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를 하늘에 맡긴 동해의 비극 현장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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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0.07.21 10:35

여름이 왔으니 오늘은 제가 북에서 매년 여름마다 겪었던 극적인 옛 이야기 하나 해드리려 합니다. 주성하TV는 끝까지 들어주시면 힘을 얻습니다.

제가 김일성대, 그것도 정말 들어가기 쉽지 않은 외문학부를 졸업했다고 하니 제가 특권층 자식인줄 아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정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정말 해보지 않은 일이 별로 없는데, 10대 시절부터 시작해 어선도 한 10년 정도 탄 것 같습니다.

태어난 곳이 어촌 마을이라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특히 오징어철, 북에선 낙지철이라고 하는 7월부터 9월 사이에 바다에 나가 오징어를 참 많이 잡았습니다.

김일성대 다닐 때도 여름 방학이 되면 목선을 탔고 탈북하기 몇 달 전까지도 또 배를 탔습니다. 대학 한 학기 다니려면 돈이 많이 필요한데, 저의 집이 잘 사는 집이 아니다보니 제가 바다에 나가 오징어를 잡아 돈을 벌어 다시 평양에 올라갔습니다.

대학 기숙사에서 주는 밥이 워낙 한 줌도 안 되니 이렇게 번 돈으로 장마당에서 추가로 사먹어야 견딜 수 있는 겁니다. 오징어잡이를 한국으로 치면 방학 기간 아르바이트 했다고 보시면 되는데, 이 오징어잡이라는 것이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고되기 짝이 없습니다.

일단 여름철 오징어잡이 일과를 보면, 오후 2시쯤에 부두에 나가야 합니다. 그때부터 군부대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긴 줄을 서서 출입증 확인하고, 까탈스럽게 트집 잡으면 뇌물도 주고 이러면서 2시간 쉽게 갑니다.

4시쯤 부두에서 떠납니다. 한국에 밀려오는 4미터 남짓 목선을 보셨죠. 그런 배를 타고 5시간 정도 날바다로 나옵니다. 9시쯤 어장에 도착하면 육지가 보이지 않고, 이때부터 오징어를 잡기 시작해서 새벽 5시경까지 온 밤 낚시줄을 잡아당겼다 풀었다 합니다.

오징어 낚시 공구를 보면 우산 비슷하게 생긴 오징어 낚시가 한 22개 정도 달려 있는데, 줄이 쉽게 엉키기 때문에 두 팔목으로 이렇게 감았다 풀었다 합니다.

오징어가 다섯 마리 이상 한꺼번에 걸려도 무거워 올리기 힘듭니다. 줄을 반대로 살짝 풀어놓으면 한두 마리 떨어져 나가는데, 그게 얼마나 아깝습니까.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끌어올리는데, 문제는 낚시 바늘이 낚시 한 개에 수십 개가 붙어 있는데, 이게 무겁게 올리다 팔뚝에 닿으면 파고듭니다. 낚시가 줄에 22개 이상 매달려 있다보니 한 개만 파고드는 게 아니라 낚시 여러 개, 거기에 달린 바늘 수십 개가 팔뚝에 파고들지만 그래도 그 고통을 이기면서 끌어올립니다.

다섯 마리 이상 한 번에 걸리는 기회는 며칠에 한 번밖에 없거든요. 그래도 아무리 죽을힘을 써도 열 마리는 한번에 못 끌어 올리겠더군요.

이렇게 새벽 5시까지 잡고 부두에 들어가면 아침 9시가 됩니다. 다시 수속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 밥을 먹고 씻고 자면 11시입니다. 한 2시간 남짓 자고 또 일어나 부두에 나옵니다. 이 생활이 석 달 이어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너무 피곤해서 어장에 나가는 5시부터 9시 사이엔 교대로 배에서 자고, 들어올 때도 자면서 잠을 보충합니다.

그래서 오징어잡이를 ‘피발이’라고 하는데, 3개월 가까이 하루 서너 시간만 자면서 밤새 고역을 하다 보니 피가 마른다고 붙은 이름입니다.

배를 얻어 타면 카바이드등을 켜고 새벽까지 잡은 오징어의 70%를 배 주인에게 주어야 했는데, 10마리 잡으면 3마리만 제 것입니다. 당시 오징어 1마리를 말려서 팔면 쌀 1키로 정도 살 수 있었고, 그렇게 팔린 오징어는 중국에 팔려 갑니다.

