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6촌 누나만 살아난 신의주 세관 집단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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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0.12.10 10:02

제가 올해 8월 21일에 신의주세관에서 근무하는 세관원들이 평양에서 내려온 횃불체포조에 의해 전원 체포됐다는 소식을 단독으로 보도해 드렸습니다. 전날인 20일 오후에 갑자기 횃불체포조가 타고 다니는 이탈리아산 ‘이베코’ 차량들이 세관 마당에 경광등을 울리며 들이닥치더니 세관원들 전원 집합시키고 몽땅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세관원들의 집에까지 들이닥쳐 그날 중에 몽땅 차에 싣고 농장으로 추방시켰습니다. 부정축재했던 세관원들은 미처 돈을 숨길 여유도 없이 빼앗겼습니다.

이 사건이 표면상으로는 코로나 방역지침을 위반하고 남조선 물품 수입을 승인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지만 그건 구실이고 본질상으로 돈줄이 마른 김정은이 세관원들이 숨긴 돈을 털어내기 위한 작업이었다는 것이 저의 설명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은 북한에서 최고의 부정축재 소굴인 신의주 세관에서 작게는 1000만 달러, 많게는 5000만 달러까지 빼앗아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세관원들이 한꺼번에 체포된 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 순식간에 북한 전역에 소문이 퍼졌는데, 요즘 이 사건은 다른 측면에서 또다시 북한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체포된 세관원 80여명 중에 몇 명만 살아서 나왔는데, 김정은의 친척과 고위 간부들의 자녀만 쏙 빠진 겁니다. 나머지는 감옥에 가거나 추방됐는데 말입니다.

살아난 사람 중에 가장 대표적 인물은 김정은의 6촌 누나라고 합니다. 어떻게 6촌이 되나면 이 여인은 김일성의 남동생인 김영주의 손녀입니다. 1920년생인 김영주는 김정일의 삼촌이 되고, 김정은에겐 작은 할아버지가 됩니다. 작은 할아버지 손녀니까 김정은에겐 6촌이 되는 겁니다.

김정일이 1960년대 중반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지도원으로 들어갔을 때 김영주가 북한 노동당의 2인자인 조직지도부장이어서 조카를 많이 챙겨줬습니다. 김정일이 후계자 경쟁을 할 때 이복동생인 김평일과만 권력투쟁을 한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에 앞서 김영주를 넘어야했습니다. 김정일은 1974년 후계자로 지명되자마자 자기를 키워준 삼촌을 자강도로 사실상 유배를 보냈습니다.

김영주는 거기에서 18년이나 썩고 있다가 1993년에야 복귀해 허울뿐인 국가부주석이 됐습니다. 올해 만 100세인데도 죽었다는 부고가 나지 않은 거 봐서 아직 살아있나 싶기도 한데, 그렇다면 명이 정말 질긴 겁니다.

아무튼 김영주의 손녀는 핏줄로 따지면 어쨌든 김 씨 혈통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또 친척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특히 김일성의 인정도 못 받고 사생아 취급을 당해 몰래 숨어 자란 김정은은 작은 할아버지 이런 족보가 보이겠습니까. 그러니까 김영주의 피붙이는 김 씨 핏줄이긴 한데, 김정은에겐 인정 못 받는 좀 이런 애매한 사이가 됐습니다.

김정은의 6촌 누나 정도는 먹고 살기 어려운지 이 여성이 2014년인가 2015년에 신의주 세관에 세관원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주변 소문에 따르면 정말 통이 크게 해먹었다고 합니다. 내려온 이유 자체가 돈을 벌기 위해 왔는데, 한편으로 어쨌든 김 씨 집안이고 할아버지가 부주석까지 하니 처벌이 무섭지도 않고 나름 힘이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세관 간부들도 그녀의 배경을 아니까 잘 해줬습니다. 어찌됐든 그게 출세의 바탕이 될 수 있으니까 이 여인을 수출입화물검사소에 넣어주고 눈을 감아주었다고 합니다. 세관에서 수출입화물검사소가 제일 노른자위입니다. 여행객이나 관광객 가방이나 뒤져서는 큰 돈이 나오지 않는데, 수출입화물은 차량들이 몇 십 트럭씩 오가니 얼마나 크게 해먹겠습니까. 차량 10개가 들어가면 “저기 한대 저기 갔다 세워” 이래도 되는 정도입니다.

아마 이 여인은 김영주네 식구들 먹여 살리는 돈줄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돈을 모아서 평양에 보내 자기 가문 먹여 살리고, 가문은 김일성 동생임을 내세워 뒤를 막아주고 그랬을 거라 봅니다. 이렇게 떵떵거리며 해먹고, 사실상 세관의 제일 소문난 부패 세관원이었는데도 8월 숙청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김 씨네 핏줄은 횃불 체포조도 건드리지 못하는 겁니다. 이 여인과 또 몇 명 고위 권력자들의 친인척은 유유히 빠져나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에선 1988년 지강헌이 탈주해 TV 생방송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친 모습이 엄청난 충격으로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지강헌은 556만 원을 훔쳤다가 17년형을 선고받았는데, 같은 해에 체포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수백 억 원을 횡령하고도 3년만 살고 나왔습니다.

그때로부터 32년, 아직도 한국 사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북한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칠 사람도 이제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아는 세상은 김 씨 혈통에겐 치외법권이 적용되고, 고위 권력자는 김정은의 숙청만 없다면 누구의 눈치도 안보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북한을 찬양하고, 이상향인 듯 거짓 선전해대는 인간들과 한국에서 한 하늘을 이고 살고 있으니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지금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