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주장에서 검사로 변신한 북한 최고 축구스타
964 0 0
주성하 2021.01.29 18:21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가 김여정의 남편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양한 설들이 있지만 증명된 것은 없고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재작년에 기자들 속에서 김여정의 남편이 북한 축구선수 홍영조라는 그럴 듯한 소문이 퍼졌습니다.

홍영조가 누구일까요. 2010년에는 남아공 월드컵 때 북한 축구대표팀 주장을 맡았고, 당시 북한에서 가장 인기가 있고 유명한 선수였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활약해 가장 인기가 있는 축구선수였고, 요즘은 손흥민 선수가 축구계의 최고 인기 선수가 아니겠습니까.

홍영조는 북한에서 박지성, 손흥민처럼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선수였습니다. 물론 이런 비유는 정확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만, 쉽게 말하면 북한의 손흥민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홍영조는 1960년대 북한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던 박두익 선수 이후 최고 기량을 가졌다고 평가받았고, 한국 기자들이 ‘인민 베컴’이란 별명을 붙여준 선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홍영조가 김여정의 남편이란 말을 듣자, “그거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네”라고 생각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황당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주성하TV는 구독 좋아요도 좋지만 끝까지 들어주시면 힘을 얻습니다.

한 10년 동안 북한 축구계의 최고 스타였던 홍영조가 글쎄 현재 평양시 검찰소 검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김여정의 남편은 아니었습니다.

북한 축구팀이 실력이 한국보다 떨어지지만 그래도 2010년 월드컵 본선까지 나갔고, 주장으로 그 본선진출을 이끈 공격수 홍영조가 왜 생뚱맞게 검사가 됐는지 궁금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손흥민이 은퇴해 사시를 보고 검사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겠습니까.

북한이 아무리 특이한 나라이긴 하지만, 축구계 스타는 그래도 감독 같은 것으로 하면서 역시 우리처럼 체육계에 종사하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입니다. 그런데 10년 동안 북한 축구를 이끌었고, 5년 동안 북한에서는 이례적으로 해외 이적까지 해서 외국에서 뛰었던 선수가 왜 검사가 됐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북한 최고의 축구 스타도 검사보다 못하다는 것이죠. 결국 북한은 권력 잡은 사람이 장땡이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홍영조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면 1982년생으로 1960년대 북한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던 박두익 선수 이후 최고 기량을 가졌다고 평가받던 인물입니다.

북한에선 일찍이 해외 진출도 성공해 2007년부터 2년 동안 2시즌동안 세르비아 프로팀에서 뛰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러시아로 이적해 FK로스토프 팀에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공격수로 뛰기도 했습니다. 이 3년 동안 홍영조 선수는 31경기를 출장해 3골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세르비아, 러시아 리그에서도 3골 밖에 넣지 못한 것이면 사실 한국 해외 진출파 누구와 비교해도 별로이긴 한데, 문제는 북한에는 해외에서 뛰는 선수가 없다보니 그 기준에는 대단하다 이런 말입니다. 솔직히 태국 선수가 한국 리그에 와서 뛰어도 태국 최고 스타처럼 대우 받는 것이라 보시면 됩니다.

물론 여기에 빽도 작용했습니다. 홍영조의 아버지가 조선체육지도위원회 축구국장이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 뒷배가 있으니 해외에 나간 것이죠.

홍영조의 제일 큰 명예는 주장으로 북한이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에 진출하는 데 큰 공헌했다는 것이 인정돼 2009년 북한 최우수 축구선수로 선정됐다는 것입니다. 이후 2011년부터는 북한으로 다시 돌아와 4.25 체육단에서 뛰고 있었는데, 그 이후 갑자기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로 치면 한창 주가가 높던 박지성과 손흥민이 주장 완장을 차고 뛰다가 갑자기 사라진 격이죠.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요. 사고를 쳐 29살 나이에 대표팀 주장 완장을 벗고 또 축구화도 벗어야 했습니다. 그 사고가 흥미로운 것인데, 오늘 이야기하려니 길어서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튼 축구를 그만둔 홍영조는 이후 김일성대 법학부로 진학해 졸업한 뒤 평양시 검찰소 검사가 됐습니다. 김일성대는 교내 체육대회에서 축구경기가 매우 격렬한데, 인기 학부는 유명 축구선수 출신은 저저마다 모셔가는 그런 전통이 있습니다.

제가 다닐 때는 경제학부와 법학부, 역사학부가 축구가 제일 쎘는데, 홍영조는 원래도 강했던 김일성대 법학부 축구팀을 이끌었을 거라 봅니다. 5년 동안 해외 진출해 외화벌이에 기여했지만, 연봉을 다 빼앗기고 홍영조는 풍요롭게 살지도 못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불운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디 축구선수만 그렇겠습니까.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나도 김 씨 독재정권하에선 누구라도 재능을 발휘할 수 없을 겁니다. 한때 북한 최고의 축구스타가 범죄자들을 앞에 놓고 책상을 치며 “똑바로 자백하라”고 호통 치는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