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열병식 훈련장에서 떼창을 했던 한국 민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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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2.15 11:37

지난달 진행된 북한 노동당 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을 보셨을 겁니다. 저는 그 열병식을 보면서 참가자들이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얼굴이 동상을 입어 한결같이 새빨간데,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원래 북한 열병식은 보통 1년 준비합니다. 그러니까 이번 열병식조가 작년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준비하기 위해 2019년 10월쯤부터 뽑혀서 훈련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1년을 채우니 또 1월에 열병식을 한다고 석 달 더 연장됐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려 1년 3개월을 집을 떠나 어마어마한 고생을 한 것입니다.

열병식 나가면 정말 힘듭니다. 군대 일과와 똑같이 진행되는데 아침 5시반경에 기상해서 아침 8시부터 저녁까지 행진 연습을 하고, 지적받으면 저녁 먹고 다시 합니다.

한 개 열병 종대가 가로, 즉 횡대가 24명, 세로, 즉 종대가 14명해서 288명이고 여기에 앞에 지휘관과 기수가 보통 7명이어서 295명이 한 대형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또 매 블록마다 20~30명의 예비인원까지 준비하면 거의 320명이 한 개 대형으로 준비한다 보시면 됩니다. 이건 제가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변한 것이 없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횡대 24명인데, 이들은 1년 동안 함께 훈련하다보면 식구이자 형제와 같이 됩니다. 밥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24명이 다 같이 움직이고, 처벌을 받아도 같이 받게 됩니다.

열병식 훈련하다보면 정말 방광이 고장이 나서 모두가 시뻘건 오줌을 싸게 되는데, 집안도 아닌 밖에서 훈련하면 사람이 죽습니다. 여름엔 더워서 죽고, 겨울엔 추워서 죽습니다. 사람이 악 밖에 남지 않죠. 그럼에도 그 죽음의 훈련장에서도 사람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이겨냅니다.

그런데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열병식 내내 부르며 힘을 얻었던 노래가, 제목도 모르고 ‘열병식노래’라고 널리 퍼져 훈련장과 김일성광장 모의 열병식에서 모두가 떼창을 했던 그 노래가 알고 보니 한국 노래였습니다. 나중에도 불렸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2002년 열병식 참가자 세 명에게서 들었는데 모두가 그 노래를 불렀다고 하고, 그 노래를 부르며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2002년에는 4월 15일에 김일성 생일 90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했고, 다시 열흘 뒤인 4월 25일 북한군 창건 70주년 열병식까지 했습니다. 그걸 준비하느라 2001년 4월부터 사람들 뽑아 훈련을 시켰는데, 10월까진 해당 지방에서 훈련했고 11월에 평양 미림비행장에 있는 열병식 훈련장에 전부 모여 훈련을 합니다.

그 훈련장에서 순식간에 퍼져 너도나도 불렀던 이 노래는 바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만든 운동가요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입니다.

이 노래는 한국 운동권에서도 많이 불렀고, 참여정부 때도 많이 불렀습니다. 그래서 성향이 오른쪽에 계신 분들은 ‘빨갱이 노래’라고 싫어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북한에서 퍼진 노래는 한국의 운동권 가요가 참 많습니다. 제가 있을 때는 ‘아침이슬’ ‘바위섬’에 열광했는데 나중에 또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이 노래가 퍼진 겁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는 정말 열병식에 지친 사람들에겐 너무나 딱 맞는 노래인 것입니다.

어기여차 넘어주고, 어기여차 건너 주자,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이런 표현들이 딱 다 같이 일사분란하게 동작을 맞추고, 못 맞추면 연좌제로 처벌받는 그런 상황과 너무 잘 맞지 않습니까. 특히 후렴구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라는 대목은 누구나 잊지 못하는 구절입니다. 그 동작의 하나됨을 위해 혹독한 훈련을 하는데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가자니 얼마나 절절하겠습니까.

문제는 온 열병식 훈련생들이 쓰러지게 되면 이 노래를 합창하는데도 그게 한국 노래인 줄 누구도 몰랐다는 겁니다. 그냥 누가 우리의 마음을 담아 자작곡을 지었나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지휘관들도 장성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언제 한국노래 들어봤겠습니까. 그들도 모르니까 그냥 방치한 겁니다.

이 노래와 역시 북한에서 누가 지었는지 출처를 알 수 없는, 북한 사람들은 다 잘 아는 ‘인생의 길은 멀고 험해서 가다가 아픔도 많았지’ 하는 노래가 열병식장에서 제일 인기가 좋았습니다. 김 씨 독재정권을 찬양하느라 진행된 열병식에서 한국의 운동가요가 가장 사랑받는 노래가 됐다니 이게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이겠습니까.

열병식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그걸 ‘열병식노래’라는 제목으로 사회에 퍼뜨려서 북한 사람들 대다수가 알았던 노래였습니다. 평양에도 엄청 유행했다고 합니다. 저에게 증언해준 한 명은 나중에 한국에 와서 그게 남쪽 운동권가요인줄 알고 엄청 충격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왜 운동권 가요들이 북한에서 인기를 얻고 급속하게 퍼지는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같은 민족의 노래라는 것 외에 뭔가 숨어있는 코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회 변혁을 바라는 그런 정신이 북한 사람들의 마음도 녹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한국의 운동가요들이 북한에 많이 들어가서 널리널리 퍼지기를 바랍니다.

나중에 혹시 북한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 우리가 민중 항쟁 시기마다 그랬듯이 피를 흘리며 운동가를 부르며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사실 개인적으로 그런 날을 너무너무 보고 싶고, 그런 날이 오면 저도 남 먼저 북에 들어가 항쟁의 대오와 함께 팔을 겯고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