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조상님. 올해도 못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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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4.05 10:37

오늘은 청명입니다. 내일은 한식입니다. 오늘은 청명과 한식을 맞아 북한 주민들이 코로나로 효도할 기회조차 차단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말이 있는데, 한식과 청명은 하루 사이이기 때문에 하루 먼저 죽으나 하루 뒤에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오래전부터 한식에 조상묘를 찾아가 성묘를 하는 문화가 있죠. 제가 자랄 때 북한도 그랬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한식에 조상묘를 찾아가던 기억들이 생생한데, 이제는 한식에 갈 수가 없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김정일이 한식이 중국 명절이니 쇠지 말고 대신 청명을 쇠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대신 청명을 공휴일로 지정했는데, 김정은이 집권한 다음날인 2012년부터 달력에 청명을 빨간 날로 딱 표시했더군요. 그러니까 이젠 북한엔 한식 차례가 없어지고 청명 차례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청명에 조상님들 묘소를 찾아가 벌초도 하고 제사를 하긴 하지만, 하루 차이이니 한식에 올라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청명이 노는 날이기 때문에 청명에 더 많이 가겠죠. 그런데 지난해 닥쳐온 코로나 사태는 북한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는데, 한국보다 훨씬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한국은 코로나 때문에 지난해 한식 차례를 조촐하게 치른 집이 많고, 당일에 자식들을 오지 말라고 한 부모들도 많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성묘는 아마 다들 했을 겁니다. 한국은 우선 공동묘지가 절대적으로 많아 묘지관리측이 다 해주는 경우가 많고, 따로 가족 선영이 있어도 돈을 주면 해당 지역 주민들이 대신 해주는 경우가 작년에 많았죠.

그런데 북한은 여기서 차이가 납니다. 공동묘지가 있긴 하지만 묘지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관리소라는 것도 없습니다. 돈 주고 시키는 문화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족이 가서 직접 낫을 들고 풀을 베지 않으면 벌초를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지난해 코로나 통제를 어떻게 했습니까. 국가 비상방역 체계를 선포하고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통제를 했습니다. 이웃 지역에 이동하는 것도 철저히 금지했기 때문에 마을 뒷산이면 갈 수가 있어도 조금만 묘가 멀어도 갈 수가 없는 겁니다.

추석에도 통제하고 하니 지난해 북한의 산에는 풀을 베지 못한 묘가 엄청 많다고 합니다. 그럼 올해라도 가서 하면 좀 낫겠는데, 올해도 통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워낙 코로나 방역 지침 위반을 군법에 맞춰 처벌하라고 하니 용기를 내서 다니기 쉽지 않은 겁니다.

묘라는 것이 그래도 1년에 한번은 찾아가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풀이 무성한 것은 물론 여름 장마 때 패이고 한 것도 보수할 수가 없습니다.

이동만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가족끼리 제사나 술판을 벌이는 행위들을 용서하지 말고 엄벌하라고 해서 집에서 제사도 감히 못했습니다. 원래 청명이면 묘지가 많은 산 주변에는 발에 걸채는 것이 주정뱅이들이었는데, 작년과 올해는 집에서도 주정을 부릴 형편이 안 된 것이죠. 두 가족만 모여도 처벌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잡겠다고 청명날에 보안원과 인민반장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실제 모이지 않았는지 감시까지 하게 했습니다. 너무 심하죠. 김일성과 김정일은 수억 달러를 들여 만든 으리으리한 금수산기념궁전이라는데 시체를 보관하고 김정은 본인은 코로나와 상관없이 직접 가서 수시로 참배를 하면서 인민들은 모여서 술도 마시지 말라고 하니 말입니다.

코로나 지침이 적어도 올해까지는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데, 2년째 부모님 산소도 못가는 북한 주민들은 속이 까맣게 썩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악독한 독재자를 만나 섬기는 대가로 북한 주민들은 효도할 길도 막혔으니 정말 원통한 일입니다. 오늘 얘기는 여기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