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대에서 배운 `임을 위한 행진곡`과 `전대협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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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4.13 18:19


저번에 임수경 방북 관련 김정일 회고록을 전해드렸는데, 임수경 방북 사건을 이야기하다보니 잊지 못할 사건이 하나 떠올라 오늘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수경 이후 하도 한총련 대학생들이 많이 오니 북한이 김일성대 학생들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과 ‘전대협 진군가’를 배워주었는데, 사실 그건 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북한 체제를 지탱할 핵심 정치 간부들을 키워내는 김일성대에서 한국의 운동권 가요들을 학생들에게 배워주었다는 것은 얼핏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주성하TV는 구독, 좋아요도 좋지만 끝까지 들어주시면 더욱 힘을 얻습니다.

1989년 임수경 방북 사건은 여러분들이 다 아실 것이고, 그리고 그걸 기점으로 한국 전대협과 그 후신인 한총련은 많은 대학생들을 북에 보냈습니다.

1991년에 박성희, 성용승 학생이 2번으로 왔고, 1994년 최정남, 1995년 정민주, 이혜정, 1996년 류세홍, 도종화, 1998년 김대원, 황선, 1999년 황혜로 등이 한총련 대표로 온 사람들입니다. 황선은 지금 뭐 하는지 알겠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지금 뭘 하는지 모르겠네요. 몇 명은 전향해 북한 민주화운동도 한다는 기사도 검색하니 나오던데 진짜인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처음에 박성희 성용승까지도 대대적으로 보도했는데, 나중엔 노동신문에 짤막한 단편으로만 보도했습니다. 임수경도 그러했지만, 한국 대학생들이 왔다고 자랑하기엔 그들이 북한 사회에 주는 영향이 대단했거든요. 솔직히 자유분방한 임수경을 보면서 많은 북한 사람들이 북한 사회의 모순과 자기들이 독제 체제에서 살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저도 많은 영향을 받았죠.

그래서 나중에 대학생들이 오면 동정을 잘 보도하진 않았는데, 그래도 온 손님이니 참관은 시켜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남조선 대학생들이 오면 당연히 참관하는 코스가 바로 김일성대였습니다.

1994년인가 1995년인가 그때였는데, 북에 온 한총련 대표가 김일성대를 방문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북한 노동당에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들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한국 운동가요를 불러줘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김일성대는 토요일은 정치학습 시간이었습니다. 김일성대 건물을 보면 복도 중간에 큰 홀 같은 것이 있는데, 각 학부마다 거기에 학생들이 모입니다. 의자도 없고, 그냥 복도 바닥에 빼곡히 차곡차곡 앉아서 복도 천장에 설치한 대학 공용 스피커에서 나오는 학습 내용을 듣고 받아 적습니다. 김일성 죽었을 때도 그렇게 학습하는 줄 알고 앉았다가 스피커에서 나오는 부고를 들었습니다.

아무튼 그날도 토요일이라 우리는 홀에 나가 앉았습니다. 양쪽 복도까지 차곡차곡 앉으면 한 200~300명이 앉습니다. 그런데 스피커에서 “오늘은 한국 운동가요를 배워주겠습니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졌죠. 왜 배워주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한총련 대표가 오는 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스피커에서 남자 목소리로 “자 받아 적으십시오”하고 불러주는데, 먼저 가사를 불러주더군요. 노래 두 개 가사를 받아 적게 한 뒤 이번엔 여학생이랑 같이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서 한 구절씩 따라 배우게 합니다. 스피커에서 나오면 우리가 따라 부르는데, 대략 한시간 반 정도 배웠을 겁니다.

마지막에 통으로 다 같이 부르게 하는데, 생각해보십시오. 복도에서 수백 명의 젊은 대학생들이 주먹까지 흔들며 부르는데, 목소리가 얼마나 떠들썩하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그때 2호 청사라고 22층짜리 건물에 있었는데, 이 건물이 복도로 다 연결돼 있습니다. 

스피커가 전 대학에 동시에 도달하고 지시를 주니 합창할 때 우리 학부 소리뿐만 아니라 저 아래 어문학부, 역사학부, 법학부 등 다른 학부에서 부르는 소리가 다 들리고, 그 외 다른 청사에서도 다 합창합니다. 거의 1만 명이 동시에 합창하니 대학 전체가 졸지에 서울의 시위투쟁 장소 같은 느낌이 나는 겁니다.

저는 노래 참 좋더라고요. 맨날 김 씨 일가 찬양하는 노래만 부르다가 비장하게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이러고 숱한 대학생들과 함께 앉아 부르니 마치 제가 시위 마당에 나간 듯한 분위기마저 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거 밖에 나가 못 불렀습니다. 정작 한총련 대학생이 왔을 때 학생들이 연도에 쭉 늘어서서 불렀을 건데 어느 학부를 동원했는지는 몰라도 우리 학부는 안 부르더군요.

전대협 진군가는 나중에 “나가자 전대협이여, 우리의 자랑이여” 이런 후렴 정도만 생각나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은 생생하게 기억돼 제가 대학 졸업한 뒤에도, 탈북의 순간에도 제가 매우 사랑한 노래였습니다.

한때 이 노래가 김일성을 찬양하는 ‘종북가요’라는 공격을 많이 받았죠. 1991년 나온 북한 영화 ‘임을 위한 교양시’에 가사는 빼고 곡만 배경으로 나왔다는 이유 때문인 것 같은데, 저도 그 영화를 보았지만 배경 선율만 듣고 “이게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구나”라고 생각할 북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분명한 것은 이 노래는 북에서 허락 없이 부르면 잡혀갑니다. 즉 북에서 이 노래는 김일성을 찬양하는 종북가요가 아니라 반동가요로 취급되는 거죠.

종북가요 논란을 떠나 저는 이런 운동가요가 북한에 널리 퍼지길 바랍니다. 한국의 운동가요야 말로 지금 북한에 절실히 필요한 노래들이고, 김정은의 압제에 신음하는 북한 인민이 따라 배워야 할 정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