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들이닥친 보위부와 예상치 못한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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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5.07 10:45


저는 유머 중에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구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만들어진 유머를 좋아합니다. 독재자와 사회주의 체제를 비꼬는 유머들이 세르게이니 안톤이니 이런 이름만 철수니 영희니 하고 바꾸면 그게 그냥 북한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이런 유머들이 북에 많이 퍼지면 좋겠습니다.

그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영국사람, 프랑스 사람, 북한사람이 함께 모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때를 서로 말했답니다.

영국 사람이 “겨울밤 집에서 양털 바지를 입고 벽난로 앞에 앉아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라고 답하니 프랑스 사람이 “너희 영국인들은 너무 진부해. 금발 미녀와 함께 지중해로 휴가 가는 것이 제일 행복하지”라고 했답니다.

그러니까 북한 사람이 이러더랍니다. “한 밤중에 누군가 문을 두드려 열어보니 ‘김철수, 너 체포 됐어’하는 거야. 그때 ‘선생님, 김철수의 집은 옆집입니다’라고 할 때가 나는 가장 행복해”라고 했답니다.

이 유머는 수시로 가정집에 비밀경찰이 찾아와 잡아가는 현실을 비꼬는 것인데,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보위부가 들이닥쳐서 잡혀가는 공포를 누구나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바로 이런 공포를 이용해 사기쳐먹는 사건도 벌어졌으니 참 씁쓸합니다.

이제 보여드릴 것이 북한 보안기관 학생 양성을 위한 교육용 자료인데, 공식 출판된 것이 아니고 실제 범죄 사실기록을 교육용으로 쓰려고 타자한 것입니다. 자, 제 뒤에 보이시죠. ‘개인 재산 강도죄 강의에 이용할 자료’라고 돼 있는데 지문을 찾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은 2004년 8월 23일 황해도 송림시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하루는 김경수라는 사람의 집에 상좌 군복을 입은 사람과 소좌 군복을 입은 사람, 그리고 병사 두 명이 들이닥쳤습니다.

김경수가 나오자 이 병사들은 그를 포승줄로 팔을 뒤로 묶어 차에 태웠습니다. 그런데 잡아가는 가 했는데 그를 무인지경, 즉 외딴 곳에 내려놓은 것입니다. 밤새껏 집에 걸어서 가보니 천연색TV 녹화기 자전거 대형선풍기 전기밥가마 손풍금 가스콘로를 비롯한 200여만 원분의 물건들과 트렁크 안에 보관하였던 110달러가 사라진 겁니다.

그래서 수사 과정에 지문을 수집하고 주변 인물을 탐방해보니 6명의 범인이 걸려들었습니다. 여기서 보듯이 ‘8월22일 사리원도로표식물보수대’ 노동자 정철과 사리원방직기계공장 노동자 리호형, 리호영의 동생인 사리원청년역 노동자 리남영, 어느 한 특수기관 승용차 운전수 채익수, 특수기관 노동자 라궁철 등 6명이 공모하여 강도행위를 감행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범죄가 8월 23일에 일어났는데 8월22일이 왜 나오는지 궁금하실 건데, 북한에는 이렇게 어느 기관 명칭 앞에 날짜를 박은 것이 많습니다. 이건 김 씨 일가가 현지시찰을 했거나 또는 방침을 내린 날짜를 앞에 박는 겁니다.

‘8월22일 사리원도로표식물보수대’라는 건 아마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이 보수대가 관리하는 도로를 지나다가 “여기 도로는 관리 잘했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밑에선 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이러면서 자랑스럽게 기관 명칭 앞에 그 날짜를 박는 겁니다. 공산주의를 만든다고 하면서 어디서 왕조의 나쁜 점만 기막히게 잘 베껴 써먹습니다.

아무튼 이번 내용에서 여러분들은 북한이 어떤 곳인지 느낌이 오십니까. 군복입고 찾아가 나오라 하니 아무 말도 못하고 포승줄에 묶여 잡혀가는 겁니다. 다른 나라 같으면 “당신들 누구야, 증명서 보자, 내가 무슨 죄를 졌어. 변호사 부르겠어”라고 할 것이지만 북한 같은 나라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보위부나 안전부에서 잡으려 왔는데 “증명서 보자, 내가 뭔 죄냐” 항의했다간 잡혀가서 매만 더 벌고, 죄만 더 높아지는 겁니다. 국가 권력 기관이 이렇게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죠. 그러니까 김철수도 따라 나선 겁니다.

체포된 인물 중에 특수기관 운전사도 있다고 했는데 아마 보위부나 보안성 승용차 운전기사일 가능성이 높죠. 북한은 모든 차 번호만 봐도 어느 기관차인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11로 시작되는 번호는 지방 당간부 차, 13으로 시작되면 내각차 이런 식입니다. 87 지방당학교, 88 재정경리부, 89 지방당 재정경리부 이런 식으로 99까지 나가고 군부는 좀 다른데, 승용차의 경우 무력부 8089, 총참모부 8069, 총정치국 8081, 보위사령부 8051 이런 식으로 나갑니다.

북에서 특히 무서운 번호가 15부터 21번 사이인데, 보안성 15, 보안성 직속 교화국 등 부속기관은 16, 지방 보안서 17, 국가보위성은 18, 보위성 직속 부속기관 19, 지방 보위부 20, 검찰 재판소 21 이렇게 차 번호가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15부터 21번 사이 숫자로 번호가 시작되는 차가 오면 바로 떨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상좌와 소좌 군복까지 입고 딱 나타나니 찍소리 못하고 따라나선 것이죠.

집에 비싼 가전제품 다 있고 달러도 있는 것으로 봐서 김경수란 사람은 돈 좀 있는 사람 같습니다. 범인들이 도둑질할까 강도할까 하다가 결정한 방법이 체포해가는 수법이었던 겁니다. 인권이란 것이 없는 북한 독재사회의 특징을 참 잘 활용한 것이죠.

집안이 다 털려도 김경수는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보위부 차에 타고 끌려갈 때 눈앞이 새까맣게 돼 ‘내가 관리소 끌려가는 것 아닐까’고 얼마나 겁에 질렸겠습니까. 특히 북한처럼 법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세상에서 앞날을 모르는 거죠.

자기가 지은 죄가 없어도 우리 사돈에 팔촌 중에 누가 정치범이 나온 것 아닐까 이러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을 겁니다. 그런데 목숨은 살고 집만 털렸으니 다행이고 물건까지 찾았으니 더 다행인 겁니다. 다만 10년은 감수했겠죠.

이번 범죄 기록은 북한이 어떤 사회인지 너무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여러분들이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누군가 불쑥 우리 집에 쳐들어와서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묶여 끌려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저는 저의 집 문을 두드리면 ‘쿠팡맨이 왔구나’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한민국이 참 좋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