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 이상 사망, 기네스북 올라야 할 개고개 열차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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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0.12.04 10:37

제가 한국에 온지 이제는 18년이 넘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4개월 뒤부터 기자를 했으니 기자만 18년 넘게 했는데, 기자를 하게 되면 매일 아침 첫 일과가 타지를 읽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제가 일하는 동아일보를 제외하고도 매일 신문 7개를 다 훑어봅니다.

한국에 산지 18년이지만, 매일 신문 7개씩 보다보면 한국의 과거사를 많이 알게 됩니다. 요즘은 관심이 들면 바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참 좋은 세상입니다.

제가 처음 와서 관심있게 봤던 것 중에 하나가 한국의 열차 사고였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에는 열차 사고가 너무 많아 여기도 그렇게 죽나 싶어 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떻게 최악의 열차 사고로 죽은 사람이 1975년 소산천 철교 화물열차 추락사고 때 발생한 3명입니다. 이게 말이 되냐 놀랐죠. 북한에는 수백 명 이상 죽은 열차 사고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1975년 이리역 폭파사고로 59명이 사망하고,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방화로 192명이 사망한 전례도 있지만, 이건 순수 열차 사고는 아니었죠.

오늘은 북한에서 벌어진 많은 사고 중 가장 참혹한 사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옛날 얘기 자꾸 하냐는 분들이 있는데, 여러분, 아직까지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런 진실을 제가 세상에 알리지 않으면 누가 알리겠습니까. 주성하TV는 구독 좋아요도 좋지만 끝까지 들어주시면 더욱 힘이 납니다.

북한 열차 사고 중 최악은 1996년 12월 3일 자강도 개고개에서 일어난 열차 탈선 사고입니다. 사고 시점에 대해 1996년 11월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아무튼 그해 연말입니다. 이 사고로 1000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북한은 언론이 통제된 곳이기 때문에 탈북자들의 진술이 조금씩 어긋납니다만, 저는 현지에 동원돼 직접 시신 수습을 했던 군부대 지휘관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제가 스키부대 여단 참모장 증언을 전한 적이 있는데, 이 스키여단이 자강도에 주둔해 있어 그가 1대대와 2대대를 데리고 현장에 가서 수습을 했다고 합니다.

사고가 난 열차는 만포에서 출발해 평양으로 가는 급행열차입니다. 만포에서 떠나 전천역에서 서고, 그리고 개고개라는 높은 고개를 올라가 선 뒤 고개 아래에 있는 송원역에서 섭니다. 개고개역은 작은 역이지만 여기서 열차 점검하고, 제동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보조 기관차를 하나 더 달고 내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기관사가 개고개역에서 보조기관차가 늦어지자 언제 기다리냐면 실험삼아 가본다고 내려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국 사사여행을 갖던 사람들을 몰래 기관차에 태우고 술을 얻어먹고 객기를 부린 겁니다.

그런데 기관에 고장이 났고 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고난의 행군이 피크에 도달했던 시점이라 열차 부속도 너무 귀할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열차가 이걸 바람이 났다고 표현하는데, 그대로 가속을 받으며 내려갔습니다. 그러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에서 내려가 송원역 도착하기 전에 굽이돌이가 있고 바로 철교가 있는데 거기에서 차량이 탈선했습니다.

모두 13개 차량이 달렸는데, 기관차와 그 뒤에 달린 수화물차량, 그 다음 상급침대차량은 송원역에 도착했는데, 3번째 군인 열차부터 연결이 끊겨 교각 아래에 박힌 겁니다. 4번째 일반 차량부터 10번째까지 박한 뒤 맨 뒤 세 개 차량은 더 들어갈 곳이 없어 여기 탄 사람들은 많이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8개 차량이 내려오던 속도로 박혔는데, 8개 차량에서 제일 아래 깔린 군인 차량이 제일 참혹했죠.

송원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목격자들에 따르면 고개에서 바퀴에 불 달린 듯한 열차가 미친 듯이 내려오는데, 열차 지붕에 있던 사람들이 뛰어내리려 일어서다 위에 전기선과 부딪치는데 곧바로 불덩이가 돼 막 불덩이들을 사방에 뿌리는 것 같았답니다.

여단 참모장의 말에 따르면 현장에 도착하니 온통 살이 탄 냄새, 그슬린 시신인데, 일단 군인 시신부터 수습해 가까운 학교 운동장에 놓았답니다. 직후에 인민무력부장 최광이 헬기를 타고 내려왔고 헬기에 군인은 사망자든 부상자든 다 싣고 올라가 평양에 묻었답니다.

민간인은 양정사업소 양곡창고 등에 시신들 가져다 놓고 찾게 했는데 대개 가방에 신분증 넣은 등 신분증 없는 시신은 한개 군에서 관을 120개씩 내라고 해서 인근에 다 갖다 합장묘를 했습니다. 시신 상태가 무슨 온전했겠습니까. 충격으로 사망한 사람도 많았지만, 열차가 세로로 꽂히니 살았던 사람들도 위에서 쏟아지는 짐과 시신에 눌려 다 죽었던 겁니다.

이때 얼마나 죽었냐. 사망자에 대해선 증언이 참 엇갈립니다. 현장 수습을 했던 참모장은 912명이라고 보고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30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고난의 행군 때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북한 열차는 1개 차량이 정원이 93명이지만, 이때는 발 디딜 틈이 없이 타고, 지붕에도 사람들이 빼곡히 앉고 해서 정원을 훌쩍 넘깁니다. 그래서 빼곡히 타면 1개 차량에 400명은 넘는데, 400명이 8개 차량이면 3200명이겠죠.

문제는 당시 얼마나 차량이 분주했냐인데, 북한이 공개하지 않아 알 수는 없습니다. 즉 이 사고로 최소 912명, 많으면 3000명이 죽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사고 북한에 소문이 다 났습니다. 기관사 등 여러 명이 총살당하고 수십 명이 해임 철직됐습니다.

1000명만 죽어도 아마 세계 기록에 올라갈 건데, 북한에는 이런 세계 기록에 올라가야 할 사고가 10개는 발생했는데 몽땅 은폐돼 있고 지금도 대형사고들이 다 묻힙니다. 이런 북한의 은폐돼 있는 대형 참사들을 저는 앞으로도 세상에 계속 고발할 것입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니진스키 12/04 18:12 수정 삭제
주기자님, 한국에서 순수 열차사고로 가장 인명피해가 컸던건 1993년 있었던 구포 열차 전복 사고입니다. 사망자 78명, 부상자 198명이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1981년에 있었던 경산역 추돌사고도 큰 사고였고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안전 불감증 심했고 다들 질서와 규범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어이없는 사고 정말 많았습니다. 기자님 입국하신 이후 대한민국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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