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희대의 사기사건, 김정은 비서 사칭해 2만 달러 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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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5.03 11:23


저번 시간에 제가 가짜 권총과 수류탄을 들고 평양 중앙당 청사가 있어 치안이 삼엄한 무역은행을 턴 강도사건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김정일 비서를 사칭해 역시 당 자금 수만 달러를 갖고 사라진 사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 강도 사건이라고 해야 할지, 사기 사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희대의 사건이었습니다.

김정일의 비서를 사칭한 사건은 저번에 제가 말씀드린 무장 강도 사건보다 1년 먼저인 2002년 1월말에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김정일 아들을 사칭했다는 등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만, 저는 돈을 털린 평양대외보험총국에 그 당시에 근무하고 있었던 선배의 증언에 기초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외보험총국 싱가포르지사에서 근무하다가 탈북한 김광진이라는, 영어과 선배님인데, TV에도 많이 나와서 아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이 선배가 해준 이야기를 통해 사건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2002년 2월은 김정일 생일 6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얼마나 큰 명절입니까. 그러니까 그 전부터 북에서 외화를 버는 곳들은 초긴장이 돼서 달러를 벌어 충성의 자금으로 바쳐야 합니다. 대외보험총국도 예외는 아닌데 1월 말이면 전 세계에 돈 벌라고 내보낸 지사들에서 김정일 생일 앞두고 돈을 벌어 평양에 보냈을 때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대외보험총국에 쭉 빼입은 한 청년이 나타나 총국장방에 들어가더니 “3층에서 왔습니다”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북에서 “3층에서 왔다”는 뜻을 아는 사람은 거의 않습니다. 중앙당 청사가 3층짜리인데 김정일의 집무실이 3층에 있습니다, 지금은 김정은이 물려받아 쓸 겁니다. 3층에서 왔다는 말은 북에서 김정일이 보내서 왔다는 것을 에돌아 표현한 것인데, 이 말귀를 알아들을 정도면 아주 고위간부란 뜻이죠.

대외보험총국 총국장 정도면 알아들을 수 있죠. 그래서 갑자기 비굴모드로 들어가 “어떻게 오셨습니까”하니 “이번에 대외보험총국에 장군님 선물을 내려 보내려 하는데 운송비가 걸려서 왔습니다”고 한 겁니다.

여기에서 좀 추가로 설명이 필요한데, 대외보험총국은 외국을 상대로 보험사기를 쳐서 달러를 버는 곳인데, 그렇게 번 달러는 항상 빳빳한 100달러짜리 현찰로 바꾸어 김정일에게 상납합니다. 인터넷 뱅킹이 있을 리는 만무하니까 계좌로 쏘는 것이 아니고 달러 트렁크에 넣어서 가져다 바치는 겁니다.

이렇게 받은 달러로 김정일은 자기 필요한 것들 사는 것뿐만 아니라, 밤에 비밀연회 때에 위스키 한잔 쭉 마시는 간부에게 100달러짜리 몇 잘 툭 던져주고, 기쁨조에게 옷 벗으라하고 또 100달러짜리 뿌려주고 그랬던 거죠. 이 내용은 이한영, 황장엽 등 고위 탈북자들의 수기에 다 나오는 겁니다.

대외보험총국에서 달러를 바치면 김정일은 액수를 딱 보고 “올해 많이 벌었네” 또는 “왜 이것밖에 안돼”하는 식으로 평가하는 거죠. 마피아 두목과 다를 바가 없는 겁니다.

김정일이 흡족해하면 그 아래 아첨꾼들이 또 장군님께 기쁨을 드렸다면서 대외보험총국에 선물을 보냅니다. 어떤 해엔 TV를, 어떤 해엔 자전거를 주는데, 보잘것은 없지만 이게 인센티브인 셈입니다.

이런 것들이 매년 관행화되다보니 총국장은 김정일 비서가 와서 선물 운운하니 올해 우리가 너무 잘해서 선물 많이 주는 줄 알고 얼마나 황송해했겠습니까. 총국장이야 선물보단 김정일의 칭찬 받으면 승진길이 쭉 열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앞뒤를 따지지 않고 얼마 필요하냐 물으니 청년이 2만 달러가 필요하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100달러짜리 지폐 묶음 2개, 즉 2만 달러를 바로 갖다 바쳤습니다.

청년을 바래주면서 보니 총국 문 앞에 216으로 번호가 시작되는 벤츠가 기다렸다가 태우고 갑니다. 216은 중앙당 간부만 타는 차이죠. 그래서 총국장은 의심하지 않았고 청년은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나중에 들켰죠. 2만 달러가 비는데 김정일 서기실은 받은 것이 없다고 하니 발칵 뒤집혔습니다. 북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 전국이 초비상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이 청년이 100달러짜리 두 장 딱 쓰고 잡혔다고 하는데, 한 장은 낙원백화점에 가서 구두를 사고, 한 장은 장마당 암달러 바꾸는 상인에게 가서 북한돈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북에서 달러 사고 나면 제일 먼저 수사기관이 암달러 상인부터 찾아가죠. 불행하게도 이 청년이 받은 돈이 낡은 달러가 아니라 일련번호가 새겨진 새 달러 뭉치라 딱 걸린 겁니다.

잡고 보니 청년의 아버지가 노동당 재정경리부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죽으니 당에서 또 그의 어머니를 재정경리부에 받아 일을 하게 했답니다. 김정일 자금을 관리하는 부모를 두다보니 청년은 자라면서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3층이 무슨 의미인지 다 알게 된 겁니다.

그래도 행동에 옮기다니 참 간도 크죠. 그가 타고 나타났던 216벤츠는 고려호텔 앞에서 빌렸는데, 거기가 중앙당 청사 정문 앞입니다. 중앙당에 일보려 들어간 간부를 기다리는 벤츠가 많은데, 이 운전기사들이 100달러 하나 주고 어디 좀 갔다옵시다고 하면 제꺽 승낙합니다. 몇 시간 밖에서 기다릴 타임에 몰래 부업하는 겁니다.

김정일의 돈을 사기 쳐 달아났으니 이 청년과 가족이 어떻게 됐는지는 얘기할 필요가 없죠. 마피아 보스의 돈을 훔친 것과는 비교가 되지도 않죠. 3족이 아니라 8촌까지 멸족시킬 중죄를 진 만고 대역죄인이 된 겁니다.

그럼 2만 달러를 사기당한 총국장은 어떻게 됐을까요. 선배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3층에서 나왔다는데 거기에 신분증 보자 한다거나 또는 중앙당에 문의하는 건 누구도 상상 못할 일이죠. 충성심이 있는 간부라면 3층에서 왔다면 당연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요구를 들어야 하는 것이 정답인 세상이라 총국장은 무사했던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통해 북한이라는 곳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조금은 이해되십니까. 저긴 그냥 김 씨네 마피아 가문에 통치하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