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cm 때문에 몰락한 초대 제1공병국 여단장
765 0 0
주성하 2020.10.30 18:20

오늘 영상에선 북한 간부 중에선 김정일과 서로 목욕도 하고, 등까지 밀어주는 사이로 가까웠던 공병국 제1여단장 박두익 중장이 4.5㎝ 때문에 파면돼 인생이 끝난 사연을 최초로 공개하겠습니다. 주성하TV는 구독 좋아요도 좋지만 끝까지 봐주시면 더욱 힘이 납니다.

북한에서 공병국 1여단은 김정일의 온갖 별장과 호화시설을 전담해 건설하는 특수 건설부대입니다. 장비도 일제 트럭부터 시작해 최고급을 씁니다. 이 여단은 북에서 1960년대부터 존재해오던 사회안전부 소속 공병국에서 1980년대 따로 독립해 나온 것입니다.

공병국이 김일성의 지시로 특수 건설에 동원됐는데, 김정일이 자기의 호화생활을 뒷받침할 특수 건설 부대를 가지는 것을 늘 꿈꿔오다가 결국 정예를 뽑아 공병국 1여단이라고 칭하고 처음에는 사회안전부 소속이었는데 나중엔 호위국 소속으로 만들었습니다.

말이 여단이지 여단장은 중장이 맡을 정도로 신임을 얻었습니다. 이 여단의 최초 여단장은 정치위원 출신의 박두익 중장이었는데, 김정일이 어찌나 신임했는지 박두익은 김정일과 처음 같이 목욕까지 할 정도로 신임을 얻었다고 합니다.

오늘 얘기는 공병국 소좌 출신으로 한국에 망명한 최태선 선생이 들려준 이야기로 공병국에선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김정일이 1980년대 초반에 보통강변에 평양 제1고등중학교를 건설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사회안전성 병원이 있다가 김정일 수족관을 건설하던 중 1979년 외교관 150명이 타죽은 사건 이야기해드린 일이 있죠. 바로 그 터입니다. 사람이 무리로 죽으니 터가 나쁘다고 생각했는지 그 자리에 수재 양성기지인 제1고등중학교 건설한 것입니다.

이 학교 건설하면서 제1공병국도 함께 투입했는데, 실내에 수영장을 건설했는데, 김정일이 몇 년 전에 완공한 창광원 수영장과 사이즈를 같게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완공식 날에 김정일이 학교 수영장에 딱 갔는데, 머리를 갸우뚱갸우뚱하더니 “내가 창광원하고 크기를 같이 하라고 했는데 왜 작아 보인다”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박두익이 나서서 “아닙니다, 장군님. 창광원하고 똑같이 지었습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김정일이 “아니야. 작아” 이러다가 자를 갖고 와 재보라고 했답니다. 재보았더니 창광원 수영장보다 딱 4.5㎝ 작았답니다. 제가 평양 제1고등 졸업생에게 물어봤는데, 자기 볼 때는 창광원과 크기가 같았는데, 50m라고 합니다. 거기서 4.5㎝면 아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걸 가지고 크니, 같니 하다가 결국 4.5㎝가 작은 걸로 판명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오진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오진우는 항일빨치산 출신으로 북에서 오랫동안 총참모장, 무력부장 등 온갖 벼슬은 다 한 인물입니다. 머리는 나쁜데, 충성심 하나는 좋다고 평가받는 사람입니다.

항일투사라는 인간들이 다 그랬듯이 김정일이 호화생활과 여자를 갖다 바치니 “역시 김정일이 우릴 알아준다”며 후계자가 되는데 힘을 실어준 사람 중 한 명이 오진우였죠. 이때 아마 상장을 달고 있었을 겁니다. 오진우가 그걸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고 쏘아본 겁니다.

박두익이 “이거 큰 일 났다” 싶어 그 일이 있고부터 오진우를 맨날 피해 다녔다고 합니다. 당시 중앙당 청사에 가장 자주 드나든 장성들이 공병국 여단장과 공병국 1여단장들인데 한달에 25번씩은 갔답니다. 그래도 회의할 때마다 박두익은 제일 먼저 날쌔게 도망쳐 한동안 화를 피했는데, 어느 날 김정일이 불러 갔는데 오진우와 마주쳤답니다.

오진우가 박두익을 자기 방에 불러 화를 내며 “장군님이 노루라면 노루지 너 따위가 토를 달아” 이러면서 한참 욕을 했죠. 그런데 김정일은 자기 사무실에서 CCTV로 모든 간부들 방 다 감시할 수 있습니다. 박두익이 안 나타나니 CCTV 봤는데 오진우 방에서 깨지고 있는 게 보여 그 방에 갔답니다.

문을 연 순간 마침 오진우가 박두익의 중장 견장을 손으로 잡아 뜯고 있었습니다. 김정일을 본 순간 박두익이 마침이다 싶어 “장군님, 무력부 장령이 어떻게 사회안전부 장령 견장을 뗄 수 있습니까”하고 울먹이며 얘기했는데, 김정일이 그때 머리가 팩팩 돌았던거죠. 이렇게 이야기하고 돌아섰답니다.

“항일투사는 뗄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오진우의 비위를 맞추느라 박두익을 버린 거죠. 하긴 그때쯤엔 너무 많은 비밀을 알고 있어 내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그래서 박두익은 결국 여단장에서 해임돼 평북 구장군에 있는 공병국 휴양소 소장으로 갔는데, 거기서 계속 자기 처지를 고민하다가 1980년대 말에 죽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늘은 김정일의 말에 토를 달았다 4.5㎝차로 판정패해 몰락한 공병국 제1여단 초대 여단장 박두익에 대한 이야기 들려드렸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