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바다가극단이 몰살당한 북한 최악의 연예계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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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4.21 18:19


제가 얼마 전 생방송에서 김정일이 죽을 때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니지 않는 이유를 말씀드리겠다고 했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 한번 해볼까 합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백 명이 희생된 어마어마한 참극이 그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원래 김정일이 고소공포증 같은 것이 있어 비행기를 탈 수 없는 몸인 것은 아닙니다. 김일성이 196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비동맹 국가회의 참석 때 당시 김일성대 학생이던 김정일도 비행기를 타고 따라갔다 왔습니다.

김정일이 1964년 대학을 졸업한 뒤 중앙당에 들어가 선전선동부에서 지도원으로 있었는데 이때 영화를 찍는다며 헬기를 타고 촬영현장에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비행기를 타지 않았냐. 바로 1970년대 초반에 비행기 사고로 북한 예술인들이 수백 명 한꺼번에 죽은 뒤부터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타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은 1960년대 후반 문화예술분야를 지도하면서 아버지와 아버지의 빨치산 동료들에게 잘 보여 후계자로 지정하기 위해 혁명가극이란 것을 연속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작품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피바다’라는 소위 혁명가극이었습니다. 가극 하나를 하려면 수백 명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데, 이건 당대에 나름 사회주의권에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을 한다고 어수선할 때라 예술 같은 예술이 없었는데, 북한에서 만든 피바다와 같은 작품은 중국에서도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인기를 타고 피바다가극단은 해외 공연도 갔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초반 쿠바 공연을 떠난다고 순안공항에서 이륙한 고려항공 여객기가 공중에서 폭발했습니다. 이 사고로 수백 명의 피바다가극단이 전원 몰살됐습니다. 당시 피바다가극단은 북한에서 가장 잘 나갔고, 가장 쟁쟁한 예술인들이 모여 있던 단체였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연도는 제가 1971년으로 알고 있는데, 1972년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 유튜브를 시청하시는 연세 드신 탈북민 중에 사고가 1971년에 난 것인지, 1972년에 난 것인지 기억하시는 분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왜 1971년 또는 1972년으로 오차가 있냐 하면 북한에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북에서 인민학교 시절부터 탈북하기 전까지 매일 책 한 권은 무조건 읽었습니다. 그날 잡아 다음날 넘긴 기억은 딱 한 번뿐입니다. 제가 책을 좋아한 것도 있지만, 당시 북한에는 게임이 있나, TV가 재미있기를 하나, 놀이공원이 있나, 아무 것도 없어 책 안 읽으면 할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적어도 북에서 출판한 책은 5000권 이상은 읽었을 겁니다. 북한은 발행되는 책의 숫자도 매우 적으니 5000권 정도면 북한에서 나온 책은 거의 읽었을 겁니다.

제가 제 자랑처럼 들리는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면, 제가 이렇게 많은 책을 읽었음에도 피바다예술단의 참극이 기록된 책은 단 한 권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책은 ‘주체예술의 향도성’이란 제목의 파란 표지의 이만큼 두꺼운 책인데, 1,2권으로 나왔고, 김정일이 문화예술분야를 지도할 때 곁에 떨어지지 않고 자문을 했던 최익규란 사람이 썼습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선전선동부 부부장까지인가 지냈는데 1970년대 후반 김정일에게 아부하느라 과거 5대 혁명가극, 연극을 만들던 과정을 찬양하는 글을 썼습니다. 바로 이 책에 피바다가극단 여객기 사고가 딱 몇 줄 간단히 언급돼 있습니다.

예술인들이 전원 희생됐다는 비보를 받은 장군님께서 매우 슬퍼하시였다는 식인데, 사고 연도는 밝히지 않고, 언젠가라고만 돼 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서초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북한도서 코너에 가면 이 책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사고는 완전히 묻혀 은폐됐습니다.

이후 피바다가극단은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이를 피바다 2기라고 구분합니다. 피바다예술단 몰살 이후 김정은은 공포에 질렸는지 다시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김정일이 유부녀에 딸까지 있는 월북 작가 이기영의 맏며느리인 성혜림을 가로채서 살았습니다. 성혜림이 워낙 당대의 최고 스타였는데 하루아침에 사라지니 소문이 안돌겠습니까. 그 내막을 제일 잘 알던 사람들이 바로 피바다예술단을 포함한 예술인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정일이 자기가 성혜림을 가로채 사는 소문이 후계구도를 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김일성이나 빨치산 노간부들에게 들어갈까 봐 비행기 사고로 위장해 예술인들을 다 죽였다고 합니다. 그걸 본 다른 예술인들도 성혜림의 성 자도 꺼내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북에서 들었는데, 소문인지라 진위여부는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이 사건 이후로 김정일은 절대 비행기를 타지 않고, 베이징, 모스크바 등을 방문할 때도 무조건 열차로 갔습니다.

일각에선 1982년에 김 부자 전용기가 시범 비행 도중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 이후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는 설도 있지만, 이것 역시 어떤 기록도 없습니다.

김정은은 아버지와 달리 비행기를 잘 타고 다닙니다. 김정은이 어릴 때부터 고용희가 아들을 데리고 해외에 자주 나가 다녔습니다. 스위스 유학을 할 때에도 계속 비행기를 타고 오가고 했으니 비행기에 대한 공포감이 없을 겁니다. 김정은이 직접 경비행기를 운전하는 사진, 전용 여객기를 타고 평양 하늘을 돌아보는 사진도 오래 전에 나왔고, 싱가포르에 갈 때도 중국 여객기를 빌려 타고 갔죠.

현재 북에는 정부비행대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김 씨 일가 전용 비행단입니다. 전부 공군 출신 최고 에이스 조종사들로 구성됐고, 이들은 평양시 만경대구역 당상동에 있는 아파트에 단체로 삽니다. 이 아파트는 친척이라고 할지라도 외부 인원은 거의 드나들지 못합니다. 이 내용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 제가 오늘 유튜브를 통해 최초로 공개합니다.

북한 같은 독재국가에 태어난 죄로 뛰어난 재능을 갖고도 김 씨 일가 찬양에 동원됐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은 예술인들. 그리고 최고의 예술인 수백 명의 죽음까지 철저히 은폐할 수 있는 북한의 폐쇄성에 새삼 경악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라도 이 사건을 세상에 공개했으니, 무주고혼이 된 그들의 넋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민복 04/21 20:40 수정 삭제
이사건을 논하는 것은 주기자가 유일. 순안이 아니라 순천비행장. 묘비도 있음. 환송후 훗어지기도 전에 되돌아 와 근처산야에 처박혀 불타. 정비사 들은 그자리에서 체포. 본인은 순천 거주 1975년에는 비행장 근처 농촌전투도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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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복 04/21 20:42 수정 삭제
년도는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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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04/24 20:04 수정 삭제
북한의 언론들에서는 이런사건에 대해서 결코 보도하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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