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회고록에 등장하는 문익환 목사의 방북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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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3.26 17:26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제가 최초로 입수한 ‘김정일회고록’ 파일 중에 문익환 목사에 대한 내용 전할까 합니다. 1989년 3월 25일 문익환 목사가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껴안은 사진은 당시로서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선 여러 가지 보도된 것들도 있지만, 김정일은 이것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회고록을 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북한 자체가 사기극에 기초해 설립된 국가이니만치, 김정일의 회고록이란 것도 절대 진실이 실릴 수는 없고 사기로 가득 찼을 것이라는 점 강조 드립니다.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도 도를 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번 회고록을 통해 김정일이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북한 인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려 했는지 참고할 수가 있습니다. 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건 다음 편은 임수경 편입니다. 이외에도 회고록에 최덕신 문명자 이후락 등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방북 인사들에 대한 평가는 김정일회고록 파일에서 3분의 2쯤 되는 후반부에 나옵니다. 이제부터 그 내용을 그대로 읽겠는데, 북한 표기법, 띄어쓰기 그대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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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동지께서는 1989년 신년사를 통해 북과 남의 각당, 각파, 각계층 지도급인사들의 정치협상회의 제안을 내놓으면서 남조선의 주요정당 총재들과 문익환목사를 비롯한 여러 인사들을 하나하나 이름을 꼽아가며 평양에 초청하시였다.
북남정치협상회의 제의가 신년사를 통해 공포된 그때 남조선전국민족민주련합(전민련) 고문인 문익환목사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운명적인 기적에 접하였다. 그는 섣달 그믐날에 불현듯 떠오르는 시상을 잡아《나는 1989년이 지나기 전에 평양으로 간다》는 시 한수를 지었다고 한다. 서울 남대문정류장에 찾아가 표파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평양가는 기차표를 달라고 떼를 쓰는 랑만적인 상을 가지고 쓴 시였다. 그런 시를 쓴후 그는 우리 수령님께서 신년사를 통해 자기를 평양으로 초청하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후에 문익환은 평양도착성명에서《그러지 않아도 평양에 한번 다녀 오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는 시까지 써놓고 있었는데 이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우연이 아닐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문익환목사가 평양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 길로 지방에 계시는 수령님께 장거리전화를 걸었다. 송수화기에서는 내가 말을 떼기도 전에 수령님의 반가움에 찬 목소리가 먼저 올려 나왔다.
《문익환목사가 왔다면서 ? 》
《네, 문익환과 함께 유원호, 정경모도 왔습니다. 》
수령님께서는 세상에 이런 경사가 또 있는가, 그래 머나먼 제3국을 고생하며 에돌아 왔다는데 건강이랑 기분상태랑 숙소조건이랑 어떠한가, 내가 방금 영접계획을 보고 비준해 주었는데 평양에 인차 돌아가서 문목사일행을 만나겠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문익환을 두번에 걸쳐 만나주시였다.
나는 지금도 수령님과 문목사사이에 오고간 일문일답과정을 록음으로 듣군 하는데 그때마다 그 담화에서 깊은 감명을 받군 한다. 그리고 그처럼 짧은 시간에 통일의 공통분모를 찾고 호상리해에 도달한 담화의 생산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군 한다.
그것은 외교적격식과 틀을 완전히 배제한 정의회합이였다. 혈육들끼리 마주 앉아서 회포를 나누고 집안일을 의논하는데 무슨 격식과 틀이 필요하겠는가.
수령님께서는 문익환더러 외국사람들과 담화하는 식으로 앉지 말고 걸상을 가까이 갖다놓고 앉아 이야기하자고 하시였다.
그 소탈한 말씀에 긴장이 풀린 문익환은 처음부터 자기의 심정을 가식없이 털어 놓았다. 자기는 목사이기는 하지만 2천년전 예수의 부활을 문제로 삼는 사람이 아니라 조국통일을 민족의 부활로 믿고 사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마침 자기가 온 다음날이 부활절이여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고 하였다.
진실한 인간들은 말과 행동에 분칠을 하지 않는다.
