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체제 쿠데타 시도로 알려진 프룬제 아카데미 사건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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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0.09.17 10:07

프룬제 쿠데타 모의 사건의 진실

오늘은 반정부 쿠데타 모의 사건으로 알려진 프룬제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많은 증언들이 있고, 실체가 거의 다 알려졌기 때문에 제가 특별히 새로운 것을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수많은 설들 중에 어느 것이 가장 진실에 접근했는지 그에 대한 제 견해를 말씀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오늘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주성하TV는 구독 좋아요도 좋지만 끝까지 시청해주시면 더욱 감사합니다.

프룬제 아카데미 사건, 프룬제 군사대학 사건, 프룬제 사건 등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김정일이 소련에서 유학했던 북한군 고위 간부들을 대거 숙청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김정일은 소련 군사 유학생인 고위 군관 160명 정도를 처형했고, 50명 정도가 수용소와 심심산골에 추방을 갔고, 50여명 정도가 군복을 벗고 제대됐습니다.

처형된 사람 중에 가장 계급이 높은 사람은 최룡해의 배다른 누나의 남편인 부총참모장 홍계성 상장이고, 평양시당책임비서 강현수의 아들인 총참모부 작전국 부국장 강영환 중장, 군 대외사업국장인 김학산 중장 등 30여명의 장성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제가 김일성대 다닐 때 이 사건이 터졌는데, 제 영어선생님도 남편이 잡혀가 처형됐습니다.김일성대 교원이라 그랬는지 강제로 이혼당해 추방은 면했지만 얼굴이 계속 어두웠습니다.

프룬제 사건에 대해 말할 때 실제로 프룬제 군사대학에서 유학하고 북한에서 간부를 하다가 탈북해 현재 서울에 있는 분이 한 명 있습니다. 저도 잘 아는 분인데, 많은 설들 중에 이 분의 증언이 가장 정확할 것 같아 이에 기초해 설명합니다.

프른제 아카데미는 1918년 레닌이 만든 군사 교육 기관이고 소련 최고의 군사 대학인데, 북한은 1950년대부터 고위 간부들을 소련에 보내 유학시켰습니다. 이들이 북한군의 중추를 형성했는데, 오극렬 작전부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조명록 총정치국장 등이 대표적 유학파입니다.

당연히 소련 유학을 가니 최고위급 간부 자녀들이 선발돼 갔는데,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약 200명이 소련에서 공부했습니다. 모두 프룬제에 간 것은 아니고 미그기 조종사, 잠수함 승조원 등도 소련의 다른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소련이 붕괴하면서 북한은 유학생 전원을 불러들였습니다. 들어간 유학생들은 자본주의 황색바람과 날라리풍에 물 젖었다며 군사대학들에 배치했습니다.

원래 이들이 유학할 때는 도망갈 까봐 북한이 엄청 대우를 해주었는데, 막상 오니까 사상투쟁을 한다며 계속 들볶으니 불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제일 에이스인데, 우릴 못 믿고 뭐하냐” 이런 불만이 나오죠.

특히 소련 유학생들은 선후배 관계가 돈독했습니다. 이들이 고위 군 간부로 있는 선배들을 찾아가 불만을 터놓고, 함께 모여 술도 마시면서 김정일도 욕했습니다. 김정일은 1991년 12월에 최고사령관이 됐는데, 소련에서 유학하며 외국 물을 먹은 유학생들은 이때만 해도 콧방귀를 끼었습니다.

지금은 북한 사람들이 하도 바보가 돼서 김정은이 최고사령관이 돼도 그런가보다 하고 반항하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사회주의 의식이 강할 때니까 “아니, 아들이라고 당연히 사령관 되는 법이 어디 있어. 군사도 모르는 저런 김정일의 지휘를 받아야 해?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도 세습을 안 하는데, 우리만 세습을 하냐. 왕조냐” 이런 불만이 많았습니다.

