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탈북스토리 1편-중국 공안에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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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0.08.25 15:54

여러 구독자분들이 제 탈북 스토리 들려달라고 계속 댓글 달아서 오늘부터 제 탈북 스토리 좀 이야기할까 합니다. 오늘은 중국 공안에 두 번 체포됐던 이야기 한번 해보려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북송돼서 보위부 감옥에 들어가 정치범수용소에 가게 됐는데, 영화같이 극적으로 살아나왔던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탈북 스토리는 사실 좀 민감한 부분들이 있어서 다 공개할 수는 없는데, 이제 말씀 드리는 것은 제가 처음 세상에 공개하는 일입니다.

저는 탈북했다가 두 번 공안에 체포됐습니다. 제가 1998년에 최초로 탈북해 국경 옆의 마을에서 연변의 화룡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오다가 처음 잡혔습니다.

그때 오는 도중에 신분증 검열하는 초소가 두 개 정도 있었습니다. 저 혼자라면 그냥 걸어서 화룡까지 왔을 건데 이때 화룡에 사는 사람이 안내를 해준다고 와서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탔습니다. 그 사람하고 같이 100리 넘는 길을 걸어올 수는 없거든요.

또 그가 화룡에선 자기가 누구나 꿰고 있으니 걸려도 얼마든지 뽑아줄 수 있다. 초소에서 걸려도 걱정하지 말라. 그리고 그 초소에 단속도 이따금 나오니 걸릴 확률도 50% 미만이다 이래서 버스 탔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검열하려 공안이 나와 있더군요. 버스를 딱 세우고 타서는 앞에서부터 한 명 한 명 신분증 검열하고 옵니다. 신분증이 중국말로 ‘선펀쩡 shēnfenzhèng’인데, 선펀쩡 하면 한 사람씩 신분증 보여주더군요. 제게 신분증 있을 리가 있습니까.

같이 탄 사람을 힐끗 보니 모르는 척 창 밖을 내다봅니다. 공안이 제 앞에 와서 ‘선펀정’하는데 할 말이 없죠. 할 말이 없으니 그럴 때는 ‘뭐라구요’ 라고 하려고 생각했는데, 이때 제가 중국어가 북에서 배우다보니 너무 표준어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말한다는 게 그만 “뚜이부치, 워 메이팅 칭추 깡차이 니 스워더화”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미안합니다만, 저는 방금 당신이 하신 말을 정확히 듣지 못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저는 그렇게만 배웠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일상에선 잘 못 알아들으면 “뭐라고요”하지 “당신이 하신 말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진 않거든요. 중국에선 그냥 ‘팅부둥’하면 됐는데, 그걸 제가 몰랐습니다. 공안이 제가 정중하게 대답하니 자기가 더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습니다. 자기도 언제 이런 공손한 북경 표준어를 들어봤겠습니까.

공안이 앞사람들에겐 그냥 “신분증”하다가 제 대답을 듣더니 이번에는 아주 정중하게 “신분증 보여주시겠습니까”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메이따이” “못가지고 왔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내리라고 안하고 머리를 끄덕이며 지나가더군요. 저는 기적이 일어난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북한 사람들이 제대군인들이 많고, 주먹질 잘하는 사람도 많고, 악 밖에 안 남고 필사적인지라 공안이 거기서 잡으려 했다가 오히려 얻어맞고 다치는 수가 있으니 수를 쓴 거죠. 여자라면 잡았을 건데, 제가 젊은 남자고, 또 그때는 눈에 힘이 들어갔는지 아님 근육질이 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거기선 날 잡지 않고 모르는 척 내리고는 버스가 서는 화룡 버스역에 통화를 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화룡역에 내려서 “오, 안 잡혔네” 이러고 좋아서 가는데, 한 100미터쯤 갔는데 앞에 남자 넷이 마주오더군요. 한 5미터쯤 다가 왔는데 갑자기 주머니에서 권총을 겨누면서 “삐에뚱”하는 겁니다. 어이가 없더군요. 바로 수갑을 채워서 저를 안내해 주던 사람도 같이 잡아서 차에 싣고 화룡현 공안국 감방에 갔습니다.

취조가 시작됐습니다. 때리진 않았어요. “조선에서 왔냐”고 계속 묻는데, 저는 “아니다”. “그럼 어디서 사냐” “고아라 집도 없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앉아있었어요. 공안도 하도 답답한지 갑자기 중국어로 된 연변일보 툭 던지더니 이거 읽을 줄 아냐고 하는 겁니다.

제가 그때는 또 중국어 공부 열심히 해서 당시는 그걸 읽을 능력이 됐다는 것 아닙니까. 1면 톱이 기억나는데 연변 축구팀이 산둥팀을 2대0으로 이겼다는 기사였는데, 축구 기사인지라 다른 기사보다는 쉬웠고 아는 단어들이 많았어요. 그럼에도 다는 읽기 어려우니 한 문장 딱 보고 “연변팀이 산둥팀 2대0으로 이겼는데 아무개 선수가 골을 넣었다는거 아닙니까”하니 공안이 또 놀라요.

지금은 탈북해 중국에 오래 산 분들이 많아 중국어 잘하는 분이 참 많은데, 1998년 만해도 대량 탈북 초기여서 탈북자가 중국어 배울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어요. 또 북에서 중국어 배워주지도 않으니 그렇게 중국 신문 읽는 탈북자는 거의 없었던거죠.

공안이 한참 씨름질 하더니 구류장 같은데 집어넣더라고요.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잡히는 건가 싶어 앞이 까맸습니다.  그런데 같이 잡힌 조선족 있죠. 화룡을 끼고 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습니다. 아는 형 딱 부르니 그가 저녁에 와서 또 공안인 친구에게 와서 돈 좀 주고 우릴 꺼냈어요. 그리고 공안에게 제 학벌도 이야기했나 봅니다.

저녁에 구류장 문이 딱 열리고 나오라고 하더군요. 저는 모르니까 그냥 나가 딱 앉았는데 공안이 이러더군요.

“우리 너 김일성대 나온 거 다 안다. 그거 우리 칭화대 맞잡이 아니냐. 우리도 너 같은 인재를 북에 보내서 죽이고 싶지 않아 풀어주는 거니 같이 온 형 말 잘 듣고 잘 숨어있어라” 이러는 겁니다.

실은 뇌물 받아먹고 풀어주면서 말이죠. 아무튼 그래서 처음에는 살았습니다. 나중에 2000년대 초반에 다시 잡혔는데, 내륙 깊숙이 들어와서 잡혔습니다. 이때는 중국어도 잘 할 수 있었고, 가짜 신분증도 있었기 때문에 혼자라면 절대 잡히지 않았을 건데 탈북자 여러 명과 잡히다보니 빼박이었죠.

이렇게 돼서 저는 꼼짝 못하고 북송됐습니다. 북한 보위부 끌려가서 남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일은 다음 시간에 또 들려드리겠습니다. 좀처럼 하지 않던 제 탈북 스토리 처음 입을 열기 시작했는데, 구독 버튼 눌러주시고 다음 시간 더 재미있는 이야기 기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