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강력 군사력에 당황한 북한의 눈물나는 대응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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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2.03 17:58

제가 북에서 살 때 노동신문이 제일 재미있었던 때를 말하라면 주저 없이 1991년 1월부터 2월 사이 기사들이 제일 볼만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년 전 뉴스도 오늘 것 같고, 10년 전 뉴스도 오늘 것 같은 노동신문이 그렇게 기다려지기는 그때가 처음인데, 바로 그해 1월 17일에 걸프전이 시작돼 2월 28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놀랍게도 노동신문은 걸프전이 벌어지자 이를 비교적 소상하게 중계했습니다. 북한에선 걸프전을 만전쟁이라고 했는데, 물론 전쟁의 참혹함도 알고 피해자들에겐 안 된 말이지만, 그래도 싸움 구경 해보긴 첨이었습니다.

물론 눈으로 화면을 본 것은 아니고, 그냥 읽기만 했지만 내가 살던 곳이 북한임을 감안하면 그 정도만 해도 과분한 것이죠. 더 놀라운 것은 그 전쟁을 제가 보기엔 북한이 첨으로 중립적 시각에서 전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즉 공습의 시작과 전쟁 양상을 중계 보도하듯이 전했는데, 이런 식입니다.

“이라크 모 방송에 따르면 18일 F-111 전략폭격기 등을 앞세운 다국적군 비행기 16대가 바스라를 공습했다. 이라크 반항공군은 미사일을 발사해 이중 1대를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이라크 혁명수비대는 쿠웨이트에 5기의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다국적군이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을 발사해 이중 3기를 격추했고 두 발은 쿠웨이트 도시 외곽에 떨어졌다. 모 섬에 접근하던 다국적군 소해정 1대가 기뢰에 부딪쳐 격파됐다.”

이런 식인데, 보도 분량이 다국적군의 공격 내용과 이라크군의 방어 내용이 거의 반반씩 됐습니다. 물론 전과라고 나오는 것은 이라크군 중심으로 써서, 미군 비행기 몇 대가 떨어졌다 이런 식입니다.

다국적군의 전과라고 해봐야 오늘 어딜 폭격하고, 패트리어트로 스커드 몇 기를 요격했고 하는 식이고 이라크군이 얼마나 피해봤는지는 찾아볼 길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임을 감안하면 미제라고 쓰지 않고 다국적군이라고 한 게 어딥니까.  

저는 “영웅적 이라크 혁명수비대가 미제 침략자들을 통쾌하게 짓부셨습니다. 오늘만 해도 미국놈 45놈이나 황천길에 갔습니다”는 식의 보도를 할줄 알았거든요. 덕분에 토마호크니, 패트리어트니 하는 미사일 이름도 얻어들었고, 토마호크가 무슨 뜻인지 사전도 찾아서 기억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 하루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보도가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전쟁이라면 막 돌격하고, 방어선을 뚫고, 막고 그러는 것만 상상했는데 계속 어딜 공습했고, 이라크가 스커드 몇 발 쏘고 이런 내용이 반복됐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요즘은 왜 전쟁 이렇게 시시하게 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노동신문이 다국적군 병력과 이라크군 병력까지 비교해주는 바람에 “이렇게 쪽수가 엇비슷하니 누구도 선뜻 못 들어가는구나” 정도로 짐작했죠.

한달 넘게 공습 보도에 지루해지던 차에 2월 24일 지상전이 시작됐답니다. 교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보고 “오, 이제야 정식 시작되네” 이러면서 다음날 신문을 펼쳤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제 보도한 분량의 절반만 나옵니다. 싸움이 벌어졌으면 더 크게 써야하는데, 어디 어디서 격전이 벌어졌다는 것만 전하니 그것만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또 다음날 보니 이번에는 더 작게 보도됐는데, 혁명수비대가 여전히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답니다. “이상하네” 이러고 있는데, 나흘 쯤 지나니 놀랍게도 노동신문에서 걸프전 뉴스가 사라졌습니다. 지상전이 시작됐다는데, 나흘 만에 보도가 없어진 겁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라크군 50만 대군이 나흘 만에 없어진 것 같지는 않고, 분명 다시 소강상태에 들어간 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동안 걸프전 뉴스가 사라지니, 그때에야 비로써 이라크가 정말 졌냐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50만 대군에 탱크도 수천 대나 있다고 했는데 갑자기 사라졌다는 걸 믿지 못했죠.

나중에 서울에 와서 찾아보니 걸프전은 지상전이 4일 4시간, 불과 100시간 안에 끝났다고 하네요. 그리고 몇 달 뒤 북한군 각 부대들에 총참모부 지시가 연거푸 하달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억되는 지시는 갱도를 많이 만들고 입구 문에 적의 레이더 탐지를 교란시키기 위해 원뿔을 만들어 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방에서 발파소리가 울리고 텅 빈 굴들이 곳곳에 만들어졌죠.

그리고 또 하나의 지시는 가짜 무기를 많이 만들어내라는 것인데, 군인들이 용접기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공장들에 가짜 포를 만들어 내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가짜를 많이 만들어야 적들이 진짜를 구분 못하고 허튼 곳에 폭격한다는데, 결과 우리가 더미라고 불리는 가짜 비행기, 탱크 등이 잔뜩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과연 속을까요. 구글 어스로 들어다 봐도 가짜인 것이 드러날 정도인데, 어쨌든 걸프전에서 미군의 무시무시한 화력을 보고 기겁해서 북한군이 머리를 짜내 만든 대책이 고작 갱도 많이 만들고, 뿔 만들어 붙이고, 더미 만들라는 것들이었습니다.

북한군도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대책을 세우라니 하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자기들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한 10년 지나니 관리도 안하더군요. 하지만 이걸 고철이나 땔감이라도 썼으면 좋으련만 그 주제에 그래도 군 등록 장비라 다치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북한에 가면 저렇게 방치된 가짜 모형들이 아직도 남아있을 겁니다. 눈물나게 구슬펐던 북한군 과거의 산증인인 셈입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