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주당들 사로잡은 한국 소주 ‘참이슬’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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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0.12.15 11:27

오늘은 술 얘기 한번 해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평양에서 좀 달러를 만졌던 어떤 분과 앉아 술을 마셨습니다. 온지 얼마 안 되는 분이라 술 마시다가 “한국술 어떠세요. 너무 도수가 약하죠”라고 했더니 “아닙니다. 평양에서 참이슬 참 많이 마셨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놀랐죠. 물론 평양에서 참이슬이 아주 인기가 높다는 것을 이미 듣긴 했는데, 그걸 많이 마시다 온 분을 만난 것은 처음입니다. 참이슬이 인기가 좋냐고 하니, 간부들 속에서 코냑이나 위스키처럼 인기가 많은 술이고, 의미가 있는 날에는 참이슬을 사서 들고 간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삽니까” 물어보니 돈 주면 파는 곳이 다 있었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상점에서 진열해놓고 파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집에 가면 한국술을 파는 것이라는 것을 다 안답니다. 한국에서 파는 것과 똑같냐고 하니 똑같은 병이랍니다. 참이슬 병을 척 들면서 상표도 똑같고, 또 어느 공장에서 생산됐다는 라벨도 다 있다고 합니다.

이런 참이슬이 어딜 통해 들어갔을까요. 개성공단을 통해 들여간 것도 좀 있는 것 같은데, 그건 한정돼 있고, 제일 많은 물량이 해외에서 영업하고 있는 북한 식당을 통해 들어간 것입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중국 등 해외에 나온 북한 식당에 가면 그곳에서 참이슬 등 한국 소주를 판매했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인기있는 술이란 말에 북한 간부들이 또 호기심을 가지니 북에 몰래 들어갔는데, 인기가 좋으니 2010년경엔 북한 나진에서 짝퉁 참이슬도 만들어 내놨습니다.

병의 크기, 색깔, 포장방식 등이 똑같은데 라벨로 참대를 그려놓고 비슷하게 했는데, 이름은 참대술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외국인이 이 술을 먹은 경험도 이미 나왔는데, 외국인이 온 힘을 다해 병마개를 돌렸지만 끝내 열리지 않아 와인오프너로 구멍을 뚫고 술을 따랐습니다. 도수는 무려 25도였는데, 마셔보고는 “가솔린을 먹은 것 같이 최악이다”는 품평을 내놓았습니다.

2010년 이후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시장을 통제하지 않았고, 또 수백 개의 외화벌이 식당이 해외에 나갔습니다. 이 식당들이 주로 한국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서 한국 술도 가져다 놓기 시작했는데, 그때 참이슬을 엄청 사서 세관을 통해 또 북한에 들여갔습니다.

당시 세관은 뇌물만 주면 한국 물품, 식품 다 들여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북한에서 식재료 공수해 온 트럭으로 돌아갈 때 참이슬 싣고 가는데, 북에서 참이슬 팔면 꽤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고 합니다. 1달러 남짓에 슈퍼에서 파는데, 북에 가면 몇 달러는 받으니까 말입니다. 뉴욕 같은 곳에 가면 참이슬 한 병이 15달러 넘게 팔리는 것을 보면 북한에서도 꽤 비싸게 팔릴 겁니다.

2016년에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에도 북한의 중간 간부와 돈주들 속에서 참이슬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북한 소주보다 도수가 낮으니 ‘간에 무리를 주지 않는 약주’라고 소문이 나면서 기념파티 선물로 아주 인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는 이미 한류가 많이 퍼져 있기 때문에 남조선 술은 어쨌든 선진국의 술이라고 인식이 되면서 당연히 한국산 소주가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평양에 살 때 이런 술이 들어왔다면 아마 저도 열심히 사먹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저는 북에서 한국 술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참이슬과의 만남은 2002년 한국에 와서 하나원에서 마신 것인데, 제 첫 인상은 맹물을 마시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3병을 마셨는데, 취하질 않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에 오기 전에 중국에 1년 정도 있었고, 저랑 같이 있던 사람들이 지독한 술꾼들이었는데, 중국술 40도 넘어가는 것을 거의 매일 한 병씩 마시다보니 17도짜리는 술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젠 3병을 마시면 다음날 죽습니다.

저는 지금도 식당에 가면 참이슬 달라고 합니다. 처음처럼, 진로 이런 술도 있는데, 저는 참이슬을 고집합니다. 왜 그러냐면 몇 년 전에 한 다섯 명이 모여서 소주 블라인드 테스트한 적이 있습니다. 참 할 일도 없죠. 마트에서 파는 대여섯까지 술을 다 사가지고 눈을 가리고 마신 뒤 제일 맛이 좋은 술에 투표하는 방식이었는데, 참이슬이 1등 먹었습니다.

예전에 마실 때는 소주가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는데 블라인드 테스트하니 확실히 소주마다 맛이 달랐습니다. 다섯 명 선정 1등이 참이슬인데, 제가 참이슬 광고를 해주는 것 같아 좀 그렇긴 합니다. 혹 오해할까봐 밝히면 이거 전혀 광고비 안 받고 말하는 겁니다.

참이슬이 세계에서 16년 연속 제일 많이 팔린 증류주 1위에 선정됐다는 뉴스가 2017년에 뜬 것 같은데, 지금도 비슷하겠죠. 그리고 참이슬 판매에 저도 엄청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참이슬 열풍은 아마 10년 넘게 북한에서 이어졌을 것이지만, 요즘은 아쉽게도 북한에서 참이슬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북제재로 지난해까지 대북식당들이 다 철수했고, 코로나 때문에 수출입 물자를 북한 당국이 엄격하게 관리를 하기 때문에 더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북한에서 참이슬 맛에 감탄했던 돈주들 참 안됐습니다. 그들에겐 대북제재의 위력이 그리운 참이슬로 다가오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면 다시 참이슬을 마실 수 있을까.” 평양에서 참이슬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들을 기억하며, 저는 오늘 저녁도 참이슬을 정성스럽게 소중히 마시겠습니다. 재미있게 들으셨다면 구독으로 칭찬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