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잠수함 사건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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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0.10.29 21:27


오늘은 강릉 잠수함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미 항간에 알려진 내용은 빼고, 오늘 이 자리에서 최초로 말씀드릴 사실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주성하TV는 구독, 좋아요도 좋지만, 끝까지 들어주시면 감사합니다.

강릉 잠수함 사건, 또는 강릉 공비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24년 전인 1996년 9월 18일에 벌어져서, 정찰조원 2명이 최후에 사살됐던 11월 5일까지 진행됐습니다. 우리가 4만3000명의 병력이 동원돼 북한 잠수함 승조원 25명을 죽이고 한국도 군인 12명, 민간인 4명이 죽었던 사건입니다.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시죠.

이때 잠수함이 좌초됐던 것은 그날따라 잠수함에 정찰총국 해상처장 김동원 대좌가 탔기 때문입니다. 잠수함 함장이 지휘하고 왔으면 파도 세찬 날에 육지로 바싹 다가오다 좌초됐을리 만무한데, 이 해상처장이 “애들이 수영 쳐서 돌아오기 힘들겠다. 바싹 붙여라”고 하는 바람에 잠수함 함장도 거절 못했습니다. 해상처장은 한국을 제 집처럼 드나들어 2중 공화국영웅을 받은 사람인데 죽은 다음에 3중 영웅이 됐습니다.

강릉 잠수함은 택시 기사 신고로 발견됐다고 알려졌습니다. 그건 맞는데 손님 태워주고 돌아가다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건 아니라는 것을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다 알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걸 하다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걸 쓰길 민망해서 기자들이 그냥 운행 중 발견이라고 했지만, 제가 내용을 알고 있어도 말하면 명예훼손으로 걸릴 것 같아 이쯤만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11명이 자살했죠. 잠수함 버리고 탈출하면 북상 루트가 계획된 것이 있었습니다. 울진, 삼척 공비 사건 때 썼던 루트인데 태백산맥으로 올라가는 루트입니다. 그런데 워낙 포위가 단단해서 행군 및 전투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전부 자살했습니다.

위키백과 같은 곳에선 좌초 책임을 물어 처형됐다고 적혀 있는데, 그건 아니고 자살했습니다. 해상처장이 한 줄로 세워놓고 죽이고 자기도 죽었다고 들었는데, 북에선 한 사람씩 “김정일 장군님 만세”를 외치게 하고 쏘고, 또 옆에 그렇게 쏘았다고 소문이 돌았지만, 본 사람이 없으니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아무튼 그 사람들은 그렇게 죽지 않고 생포되면 가족이 다 죽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죠. 제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달아 못났을 겁니다.

이 잠수함의 함장은 정영구 중좌였습니다. 정영구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최초로 말하면, 그는 북한의 대표적인 어촌 도시 신포에서 아들 셋인 집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형들 모두 어부였고, 원양어선을 탔던 뱃군 집안입니다.

정영구는 1974년 군에 입대해 황해남도 과일군 월사리에 주둔한 북한 해군 서해 잠수함 전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여기에 잠수함 10전대, 11전대가 있죠. 북한은 잠수함을 80척 정도 보유하고 있는데, 정영구가 과일군에서 마지막으로 탔던 잠수함은 1700톤급 로미오급 잠수함이었습니다.

이 잠수함은 북한 잠수함 중에서 제일 큰 것인데, 중국에서 1971년 중국에서 수입한 것입니다. 이 잠수함에서 정영구는 탐지장을 했습니다. 특기는 축구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1991년 정찰총국 해상 잠수함 침투조를 만들면서 정영구가 함경남도 퇴조군 기지로 옮겨갔습니다. 퇴조군을 지금 낙원군이라고 하는데, 강릉 잠수함 사건 때 이곳에서 출발했습니다.

정영구가 넘어갈 때 같은 잠수함에서 한 명이 같이 뽑혀 갔습니다. 강릉잠수함 사건 때 부기관장하던 박태홍 대위가 같은 잠수함을 탔던 동료입니다. 그리고 해상처장 다음으로 직책이 높았고, 안내 책임을 맡은 김강훈 상좌 역시 과일군 해군 기지에서 잠수함 제1부함장을 하다가 뽑혀갔습니다.

그러니까 월사리 잠수함 기지에서 1991년에 정찰국 해상처로 김강훈 부함장, 정영구 탐지장, 박태홍 기관장이 옮겨갔습니다. 셋이 제일 친했던 것입니다. 김강훈과 박태홍은 자살했고, 정영구는 탈주 도중에 수류탄에 맞아 거의 갈기갈기 찢긴 채 죽었습니다.

북한은 나중에 강릉 잠수함 사망자들을 ‘강릉의 자폭영웅’이라고 내세우고, 3중 영웅 김동원 대좌는 애국열사릉에, 나머지는 모두 공화국 영웅 칭호를 주어 조국해방전쟁 참전열사묘에 안장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을 전부 평양에 끌어올려 살게 했고, 자식들은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냈습니다.

정영구 함장 같은 경우도 1984년과 1986년생 딸이 둘이 있는데 만경대혁명학원에 갔고, 부인은 대위로 입대시켜 인민무력부 가족소대장이란 직책을 주었습니다. 군 가족, 아내들도 소대, 중대 이렇게 군 생활을 하는데 그 조직의 소대장이 된 것입니다.

북한이 자신의 체제를 위해 죽은 사람들의 가족은 이렇게 잘 대우해주는 것은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에 오니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응당한 예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정찰총국 전투원 두 명은 뛰어난 전투력을 보이며 11월 5일까지 생존해 도주하다가 결국 사살됐습니다. 이때도 한 명이 다리에 부상을 입으니 한 명이 달아날 수 있는데도 전우의 옆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 나란히 사살됐는데, 북한 입장에서 보면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혁명적 전우애를 보인 셈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강릉에서 죽은 잠수함 승조원들의 자식들은 만경대혁명학원에 가서 부모의 복수를 벼르며 적개심을 키운 뒤 지금은 군부나 정찰총국, 해군 잠수함부대 등에서 대남 관련 업무에 종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어쩌면 16년 뒤 벌어진 천안함 사건을 저지른 북한의 잠수함 공격조 중에는 아버지의 복수를 벼르고 별렀던 강릉 잠수함 공비들의 자식들이 포함됐을 수 있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어찌됐던 강릉 잠수함 공비들의 자녀들은 북한 체제에 의해 살인 병기로 키워지고, 영웅의 아들의 역할을 하겠다면서 지금 이 순간도 대남 테러를 획책하고 있을 것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고, 우리 역시 잊지 말아야 할 대목입니다. 지금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