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감자’로 유명한 대홍단에 나타난 ‘장군님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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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3.11 10:19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다시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에 한국에 뜬 북한의 지명 중에 대홍단이란 것이 있습니다. 어린 소녀가 나와서 ‘감자, 감자 대홍단 감자’하며 동요를 부르는 바람에 엄청 뜬 지명인데, 작년에 송영길 의원이 감자밭에 나가 일하면서 이 동요 흉내내 불렀다 말밥에 오른 일도 있죠.

아무튼 대홍단 하면 감자가 연상케 할 정도로 유명한데, 실제 대홍단 감자는 맛이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감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인데, 하나는 점질감자, 다른 하나는 분질감자입니다. 점질은 수분이 많아서 요리를 하면 잘 흐트러지지 않는데, 우리나라 감자의 80% 이상이 바로 수미감자라고 불리는 점질 감자입니다.

반면에 북한은 삶으면 전분이 팍팍 터지는 분질 감자가 태반입니다. 특히 분질감자는 화산 지대에서 잘 자라는데, 우리도 제주도에서 감자 많이 재배합니다. 백두산 아래 삼지연, 대홍단 이쪽 감자는 베개통만한 것도 있고, 맛도 좋지요.

대홍단은 지도에서 보시면 알겠지만 백두산 아래에 삼지연과 붙어 있는 국경 지역입니다. 삼수갑산보다 훨씬 더 들어와야 해서 과거에 이곳엔 유배도 안 보냈던 곳입니다.

북한이 나중에 출신성분 나쁜 사람들 유배하듯 보내서 이곳 사람들의 출신성분은 북한 평균에 비해 크게 나쁩니다. 추방자 자녀들이 인구의 대다수인데 그런 이유로 남쪽에 탈북해 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아무튼 이 대홍단에서 일어난 일인데, 들으시면 우리가 대홍단 감자 정도로만 떠올리는 이 지역에서도 얼마나 황당한 일이 벌어졌는지 분노하게 될 것입니다. 주성하TV는 구독, 좋아요도 좋지만 끝까지 들어주시면 더욱 힘이 납니다.

이 이야기는 직접 그 지역에서 살다 오신 탈북민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고난의 행군이 좀 지나서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벌어진 일인데, 이때 삼지연 별장을 들락날락하던 김정일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대홍단은 아주 살기 좋은 곳”이라고 칭찬하면서 이곳 사람들이 이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리고 돌격대를 보내서 각 리에 ‘300톤 목장’이란 것을 건설하게 했습니다. 대홍단에 리가 12개가 있는데, 각 리마다 돼지고기 300톤씩 생산하라고 해서 300톤 목장이 됐습니다. 김정일은 심지어 외국에서 품종이 좋은 것이라면서 종자돼지들까지 달러를 주고 사서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온 돼지들이 감자와 풀을 먹지 못하는 겁니다. 외국에서 와서 그런지 풀과 감자를 주니 입맛도 안 맞아 단식을 하는 거죠. 오기 전까지 사료 먹다가 풀 먹겠습니까.

그 돼지들은 김정일이 보내주었다고 해서 ‘장군님 돼지’라고 불렸는데, 장군님 돼지가 죽으면 목 날아가는 사람이 많겠죠. 결국 간부들이 유엔에서 대북 식량 지원하라고 보내준 옥수수를 여기에다 배정했습니다. 그때 유엔을 거쳐 미국 옥수수도 참 많이 왔는데, 그 미국 옥수수를 인민이 아닌 외국 돼지들이 먹고 사는 겁니다.

당시 대홍단 사람들은 1년 내내 감자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실정이었습니다. 감자라도 있으면 다행이고, 집집마다 산에서 풀을 뜯어다가 4인 가구가 가마에 풀을 가득 넣고, 고작 강냉이가루 100그램을 풀어 풀죽을 먹는 가정이 태반이었습니다.

돈이 없어 소금도 못 사서 몸은 영양실조가 왔는데, 얼굴은 퉁퉁 부어서 다녔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 여인들은 일을 못나가고 끼니를 해결하느라 산을 헤매야 했고, 나중엔 백두산 아래의 마을에 뜯어 먹을 풀조차 기근인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여인이 산을 헤매고 오면, 농장원이 일을 안나오고 풀을 뜯으려 다녔다고 또 강제노동단련대로 끌고 가는 겁니다. 이게 나라입니까.

먹을 것이 없어서 일을 못하는데, 그 먹을 풀을 뜯으러 갔다고 또 강제노동단련대에 끌고 가서 일을 시킨다는 말이죠.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은 그래서 북한 김 씨 독재정권 찬양하는 인간들을 보면 이를 바득바득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대홍단 주민들은 이런 지경인데, 간부들에게 더 큰 문제는 굶어 죽어가는 인민이 문제가 아니라 감자와 풀을 먹기를 거부하는 수입돼지들이었습니다.

인민은 굶겨 죽여도 아무 처벌이 없지만.  장군님 돼지 죽이면 자기들이 죽게 되는 겁니다. 돼지가 옥수수를 먹고 피둥피둥 살이 찔 때 그 돼지를 기르는 돼지 관리공들은 먹을 것이 없어 풀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돼지 신세를 얼마나 부러워했겠습니까.

급기야 관리공들은 돼지 사료를 한 줌, 두 줌 훔쳐서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집에 와 죽을 써먹었습니다. 누구나 그런 상황이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많이 훔치면 바로 들켜서 그나마 돼지 관리공도 못하게 되니 티가 나지 않게 조금씩 몰래 훔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안 들키겠습니까. 이런 일이 몇 번 적발되니 돼지사료 창고에서 사료를 내줄 때 물을 타서 준 것입니다. 주머니에 훔쳐가지 말라고요. 그런데 솔직히 배가 고파 뵈는 게 없는데 물을 섞었다고 안 훔치겠습니까. 물을 빼고 앙금을 건져 또 훔쳤죠.

그러니까 간부들도 또 화가 나죠. 돼지가 살이 안찌면 자기들이 또 뒤집어 써야 하니까 결국 사료를 훔치지 않는 최후의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게 뭐냐. 인분을 퍼 와서 사료와 인분을 섞은 뒤 그걸 양동이에 담아 내준 것입니다. 아무리 배고파도 어떻게 그거야 훔치겠습니까. 결국 간부들의 의도는 성공했겠죠.

사람이 먹자고 돼지를 키우는데, 대홍단에선 사람들이 돼지의 시종이 된 것입니다. 세상에는 노예제를 그린 영화들이 많은데, 노예제 영화에서도 돼지보단 노예가 더 비싸게 다뤄집니다. 북한 사람들은 돼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장군님 돼지는 겨우 살려놨지만, 종자돼지 몇 마리를 살린다고 해서 풀과 감자밖에 없는 곳에서 돼지고기 대량생산이 가능하겠습니까. 결국 북한 어디 가나 그렇듯이 그 돼지목장에선 거의 생산량이 나오지 않고 흐지부지 됐습니다.

TV에 나와 ‘감자, 감자, 대홍단 감자’를 경쾌하게 부른 어린 여자 아이는 아마 평양에 사는 높은 간부의 딸일 겁니다. 그의 집에는 돼지고기도, 감자도 풍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 씨 독재자와 그에 아부를 떠는 간부들이 그렇게 살 때 인민들은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하긴 간부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 그들도 노예주와 노예 사이에 있는 노예 관리인 정도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노예제도는 붕괴되는 것이 역사의 순리인데, 이 순리가 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는지 정말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