 부뚜막을 쌓고 석탄으로 덥힌 물을 배관을 통해 방으로 보내는 ‘가정식 온수난방장치’이다. 이마저도 설치에 80∼100달러 정도, 석탄값도 한 해 40달러나 들어 중산층 이하는 설치할 엄두도 못 낸다. 또 연탄가스 중독 사망자가 적잖아 추워도 참는 집이 적지 않다.

창전거리 아파트 문제는 당에서 배려로 하사한 집이라며 개조를 못하게 한 때문이다. 돈이 있어도 무동력장치나 구들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김정은이 방문한 집은 혁명사적 주택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나마 평양의 물 사정은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당시 평양에 살았던 나는 아파트에선 추운 것보단 물이 없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체험했다. 

추위는 방에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몇겹 이불 속에서 더운 물통을 안고 자면 괜찮다. 지금도 평양의 대표적 대규모 단지인 광복거리의 대다수 집은 그렇게 산다. 또 다른 대규모 단지인 통일거리는 다행히 동평양화력에서 온수를 보내줘 10∼15도는 보장된다.

고난의 행군 때에는 물을 긷기 위해 오전 4시부터 1층에 내려가 길게 줄을 서야 했다. 물을 담은 양동이 두 개를 들고, 흘린 물로 빙판이 된 계단을 20층쯤 오르면 쓰러질 정도다. 

이렇게 고난을 헤치며 구한 물로 밥은 어쩔 수 없이 지어야 한다. 컵에 담은 물을 수건으로 적셔 얼굴을 닦는 것이 세수였다. 청소는 어림도 없거니와 물걸레로 닦아도 바로 언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는 생리상의 ‘큰 것’을 해결하는 일이다. 수세식 변기는 있어도 물이 없다. 그렇다고 배를 그러쥐고 몇십 층을 달려 내려갈 수도 없고. 

그래서 종이에 ‘변’을 받았다가 밤에 슬그머니 버리는 집들이 많았다. 몇십 층 높이에서 버리는 바람에 가로등도 없는 밤거리를 걸어가다 오물 벼락을 맞는 사람들도 있어 이런 경우 “번개 맞았다”고 했다. 밖에다 버리지 말라고 아무리 감시를 해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선 소용없었다.

2000년대 초반 나라 사정이 좀 나아지자 당국은 양수장 단독 전력선 공사와 수도관 보수를 우선적으로 했다. 지금은 저층은 일주일에 한두 번, 고층은 보름에 한 번 정도라도 수돗물 공급이 되니 많이 좋아진 것이다. 

평양 아파트는 물과 엘리베이터 문제 때문에 대개 저층은 잘사는 집, 고층은 가난한 집이 산다. 특히 고층에 사는 노인들은 엘리베이터가 다니지 않으면 하루 종일 나가지도 못하고 집 안에서 떨어야 한다. 돈을 좀 벌면 웃돈을 주고 위에서 아래로 ‘신분 이동’을 하려 애쓴다.

하지만 요새 평양에는 전혀 딴 세상에서 사는 아파트들이 늘고 있다. 노동당 재정경리부가 직접 담당한 이른바 ‘선물아파트’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보통강구역 전승기념탑 옆의 30층 아파트이다. 

항일 투사 유가족, 퇴직한 고위간부들이 산다. 1999년 스페인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마라톤 우승을 하고 “결승 지점에서 장군님이 어서 오라 불러주는 모습이 떠올라 끝까지 힘을 냈다”는 한마디로 단숨에 선군시대의 귀감으로 떠올라 인생 반전을 이뤄낸 정성옥도 이 아파트에 산다.

그밖에 중구역 동안동의 30층 예술인아파트, 대성구역 용흥동의 35층 은하수아파트와 그 맞은편에 36층과 44층짜리 김일성대 교원아파트도 지난해 이후 건설된 선물아파트다. 

이 아파트들은 정전이 거의 없고 전기난방을 사용하며 엘리베이터가 항시 가동된다. 10월 말 김정은이 방문한 김일성대 교원아파트는 240m²의 면적에 방만 8개이며 가구까지 국가에서 마련해 주었다. 한국 기준으로도 고급 아파트다. 

건설을 맡은 공병국 1여단 여단장이 “너무 많은 돈과 품이 들어 이런 집은 앞으로 더 짓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국은 인근 주민들의 거센 불만을 의식해 선물아파트엔 밤에 창가림을 치라는 지시까지 했다. 김정일 시대의 ‘선물정치’는 김정은 시대 들어 고가의 아파트로 계승 발전했다.

평양은 분명 특혜 받는 도시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 평양은 새로운 계층으로 다시 나뉘고 있다. 선물이란 이름으로 한정된 자원을 독점한 소수와 이를 빼앗긴 다수로. 어느 때보다 매서운 한파가 예고된 올겨울엔 빼앗긴 고통이 더욱 뼈저릴 것이다.

(※추신-기사에 언급됐다는 이유만으로 심동수 가족이 억울한 화를 당할까 걱정하는 것이 북한에 대한 남쪽의 ‘상식’이다. 하지만 탈북자도 돌아오면 용서해 준다는 노동당이 설마 그렇게 옹졸할까 싶어 믿어보기로 했다. 그 가족은 정말 얼어 죽은 죄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