저는 목선을 타다가 날바다에서 두 번이나 침몰을 겪어야 했습니다. 저는 감옥도 6번이나 옮겨 다녔고, 정치범이 되기도 했고, 총구 앞에도 서 봤고,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겼는데, 바다에서 죽을 뻔한 적도 몇 차례 됩니다. 그때마다 운이 좋게 살아났습니다.

망망대해에서 쪽배는 가랑잎입니다. 갑자기 큰 파도가 일면 높은 마루 위에 올랐던 쪽배가 깊은 골로 뚝 떨어지는 일을 밤새 겪어야 합니다.

발밑에선 배 밑바닥 널빤지가 탕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금시라도 쪼개질 듯 부르르 떨고, 머리를 쳐들면 양쪽에 2~3미터 위에 검은 파도의 성난 흰 갈기밖에 보이지 않는데, 아무리 익숙돼도 그때마다 ‘오늘이 제삿날이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기적 아닙니까.

제 고향에선 오징어가 사람을 잡아먹습니다. 오징어철인 6월에서 9월까지는 학생부터 칠순 노인까지 남자들은 모두 바다에 나가는데, 기타를 치며 남한 노래를 ‘폼 나게’ 부르던, 제게 ‘바위섬’ 노래를 배워주었던 옆집 살던 3대 독자 정길이도 죽었고, 길 건너 집 영국이 형제도 한날한시에 죽었는데, 과부로 영국이와 유복자인 영남이를 키우던 이웃 아주머니는 자식들의 시신조차 못 건졌고, 그리고 미쳤다고 들었습니다.

보조개가 예뻤던 제가 참 아껴주었던 성희는 애를 업고 배에서 일하다 다른 13명과 함께 빠져 죽었다는 얘기를 서울에서 들었습니다.

남정네를 내보낸 아낙네들은 밤에 갑자기 파도가 높아진 날이면 아침부터 부두에 나가 목을 빼고 기다리다가 “아무개 아무개가 못 들어왔다메…” 하고 쑥덕이는데, 오후 들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또 배들이 나가는 곳이 제 고향입니다.

제 고향에선 굶어죽진 않습니다. 오징어 떼를 잘 만나면 한여름에 벼락부자가 나오기도 하는데, 북한의 다른 곳에선 꿈도 못 꿀 일입니다. 그렇다 보니 죽음과 이웃하면서도 매년 일확천금을 노리는 외지사람이 밀려들면서 고향 바닷가에는 오히려 집들이 늘어납니다. 굶어죽지 않는 대신 이렇게 바다에 빠져 죽는 죽음과 이웃하고 삽니다.

배꾼들에게 제일 공포는 바람인데, 샛바람이 몰아치면 흰 갈기 날리는 파도에 작은 목선은 가랑잎입니다. 처음 배를 탔을 때 밤에 졸리니까 무심코 휘파람을 불었다가 뺨을 맞을 뻔했습니다. 바다에서 휘파람은 바람을 몰고 온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한 번 오징어를 잡고 들어오는데, 샛바람이 20분 정도 갑자기 불고 지나갔습니다. 그때는 괜찮은데 한 30분이 지나자 바다가 섭니다. 파도가 골을 타고 들어올 때는 아무리 높아도 45도 각도로 키를 조종하면 배가 뒤집히지 않는데 샛바람에 파도가 서면 방향 없이 이리 치고 저리 칩니다.

그냥 배가 폴싹 뒤집혔는데, 배 밑바닥이 미끄럽고 파도가 이쪽저쪽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들이치니 배를 잡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 때는 구명조끼도 없습니다. 육지조차 보이지 않고, 또 북쪽 바닷물은 몹시 차서 30분 이상 물에 있기 힘듭니다. 옷을 입고 있으면 한 시간은 버틸 수 있는데, 그 안에 구조되지 못하면 죽습니다.

배에 세 명이 탔는데, 바닷물이 워낙 빠르게 흐르니 순식간에 서로 보이지 않습니다. 다행히 그때 배들이 들어가던 시간이라 20분 쯤 지나 다른 배를 만나 구조됐는데, 같이 빠진 한 명은 끝내 못 찾았습니다.

