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루니’ 정대세가 북한 대표팀을 그만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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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2.01 18:31

저번 시간에 제가 한국 언론에서 ‘인민베컴’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던 북한 축구대표팀 주장 홍영조가 현재 평양시 검찰소 검사로 있다는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역시 한국 언론에서 ‘인민루니’란 별명을 붙여주었던, 여러분들도 잘 아는 정대세 선수가 왜 북한 축구대표팀을 떠나야만 했는지 그 내막을 최초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주성하TV는 구독, 좋아요도 좋지만 끝까지 들어주시면 힘을 얻습니다.

홍영조와 정대세는 한때 북한 축구대표팀의 공격수 콤비였습니다. 이들 콤비 덕분에 북한은 2010년에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업적을 기록했습니다.

저는 정대세를 생각하면 남아공 월드컵 첫 경기 브라질전에 앞서 정대세 선수가 북한 국가가 울려 퍼지자 눈물을 철철 흘리며 울기 시작했던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나중에 왜 울었냐고 물으니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오게 돼 감격스럽고, 세계 최강 팀과 맞붙게 돼 좋아서 울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무튼 그 남아공 월드컵에서 북한팀은 3전 전패를 당했고, 정대세도 골은 넣지 못했습니다.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에 북한 대표팀으로 출전한 것을 마감으로 정대세는 더는 북한팀에서 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정대세와 함께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추던 홍영조도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게 궁금했습니다. 정대세도 왜 전성기에 북한 대표팀에 더 이상 합류하지 않았는지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북한 축구대표팀 여러 선수들과도 가까웠고, 홍영조랑 밥도 몇 번 먹은 사이인 사람이 탈북해 남쪽에 와 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탈북자에 이야기에 따르면 정대세와 홍영조가 나란히 사라진 이유가 뜻밖에 폭행 사건 때문이라고 합니다. 카타르 아시안게임 예선 경기를 준비하면서 홍영조가 정대세를 폭행했다는 겁니다.

정대세가 패스 타이밍에 패스를 주지 않고 질질 끌다가 공을 빼앗겼다는 이유 때문인데, 한국 기자들의 표현대로라면 ‘인민베컴’이 ‘인민루니’를 때린 거죠. 체육선수들이 성격이 좀 불같은 면이 있고, 자기 팀 선수끼리 손찌검하는 일도 종종 있는 일이긴 합니다.

특히 북한 체육선수들은 국제적 무대에서 뛰지 못해 그 기준을 모르다보니 폭행은 다반사이기도 합니다. 한국도 몇 십 년 전에는 방망이로 맞으며 선수생활 하는 것이 만연했고, 지금도 폭행사건이 터져 나오는데, 북한은 한국의 한 세기 이전 문화라고 봐야 되겠죠.

당시 홍영조는 팀 대표팀 주장이라 무서운 것도 없는 상황입니다. 또 4.25체육단은 군 소속이라 군 장교 신분이라 이들은 특히 거칠기로 소문났죠. 주장이고, 1984년생인 정대세보다 두 살이 더 많은 홍영조는 경기가 풀리지 않고 패스 타이밍도 놓치는 정대세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축구경기장 가운데서 다른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때렸습니다.

그런데 정대세는 또 일본에서 자랐고, 비록 총련 신분으로 북한 대표팀에서 뛰긴 했지만 일본 리그 경험을 했고, 또 당시엔 2부 리그이긴 하지만 독일 리그에서 뛰던 사람입니다. 그래도 북한을 조국으로 생각해 열심히 뛰었더니 돌아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당해 망신만 당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나마 북한이니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게 다행이겠죠.

또 북한팀에서 정대세를 제대로 대우해주었겠습니까. 어디서 굴러온 재포 때문에 아는 후배가 기회를 잃었다고 생각해 왕따도 주었을 것이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아 고생했을 겁니다. 아무튼 이 사건에 열 받아 정대세는 다시 북한 대표팀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이상한 일들이 좀 있었습니다. 북한 대표팀이 카타르 다 도착했는데 정대세만 혼자 이틀이나 늦게 경기 시작 전에야 합류했습니다. 또 1년 전에 월드컵 본선까지 올라갔던 북한팀이 이 대회에서 정대세와 홍영조 투톱을 그대로 내세우고도 한 골도 넣지 못하고, 한 경기도 못 이기고 예선 탈락했죠.

월드컵 이후 김정훈 감독이 수용소로 끌려가고, 홍영조와 정대세의 불화가 겹쳐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폭행 사건의 책임을 추궁 받던 홍영조도 결국 팀을 떠나 대학에 가서 검사가 됐습니다.

참고로 우리는 검사가 되려면 사시를 통과해야 하는데, 북한은 그냥 김일성대 법학부 가서 얼렁뚱땅 낙제만 면해 졸업증 받으면 다 검사로 국가가 임명해주니, 스포츠선수가 검사가 되는 건 매우 쉬운 일입니다. 솔직히 홍영조 정도면 대학 다닐 때 체육 특기생으로 축구나 하면서 공부도 안하고 졸업했을 겁니다.

정대세는 이후 독일에서 성공 못하고, 2013년 한국 수원 삼성 선수가 됐지만 2년 동안 또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2015년 일본 리그로 이적했는데 지금 어느 팀 임대선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대세 선수의 최고의 영광은 어찌됐던 월드컵 본선 무대를 뛰었다는 것일텐데, 그 팀에서 또 인생 최대의 굴욕을 맞보았습니다. 아무튼 결론은 북한 독재정권에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체육쪽으로든 충성을 해도 쓰디쓴 환멸과 파멸로 그 대가를 치른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정대세도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 됐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