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로 요약해 설명 가능한 김정은의 신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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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1.07 11:18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웠던 2020년이 이제 저물었습니다. 내일이면 2021년입니다. 그동안 주성하TV를 사랑해주셨던 구독자분들께 진심으로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새해에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시고 가정에도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저는 매년 설날이면 가장 큰 불만 중의 하나가 돼지가 한국 뉴스 시장을 선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정은이 아침 일찍 신년사를 발표하면 한국 언론사들은 마침 설날에 쓸 기사도 없고 하니 그걸로 도배를 합니다. 숱한 전문가들의 분석까지 곁들여서 말입니다.

설날마다 계속 반복되는 일이고, 내일도 또 그럴 겁니다. 문제는 그게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냐 하면 하등이 필요 없는 짓거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지만, 북한이 신년사를 발표하면 여러 북한 전문가들이 너도 나도 행간을 분석하는 것도 모자라 단어 사용 빈도까지 따져가면서 이 단어는 적게 쓰고, 저 단어를 많이 쓴 의도는 무엇인지, 올해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골머리를 싸매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그게 맞느냐 보면 아니기 때문에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북한 신년사 분석의 역사를 따져보면 저만큼 오래 한 사람이야 말로 대단한 원로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 공부했으니 30년 넘었죠.

완전 외우다시피 했는데, 참고로 2020년에도 김정은이 신년사 내놓고 “신년사 학습을 잘 시키라”고 해서 간부들이 주민들이 신년사를 외우게 했는데 김정은이 또 “내가 언제 달달 외우게 하라 했냐”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러니 간부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잘 시키냐”고 불만이 컸습니다.

저는 김일성대를 다닐 때는 정말 머리가 터질 정도로 신년사를 외웠습니다. 물론 토까지 그대로 외우겐 하지 않았는데, 지난해 성과, 올해 경제 각 부분별로 제시된 과제, 과제 달성 방안 등 신년사 분량보다 결코 적지 않은 답안을 내주고 토는 좀 틀려도 최소한 단어는 빼먹지 않을 정도로 외우게 합니다.

방학이 끝나 대학에 복귀하면 3일 동안은 강당에 모여 문답식 학습경연을 벌였습니다. 당시 대학에 14개 학부가 있었는데 2개 학부씩 조를 짜서 월드컵 토너먼트를 하듯이 승자를 가려내 결승전까지 치릅니다. 저조한 실력을 낸 학부의 간부들은 1년 내내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비판을 받게 되니 얼마나 조이겠습니까.

그러니 대다수 학부 간부들은 학생들을 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부터 지방에서 몽땅 불려 올려 답안을 외우게 합니다. 문답식 학습경연 때문에 한달 겨울 방학은 더 짧아지고 기차가 며칠 씩 걸리는 것까지 감안하면 이 문답식 때문에 겨울 방학은 열흘 정도만 보내는 것 같습니다. 매일 그날 분량을 외운 학생만 귀가시키죠.

학부별 경연 때는 강당에 두 개 학부 수백~수천 명이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참가한 가운데 상대 학부 학생을 제비뽑기로 선정하는데, 누가 걸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명된 학생은 수천 개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테이블에 나가 대답하는데, 한나절 정도 해서 심사위원들이 탈락 학부를 결정합니다.

학습경연장의 분위기는 정말 살벌한데, 운이 나쁘게 뽑혀서 대답을 제대로 못하면 졸업할 때까지 찍혀서 시달려야 하고, 그 학생 때문에 학급 소대장, 청년동맹 비서, 담임교수, 학년 중대장, 학부 대대장, 학부 사로청위원장, 학부장, 학부 당비서 등 수많은 사람들이 비판무대에 서야 합니다. 그러니 대답 잘못하면 ‘미제’보다 더 증오스러운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릅니다.

한번은 우리 학년 여학생이 뽑혀 올려가 제대로 대답을 못했는데, 눈물 흐리면 내려오자마자 실종됐습니다. 대동강에 자살하려 나간 것을 겨우 잡아왔다고 하던데, 그 일이 있고 나서 늘 쾌활했던 성격도 크게 변했습니다. 대학 기간에만 그렇게 치열하게 신년사와 공동사설을 머리 싸매고 학습했는데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더라고요.

제가 찾은 깨달음은 뭐냐. 바로 “신년사는 늘 현실과 동떨어진 헛소리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실제 북한의 신년사대로 한 해가 흘러간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음해 신년사는 어김없이 “지난해는 우리 당과 역사에서 특기할만한 격동적인 사변들과 위훈으로 수놓아진 보람찬 투쟁의 해, 거창한 창조와 변혁의 한해였다”는 식으로 시작됩니다.

권력만 3대 세습인 것이 아니라 신년사의 레퍼토리마저 3대째 세습이 됩니다. 올해 과제는 어김없이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에서 새로운 비약을 이룩하자”고 서두를 떼고 농사를 주공전선으로 해야 한다느니, 전력생산에서 총력전을 펴야 한다느니,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느니 계속 반복되는 상투적 과제가 나옵니다.

만약 북한의 신년사나 공동사설에서 밝힌 대로 성과가 나왔거나 집행됐다면 북한은 오래 전에 선진국이 돼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해마다 내리막이었습니다. 북한 신년사는 항상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구호, 과장되고 거창한 문장 사용과 추상적인 목표제시라고 할 수 있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런 식의 알맹이가 없이 뜬구름 잡는 신년사는 저에게 쓰라고 해도 하루면 다 써놓을 자신이 있습니다. 솔직히 신년사 쓰기보단 한국 전문가들처럼 수십 쪽의 분석 보고서를 내는 것이 더 어려울 듯 합니다.

내일도 북한 신년사를 분석하느라 새해 첫날의 너무나 소중한 시간을 너무나 허무맹랑하게 보낼 분들이 안쓰럽습니다. 제가 일반 사람들에게 북한 신년사 단 석자로 읽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개소리.” “헛소리” “무의미”

이게 북한 신년사 오랫동안 학습한 고수의 결론이었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