대충 한 바퀴 돌고 안 보이고, 기름이 없으니 더 못 돈다고 하고 들어갑니다. 남의 배라 뭐라 사정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그날 저랑 같은 배를 탔다 죽은 사람이 누군지 모릅니다. 전날 부두에서 삮발이 처지로 우연히 만나 함께 탄, 시내에서 온 남자라는 것밖에 모릅니다. 일용직 시장이나 비슷한 겁니다. 저도 20분 만 더 늦게 발견됐으면 죽었을 것입니다. 그 일을 겪고 저는 바다에선 절대 휘파람을 불지 못했습니다.

해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면 일본 앞바다에서 표류하던 북한 어선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계속 나옵니다. 매년 50~100척이 발견되는데, 북한 앞바다에서 표류하면 극히 일부가 해류를 따라 부산과 일본 사이까지 떠내려 왔다가 일본 서해안을 타고 올라갑니다.

일본에서 발견된 변사체들은 오징어잡이에 나섰다가 두 달 전쯤 조난당한 삯발이가 대다수일 것입니다. 그들도 독도 인근 해상을 표류할 때쯤까진 살아 있었을 겁니다. 북한은 일본까지 간 자국민의 시신을 찾아갈 생각도 안 합니다. 뒤집히지 않은 채 발견된 배는 십중팔구 질 낮은 중국산 엔진이 고장 났기 때문으로 짐작됩니다.

저도 한번은 바다로 나왔다가 육지로 돌아가는 길에 4마력짜리 엔진이 고장 났는데, 부두에서 6시간 이상 나온 데다 밤새 배가 흘러 돌아갈 거리는 100km가 훌쩍 넘었습니다. 먼 바다는 물이 빠르게 흐르는데, 쪽배는 강물에 흘러가는 듯합니다. 걸어가도 이틀 걸릴 거리를 꼬박 노를 저어 돌아왔는데, 뱃가죽이 등에 붙고, 하늘이 노랗게 변해도 살 생각뿐이고, 땅을 디디고서야 쓰러졌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그렇게 고장 난 어선이 표류하다가 물이 없어 사람이 죽습니다.
일본에서 34척이 발견될 정도면 매년 조난당하고 침몰한 북한 어선은 최소 그 숫자의 10배는 넘을 것입니다.

한 척당 탑승인원이 최소 3명이니 사망자도 1000명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무전기라도 있다면 수천 명이 살 텐데 없습니다.

저의 공포는 오래전에 끝났지만 동해의 비극은 언제면 끝날 수 있을까요. 난민이 넘치는 지중해에서만 벌어지는 줄 아는 그런 참사가 바로 우리의 눈앞 동해에서 30년 넘게 해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가 1990년쯤부터 배를 탔고, 그때부터 저렇게 죽어가고 있으니 매년 1000명씩만 죽어도 지금까지 최소 1만 명의 북한 동포들이 비명도 전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허망하게 동해에서 숨진 셈이고 올해도 이제 또 죽어가야 할 겁니다.

예전엔 동네 슈퍼에서 북한산 오징어만 봐도 눈물이 핑 돌았는데, 이젠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은 올 여름에도 동해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내시는 분들이 많겠죠. 그 바다의 북쪽에서 이 여름도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탈북민 07/23 07:08 수정 삭제
탈북자지만 그렇게 흔하다는 명태 한마리도 구경하기 힘든 평안도내륙지방에서 살다보니 해안가 사람들은 협동조합농장같은 공산주의를 하지 않고 자본주의나라처럼 뱃주인과 삮발쟁이들로 나뉘여 잡은 고기를 지들끼리 100프로 분배한다는게 신기하네요. 아니면 뱃주인이 김정은인가?

그나저나 최근에 배타고 극적으로 탈북하여 남한에 왔는데 문재인정권에 의하여 북괴가 조작한 살인마라는 누명을 쓰고 강제로 북송당한 이들도 이미 총살당하거나 어디 아오지탄광수용소에 같혔겠지요? 그들의 생사여부가 궁금하네요. 주기자님이 그들의 내막을 기록하여 반인륜적 반헌법적 문재인정권의 심판에 증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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