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이 만세를 불렀던 전설적 북한 간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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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0.06.07 17:18

지금 북한을 보면 김정은만 답이 없는 게 아니고, 그 아래 간부란 것들도 하나 같이 김정은에겐 비굴하게 굽신거리며 자기 주머니만 생각하는 간신들뿐입니다.

이는 바로 인민을 위한 간부는 절대 살아남을 수가 없는 북한 체제의 속성 때문입니다. 북한이라고 진정한 간부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런 사람들이 어떤 운명을 맞는지 그 대표적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북한 역사에 김 씨 만세 말고, 인민이 특정 간부의 만세를 불렀다고 전설처럼 전해지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조세웅이란 사람인데, 1982년 함경북도 도지사격인 도당 책임비서, 1988년 부총리, 1989년 평북 책임비서를 지낸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 대한 일화가 많지만 일부만 전하겠습니다.

1985년 설날에 함북 사람들은 갑자기 술 두 병씩 공급받았습니다. 과거엔 한 병씩 주었는데 왜 두 병이지 하고 어리둥절했는데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조세웅 비서가 자기 방에 도당 조직비서, 보위부장, 안전부장 등 도내 간부들을 다 모아놓고, “동무 집에 설날 마실 술이 얼마나 있냐”고 한명씩 물었답니다.

간부들이 “아, 충분합니다. 비서 동지 필요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아부했죠. 그러자 조세웅이 그러자 “동무들은 간부니깐 술이 많지만, 인민은 술 한 병 공급받아 이집 저집 세배 다니고 나면 마실 술도 없소. 설날에 어떻게 하나 술 두병씩 공급하시오”라고 했답니다. 나중에 이를 알고 사람들이 감동했죠.

1985년 겨울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도 소재지인 청진의 동상 앞을 지나가다 새벽에 동상을 청소하려 나온 한 어린 학생 남매를 보고 그가 다가가보니 한 명은 양말을 신고 한 명은 맨발입니다.

“넌 양말을 왜 안 신었니?” 하니 “동생이 신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양말 한 개로 돌려 신는 거죠. 1980년대 중반 북한이 잘 사는 척, 아프리카 흑인들이 와서 찬양가 몇 개 부르면 김일성이 흡족해서 몇 개 농장 운영할 농기계 아프리카에 마구 퍼줄 때인데, 내부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집무실에 돌아간 조세웅 비서는 간부들 앞에서 아침에 본 사연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아이들도 헐벗게 하면서 무슨 혁명을 한다는 거냐”면서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해 함경북도의 모든 학생들은 중국에서 수입해 온 체육복, 즉 단복 한 벌과 양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대다수 학생들이 그때 단복이란 것을 구경했고, 지퍼, 북한말로 쟈크란 것도 처음 봤습니다. 단복을 사온 외화는 도에서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비축했던 것이라 합니다.

조세웅 비서는 암행어사처럼 몰래 다니며 현장을 파악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조세웅은 1989년 평안북도 도당책임비서로 옮겨갔는데 이번에는 평북 인민들이 “조세웅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인민들이 만세를 부르는 곳에선 기필코 탐관오리가 비명을 지르게 됩니다. 조세웅이 가는 곳마다 뇌물 받으며 살던 간부들이 살 수가 없고 인민을 위해 살라며 조이니 이건 지옥인 겁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모함합니다.

1990년 김일성이 신의주를 시찰할 때 한 간부가 김일성에게 “인민들이 수령님 만세를 부르지 않고 조세웅 만세를 부르고 있어 개인숭배가 심각하다”고 고자질했습니다.

산전고초를 다 겪은 이 노회한 독재자는 겉으로는 매우 대범한 듯 “조세웅 만세는 나에 대한 만세입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조세웅 신화의 종말이었고 이후 조세웅은 계속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김일성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파악한 평안북도 2인자인 조직비서를 비롯해 간부들이 이때라 생각하고 비열한 함정을 팠습니다.

술자리를 마련해놓고 술을 못 마시는 조세웅을 억지로 권해 취하게 한 뒤 부축해 나오게 하다 계단에 방치한 뒤 사진 찍어선 다음날 중앙에 “조세웅이 늘 술에 만취돼 사는데다 술주정이 매우 심해 간부들을 마구 대하고 계단에 누워 자는 등 추태가 심해 도당 사업에 지장이 많다”고 보고했죠.

며칠 뒤 중앙당에서 내려와 조사를 시작했는데, 여느 때라면 모함인 것이 드러났겠지만, 김일성이 ‘조세웅 만세’를 들은 뒤라 통하지 않았습니다. 조세웅은 심심산골의 임산사업소 초급당비서로 쫓겨났고, 몇 년 뒤 철도부 초급당비서라는 한직에 올랐다가 내각 사무국 당비서를 지냈는데, 한때 도지사 위치에 있던 사람에겐 한참 급이 떨어지고 권력도 없는 자리입니다.

조세웅은 1998년 12월에 사망했는데, 당시는 황장엽 비서가 망명하고 서관희 농업비서가 간첩으로 몰려 죽는 등 살벌한 숙청바람이 불 때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김일성 사망 뒤 권력 유지에 불안감을 느끼던 김정일이 인민들에게 추앙받는 조세웅을 가만 두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조세웅만큼 인민들이 따랐던 간부는 이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로를 보고 누가 인민을 생각하겠습니까.

북한에 탐관오리밖에 없는 것은 그 체제가 인민을 위한 간부는 살려두지 않는 체제이기 때문이고 이런 김 씨 왕조의 본질을 우리는 잘 꿰뚫어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