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침이슬`을 부르며 평양 하늘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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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3.31 15:08

올해 1월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란 것을 최고인민회의에서 제정했는데, 이에 따르면 남조선 영화, 책, 사진은 물론 노래를 보고 듣거나 유포하면 최하 5년에서 사형까지 처할 수 있게 규정했습니다.

제가 북한에서 살았고, 또 남쪽에서도 북한을 거의 20년째 지켜보고 있는데, 이런 악법은 유례가 없는 것 같습니다. 김정은이 지금 외부의 영향에 얼마나 미쳐 발광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 법입니다.

제가 북에서 온 많은 탈북민들을 만나지만 북에서 한국 노래를 이렇게 통제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기차역에서도 술자리에서도 한국 노래는 공공연하게 불렀는데, 이제는 부르면 5년 잡혀가게 된 것입니다.

불과 3년 전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평양대극장에서 삼지연관현악단이 한국노래를 여러 개 불렀고, 그 직전 ‘봄이 온다’ 공연 때에도 한국 연예인들이 평양시민들 앞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이때 김정은은 장덕의 ‘뒤늦은 후회’를 요청해 듣기도 했습니다. 자기도 한국 노래 많이 들었다는 거죠. 그런데 갑자기 한국노래가 반동문화라며 없애겠다고 합니다.

한국노래는 1980년대부터 북한에서 많이 불렸습니다. 초기엔 대남방송용으로 칠보산전자악단이란 곳에서 한국 노래를 많이 개사해 내보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처음 알았던 한국노래는 10대 후반인 1980년대 말에 배웠던 ‘최영감네 셋째딸’입니다. 그때 한국노래인줄 모르고 연변노래라고 하면서 돌았습니다.

가장 애청한 한국노래는 ‘아침이슬’이었습니다. 제가 저번에 2002년 열병식 참가자들 속에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 가장 인기를 얻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제가 대학 다니던 1990년대 중반에 가장 인기있던 노래가 ‘아침이슬’과 ‘바위섬’이었습니다.

저는 아침이슬을 군복을 입고 배웠기 때문에 좀 더 각별하게 생각합니다.
북한에는 대학생들이 2학년 때 ‘교도’라는 이름으로 6개월을 군에 복무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저는 1990년대 중반 평양고사포병사령부 57미리 대공포 부대에 소속돼 평양 인근에서 복무했는데, 교도대는 중대장, 소대장 등 장교와 사관장 통신병 등은 현역군인이고, 포장부터는 대학생이 맡는 구조입니다.

겨울에 교도에 나갔는데, 얼마나 춥습니까. 그럼에도 교대로 밤에 나가 포에서 근무를 해야 합니다. 사실 그 포들은 쓸만한 것이 못됩니다. 제가 복무한 포도 1943년 소련에서 만들어져 6.25전쟁 때부터 쓰던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포를 평양 주변에 잔뜩 배치해놓았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그런 포로 최신 비행기를 절대 잡지 못합니다.

교도생활이 시작돼 보름 쯤 됐을 때 2포에 있던 애들이 처음 들었는데도 흡입력이 있는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높은 간부집 아들인 동창이 직접 기타까지 치면서 다른 애들에게 노래를 배워주는데, 야간근무 나가 밤하늘을 바라보며 여럿이 합창하니 정말 가슴에 확 안겨오는 겁니다.

김 부자 찬양노래만 만연한 북한에서 아침이슬은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고, 일주일도 안돼 우리 중대가 다 배웠습니다. 중대라고 해봐야 다 영문과 같은 학년 동창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우리는 가사에 힌트가 없으니 한국 노래인줄 모르고 ‘구국의 소리방송’ 등을 통해 나가는 대남방송용 노래인줄 알았습니다.

이 노래의 무엇이 우리를 사로잡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노래 속에 감춰져 있는 항거의 정신이 우리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내재적인 반항의식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까요.

포 근무는 야간 당직이 많았는데, 우리는 추위를 이겨내느라, 잠을 쫓느라 단체로 노래를 많이 불렀고, 이 노래는 가장 애청하는 노래가 됐습니다. 중대에 현역 군인들이 한 10명 정도 있었는데 이들도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면서 따라 불렀습니다.

심지어 아침에 중대가 다 모여 식당으로 갈 때는 대열합창을 하는데, 이때에도 아침이슬을 많이 불렀습니다. 대열 합창할 때 선창자가 ‘긴 밤 지새우면’하고 목청을 뽑으면 우리는 다 같이 ‘긴 밤 지새우며’ 이러고 따라 부르는 겁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북한군 한개 중대가 군복을 입고 식당으로 이동하는데 ‘아침이슬’을 부르며 씩씩하게 행진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우리는 아침이슬을 부르며 평양하늘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그때 김일성대 학생들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2~3년이 지난 뒤 아침이슬은 북한 전역에 널리 퍼졌는데, 특히 감수성이 빠른 중학생들이 너무 좋아했습니다. 저는 탈북 할 때도 이 노래를 비장하게 속으로 되새겨 불렀고, 북한 감옥에 잡혀 있을 때도 이 노래를 마음속으로 불렀습니다.

저와 함께 이 노래를 불렀던 동창들은 지금 북한에서 외교관, 기자, 장교,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아침이슬을 배워주었던 친구는 대학 졸업 후에 김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 간부로 갔습니다. 북한 고위 간부들의 가슴에도 ‘아침이슬’의 코드는 심어져 있는 것입니다.

아침이슬은 2002년 9월 윤도현 밴드가 북에서 공연할 때, 그리고 2003년 조용남의 북한 공연 때도 불렀습니다. 조용남 공연 때 보니, 그 자리에 참가한 북한 사람들이 감동한 눈빛으로 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예술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일어나 손까지 흔들며 따라 불렀습니다. 참으로 아침이슬은 남과 북에서 정말 유명한 노래입니다.

아침이슬만 그렇겠습니까. ‘너를 보내고’ ‘이등병의 편지’ ‘사랑의 미로’ 등 북한엔 수많은 한국노래가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노래를 부르면 감옥에 가서 최하 5년을 보내야 한다니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열 받고, 김정은을 욕하겠습니까.

김정은을 만난다면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이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미 다 퍼져 마음  속에 있는 노래를 없앨 수도 없는데 강제로 못 부르게 하면 민심을 잃는 겁니다. 혹여 그 민심이 광장에 쏟아져 나온다면, 저는 그들이 아침이슬을 합창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