《나는 문선생을 높이 평가합니다. 선생은 민주자 통일이고 통일이자 민주라고 하였는데 아주 훌륭한 말입니다. 》
문목사는 감격에 넘쳐 주석님, 그렇게까지 저의 뜻을 알아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하면서 반파쑈민주화투쟁, 반외세민족자주화투쟁, 민주통일투쟁, 이 세가지가 하나로 되여야 한다는것이 남쪽의 운동론으로 정립되였고 전민련의 강령도 바로 그것이라고 말씀 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그것은 나의 의견과 100% 같다고 하면서 그의 손을 힘 있게 잡아 주시였다.
《자, 손잡고 나아갑시다. 반파쑈반독재민주화, 반외세반침략자주화 그리고 평화적통일, 이 셋이 하나입니다. 우리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있습니다.》
분렬은 남의 손으로 되였지만 통일은 우리의 손으로 해야 한다. 우리 민족은 둘로 갈라지면 죽고 하나로 단합되면 산다. 이것이 그 대화의 흐름을 규정하고 있는 알맹이였다.
문익환은 앞으로 통일된 다음 남조선의 중산층을 어떻게 처리하려 하는가고 수령님께 물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여태 중산층을 반대한적이 없다. 우리가 반대하는것은 외세를 등에 업고 제 나라와 제 민족을 팔아먹는 자들이지 자수성가하여 민족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는 사람들이야 무엇때문에 반대하겠는가, 우리는 민족이 있고야 계급도 있다고 주장하는 조선식사회주의자들이다라고 대답하시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문익환이 수령님의 손을 덥석 잡으며 주석님, 그러면 됐습니다. 제가 평양에 들어 오면서 제일 근심하던 문제가 바로 그겁니다. 지금 남조선에는 과반수가 중산층인데 그들을 다 한품에 그러안는 통일이라면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인젠 됐습니다. 주석님의 뜻대로만 하면 통일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입니다. 통일은 미정형이 아니라 완료형입니다하고 환성을 올리였다.
접견시간은 두번 다 합쳐 서너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분단 50년의 력사에서 그것은 눈 깜박할 순간이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수령님과 남조선의 재야민주인사사이에는 벌써 통일이 이루어 졌다. 50년이 아니라 5천년이 흘러도 달라 질수 없는 혈육의 정이 분계선을 없애고 콩크리트장벽을 허물어 버린것이다.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라의 통일을 위한 일을 까다롭게 대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 앉아 허심탄회하게 토론하여야 풀릴수 있습니다. 문선생과 이렇게 두번 만나니까 벌써 동지가 되고 서로 걸리는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
문익환은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유물론자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본 그때의 문익환은 독실한 성직자라기보다 지성있는 작가나 학자풍의 인격자였다
정견과 신앙을 초월하여 민족적대의에 모든것을 복종시켜 나가신 우리 수령님의 넓은 포옹력과 친화력으로 하여 남조선재야운동권의 일개 고문에 지나지 않던 문익환은 남조선의 그 어느 대통령도 감히 할수 없었던 큰일을 이루고 돌아 갈수 있었다. 수령님께서 대화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시고 문익환이 용약 그 문을 통해 우리와 손을 잡은것은 남조선당국이 금단의 지역으로 이단시하고 차단봉을 드리웠던 이북에로의 길에 큼직한 돌파구를 뚫어놓은 사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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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에 대한 언급은 여기까지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눈에 들어왔던 것은 문익환 목사가 “앞으로 통일된 다음 남조선의 중산층을 어떻게 처리하려 하는가고 수령님께 물었다”는 대목입니다.

아니, 그걸 왜 김일성한테 묻습니까. 평소에 김일성에게 남조선 중산층 처리 권한이 있다고 여겼다는 것이 아닙니까. 통일되면 김일성이 권력을 잡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물론 앞서 말했듯이 회고록 내용은 믿을 것이 없지만, 만약 사실이면 문익환 목사를 다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다음 시간엔 임수경에 대한 내용 전해드릴 것인데, 문익환 목사보다는 두 배 정도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