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따라 배우라는 소설의 주인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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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0.03.27 17:53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국경을 봉쇄해 물가가 많이 올랐다 들었습니다. 김정은은 가뜩이나 요즘 경제성과가 없어서 인민들 보기 낯 뜨거운데 마침 잘됐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코로나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놓고 난리를 치면 사람들이 또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듯해서 겁을 먹고 말을 잘 들을 게 아니겠습니까.

2월 초에 나선에선 중국에 다녀온 뒤 격리됐던 무역일꾼이 대중목욕탕에 갔다가 총살됐다고 들었습니다.

김정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에 대해선 위반자들을 군법으로 다스리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시범에 걸린거죠. 사회에 공포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군법 적용할 명분이 없었는데, 바이러스 즉 비루스가 명분을 만들어준 겁니다.

한편으론 김정은은 건군절을 맞아 김혁, 차광수를 따라 배우라는 바람을 다시 불게 합니다.

노동신문 7일자를 보니 김혁과 차광수를 투철한 수령관과 참된 인생관을 실천으로 보여준 혁명가의 전형이라 추켜세우면서 “간부들은 수령님(김일성)을 충성으로 높이 모신 항일혁명 선렬(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세계를 따라 배워야 한다”고 썼더군요.

김혁, 차광수. 정말 제가 어렸을 때부터 귀가 빠지게 들었던 이름입니다. 그런데 김정은까지 ‘나이 어린 김성주를 혁명 선배들이 따랐다’ 이게 마음에 들었는지 또 우려먹는군요.

북한이 김혁, 차광수 귀 빠지게 왜곡해 써먹으니 저도 귀 빠지게 ‘아니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그래서 3년 전에 이 방송을 통해 말씀드렸던 김혁과 차광수의 진실을 다시 한 번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김혁이 ‘조선의 별’이란 노래를 지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이 노래는 1970년대 김일성 우상화를 본격 시작할 때 중앙방송 최고의 작곡가와 작가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김정일이 김일성 초기 혁명 활동 관련 노래를 찾으라니 선전부에서 수소문하다가 평남 개천군에 1930년대 카륜에서 살았다는 노파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막상 찾아가니 그 노파는 90세가 넘어 귀도 먹고, 눈도 멀고, 노래는커녕 아무 것도 기억도 못합니다.

성과가 없이 가긴 그러니 작곡가와 작가는 개천 농장 축산반 선전실에 며칠 눌러 앉아 자기들이 노래를 만들고 노파가 전해준 것이라고 뻥을 친 겁니다. 이 내용은 바로 조선중앙방송에서 20년 넘게 작가로 있던 분이 탈북해 전해준 이야기입니다.

김정일이 흐뭇해서 두 명에게 엄청난 상을 준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곧 이 노래를 바탕으로 김성주의 혁명역사를 완전히 왜곡해 미화시킨 조선의 별이라는 연재 영화까지 찍게 합니다.

김혁보다는 차광수가 더 유명했습니다. 차광수는 1905년생인데 길림에서 이종락과 혁명활동을 같이 했던 사람입니다. 달변가라 인기도 많았는데, 이종락의 조선혁명군 막내였던 김성주가 차광수를 참 많이 따라다녔습니다.

‘조선의 별’에선 차광수가 일본 부대와 싸우다 수류탄으로 자폭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적대적인 중국인 부대 구역에 잘못 들어갔다가 총격전을 벌이고 시신도 못 찾았습니다.

김혁은 할빈에서 멋진 연설을 하고 삐라를 뿌리며 ‘한별 만세’를 부른 뒤 투신해 죽은 것처럼 영화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상식적으로 2층에서 떨어져 죽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할빈에서 총격전을 벌이다 총상을 입고 체포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는 모릅니다.

워낙 김혁은 대단히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그 당시 만주에 어디 가나 볼 수 있었던 혁명을 하겠다고 뛰어다니던 청년 중 한 명이었습니다. 별로 유명하지 않았는데 어린 김성주를 잘 보고 좀 챙겨줬나 봅니다.

김혁, 차광수의 진실이 이렇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또 새로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김혁의 애인이 승소옥이라고 있었습니다. 회고록에도 사진이 있는데, 참 미모의 여성입니다. 김혁이 잡혀가자 승소옥은 자살한다고 하다가 얼마 안돼 최일천이란 동아일보 베이징 지국장과 결혼해 애를 낳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돼 앓아서 죽습니다. 최일천은 새로 장가를 가서 또 아이를 낳습니다. 그 아이가 지금은 거의 80세 고령이 됐습니다. 미국에서 큰 사업가로 성공하신 분인데 제가 직접 만나도 봤습니다.

최일천은 해방 후에 서울에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라는 책을 써서 제가 위에서 언급한 김성주, 차광수, 김혁, 이종락 등의 카륜 시절을 다 썼습니다.

이 책 원문이 제게 있는데 북한 당 역사연구소에도 있습니다. 물론 북에선 비밀도서죠. 이 책에 기초해 북한은 김일성의 혁명역사를 김일성 중심으로 당시 인물들을 엮어 그럴 듯하게 다시 소설을 쓴 겁니다.

문제는 6.25전쟁 때 서울에 내려 온 북한군이 후퇴 때 반동 놈들을 끌고 간다며 유명한 사람들을 끌고 북에 갔는데, 이때 최일천 선생을 끌고 가다가 도중에 반동이라 처형합니다.

그런데 김일성 우상화가 시작되면서 보니 최일천 선생이 쓴 책이 진짜 짜깁기에 요긴한 보물인 겁니다. 그나마 김성주가 이종락을 따라다녔다는 사실이라도 처음 언급한 책이기도 하니까요.

1994년에 김일성은 미국에 있는 최일천 선생의 부인과 아들을 불러 조국통일상을 준다 어쩐다 요란스럽게 떠들고 그때 노동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나왔습니다.

최일천 선생의 부인과 아들이 북에 간 이유는 딱 하나. 아버지를 왜 죽였는지 알고 싶은 것인데, 김일성은 모르는 척 천연스럽게 “최일천 선생은 반동놈들이 죽였다”고 했답니다.

인민군에 끌려가다 도망쳐 가족에게 사실을 전해준 사람이 다 있는데 말입니다. 최일천과 승소옥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북에서 고생스럽게 살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혁명열사로 뜨는 바람에 팔자가 좋아지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는 밤새워 해도 모자라겠지만, 오늘은 시간상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소설을 써놓고 그 주인공을 따라 배우라 강요하는 북한이 참 어이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2020. 2. 14 대북방송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