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북한군 6군단 쿠데타 사건 진상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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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0.08.23 17:27

오늘은 북한의 대표적 쿠데타 모의로 알려진 6군단 사건의 진실을 최초로 여러분들께 이야기하겠습니다. ‘6군단 사건’은 북에서 온 사람들 다 알고 있는 사건이고, 여러 소문이 북에 났습니다. 저도 11년 전에 6군단 사건들에 대해 북에서 돌고 있던 소문을 종합해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중에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북한 최고위층이고, 지금도 현직에 있는 북한 고위간부가 직접 친척에게 이야기한 내용을 전해 들었습니다.

요약하면 이 사건은 실제로 반정부 쿠데타 실패가 아니라 김정일이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실체를 부풀려 꾸며낸 사건이라는 것이 그의 이야기입니다. 주성하TV는 구독 좋아요도 좋지만 끝까지 들어주시면 더욱 좋아합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죽고 혼자 남은 김정일은 불안에 떨었습니다. 특히 무서웠던 것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습니다. 실제 김정일은 1991년 12월에 아버지 김일성에게서 군권을 넘겨받았는데, 94년은 군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북한 사람들은 군에도 가보지 못한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이 되자 집에서 야유를 많이 했습니다.

“어릴 적 군사놀이해도 원수가 되고 최고사령관이 되는구나” 이러고 있었는데, 평생 군복을 입었던 군인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이런 가운데 믿었던 김일성마저 죽게 되자 김정일은 군부를 자기 사람들로 채우기 위해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사회나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독재자가 음모를 꾸며 숙청하는 것은 워낙 역사적으로 흔한 일이고, 북한도 그런 사례가 많습니다.

이때 걸려든 것이 6군단이었습니다. 6군단은 1994년 1월 2일에 6.25전쟁 참가자인 군단장이 죽었습니다. 그 후임으로 간 것이 김정일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당시 군수총국장 김영춘이란 사람이었습니다.

가보니 6군단이 말을 잘 듣지도 않고, 정치위원부터 시작해 자기를 왕따를 주는 겁니다. 정치위원 등은 부정부패를 통해 돈을 많이 벌어 측근들을 키워 지방의 토호세력처럼 자리 잡았는데, 갑자기 김영춘이 낙하산으로 들어오니 경계를 하게 되고, 김영춘은 반 년 넘게 겉돌게 됩니다.

이때 마침 김일성이 죽었습니다. 사건 일으킬 소재를 찾던 김정일은 김영춘으로부터 6군단에서 부정부패가 심하다는 보고를 받고 이거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김영춘과 직책은 높지 않았지만 출세욕이 강한 원응희 당시 총참모부 보위국장을 불러 미션을 줍니다. 6군단을 반동 세력으로 쓸어버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해준 북한 고위층은 이때도 김영춘과 원응희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어 내막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김영춘과 원응희는 6군단 장성들이 쿠데타를 기도했다는 각본을 만들고 1994년 말 작전에 들어갔는데 정치위원 등 고위간부들을 회의를 한다며 함남 리원 비행장에 유인한 뒤 그 자리에서 체포했습니다.

목격자가 있는데, 그날 수십 명의 군인들이 차에서 내리는 중장인 정치위원을 덮쳤는데, 그는 “이놈들아~”하면서 고함을 치다가 복부에 주먹을 맞고 질질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단 보위부장 등 장성들을 가담자로 체포한 뒤 약 10개월의 사건 조사 과정을 통해 수백 명의 군관들, 함경북도당 조직비서를 포함한 현지 간부들 등을 체포해 수용소로 보내거나 탄광에 보냈습니다.

1995년 1월부터 6군단 산하 3개 현역 사단이 근무조건이 척박한 강원도로 밤마다 열차에 실려 이동했고, 그만한 수의 병력이 전연에서 후방으로 들어왔습니다. 6군단은 북한군 편제에서 삭제하고, 9군단으로 명칭도 바꾸었습니다.

이쯤 되니 북한에서 6군단 쿠데타 시도가 적발됐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들이 시도했다는 그럴 듯한 내용도 돌기 시작했습니다.

6군단 정치위원이 쿠데타를 계획했는데, 군단장이 동의하지 않아 암살됐대, 평양 공격 계획을 세웠대, 김정일을 유인해 암살하려 했대, 중국과 평양에 미사일을 쏴서 둘 사이에 전쟁을 일으키려 했대, 한국군과 손잡고 함북을 내주려했대 등 온갖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확실하게 이게 사실이라고 장담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6군단 반역 사건을 조작한 김정일은 이를 계기로 숱한 군부 장성을 물갈이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마무리된 1995년 중반부터 선군정치를 정식으로 내세웠습니다. 즉 고난의 행군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군대에 의지해 확실하게 탄압하겠다는 사실상 계엄조치였는데, 이는 푸룬제 아카데미 사건과 6군단 사건을 통해 자신에게 불만이 있는 세력을 숙청해 어느 정도 군을 장악했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6군단 쿠데타 사건을 조작한 김영춘은 그 공으로 1995년 9월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차수가 되고 총참모장에 오르고 2000년에는 공화국 영웅 칭호까지 받았습니다.

원응희도 총참모부 보안국장에서 인민무력부 보위사령관으로 승진한 뒤 1990년대 말 각종 대숙청을 주도하며 위세가 하늘을 찔렀지만, 너무 권력이 커진 것을 경계한 김정일에 의해 토사구팽이 돼 2004년에 결국 죽는데 살해됐을 것 같기도 합니다.

여담이지만, 푸룬제 아카데미 사건도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반김정일 쿠데타 시도는 아니고, 김정일이 1991년 최고사령관이 된 뒤 처음으로 조작한 일로 압니다.

군 경험도 없는 김정일이 군권을 장악하고 세습 독재 정권으로 가는데 가장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외국물도 먹고 선진 군사교리를 배워서 군에 대해 무식한 김정일을 우습게 여기는 소련 유학파들었습니다. 김정일은 이들이 소련에 매수된 첩자들이라며 다 숙청하고 심복들로 교체했습니다.

1990년대 또 김정일이 당 간부를 물갈이하기 위해 또 심화조라는 간첩단 사건 만들어서 2만5000명을 숙청하기도 했습니다. 이 이야기도 나중에 기회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6군단 쿠데타 사건은 실제 쿠데타 시도가 아니라 김정일의 군권 장악을 위한 음모였다는 것을 최초로 말씀드렸습니다. 속상하고 실망스럽더라도 사실은 사실인 겁니다.

그리고 아주 고위층이 친척에게 해준 말이지만 저도 전해들은 것이니 6군단 사건은 나중에 통일이 되면 자세히 다시 언급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