군부만 그런 거 아니고, 사회에서도 다 그랬는데, 소련에서 공부한 외국물 먹은 간부들이야 더 열불이 나지 않겠습니까. 마침 소련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된 이후 군부가 쿠데타를 시도한 일도 있습니다.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만큼 군부는 사회주의 이념에 충직해 북한이 봉건 왕조로 회귀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던 것입니다.

프룬제 유학생들은 북한군의 에이스들이고, 높은 고위 간부 자녀들인지라 무서운 것이 없었습니다. 몰래 모의하는 게 아니라 “우릴 누가 다쳐”라는 생각을 품고 공공연하게 모여서 술자리에서 체제에 대한 불만, 김정일에 대한 불만을 터놓았고, 어떤 모임에선 김정일을 몰아내는 쿠데타도 하자 이런 말까지도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울분을 터뜨린 것이고, 그렇다고 구체적인 작전 계획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김정일이 1970년대부터 이런 동향 파악하는 데는 귀신 아닙니까. 이게 다 동향보고가 들어갔죠. 가만 놔두면 큰일이다 싶은 김정일은 결국 칼을 뺍니다.

1993년 2월 8일 북한군 창건일에 회의를 한다고 인민무력부 본부 8호동 회의실에 소집시켜선 갑자기 군에 잠복한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을 모두 숙청하겠다며 완전무장한 무력부 보위국 병사들을 회의장에 투입했습니다. 그리고 원응희 보위국장이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한 뒤 병사들이 총을 겨눈 채로 김일성 배지 먼저 떼고, 훈장, 견장, 신분증 차례로 압수한 뒤 등 뒤로 수갑을 채우고 끌고 나갔습니다. 이 자리에서 70명 넘게 체포됐습니다.

그 이후 소련 유학파 청산은 5년 동안 더 진행돼 결과적으로 250명 정도 숙청했는데, 김일과 북한 체제에 불만을 표시했던 장성과 고급 군관 160여명이 처형됐습니다. 제 동창 중에도 김일성에게 꽃다발 주는 화동으로 뽑힐 정도로 참 예쁜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애 아버지도 중장이었는데 이때 숙청되고, 가족이 어딘가 사라졌습니다.

정말 살벌했죠. 본인들만 죽은 것이 아니라 북한 고위간부들이 아들 때문에 줄줄이 경질되고 추방가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나중에 여론이 좋지 않았습니다. 나라에서 돈을 엄청 들여 키운 인재들이 왜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야 했냐고 사람들이 분노했죠.

이때 김정일의 특기가 나왔습니다. 2001년 갑자기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이었던 이봉원 대장이 남조선에서 보낸 간첩이라고 처형됐습니다. 그리고 프룬제 사건은 간첩인 이봉원이 인민군대의 핵심을 제거하기 위해 꾸민 음모라고 중앙당 비공개 강연이 열렸습니다.

이게 북한입니다. 심화조 사건도 2만5000명을 숙청해 여론이 안 좋아지니 나중에 채문덕 인민보안성 정치국장이 간첩이기 때문에 꾸민 모략이라며 그를 또 죽였죠. 어쨌든 프룬제 사건 때 북에서 소련 유학파 장성들이 탱크를 동원해 열병식 때 김일성광장 주석단을 날리려 했다거나, 또는 소련이 붕괴되며 KGB 요원이 금품과 여자로 매수한 북한 유학생 명단을 북에 넘겼다 등의 별 소문이 다 퍼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봤을 때는 이런 소문들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합니다. 매수된 사람들은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소련 유학파들이 모여 실제 병력을 움직이는 실행 단계까지 쿠데타 모의를 발전시킬 정도로 북한의 감시 시스템이 허술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프룬제 아카데미 사건은 이들이 구체적인 쿠데타 실행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다 제거된 사건이 아니라 모여서 불만을 터뜨리다 숙청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나중에 더 새로운 증언들이 나오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