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북한 소년이 해변에서 만났던 한국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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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6.04 16:06


저번 시간에 제가 자라면서 보았던 첫 한국 물건이 귀순을 권고하며 귀순 방법까지 자세히 소개한, 바다를 통해 떠온 한국 삐라였다는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삐라 말고 제가 접한 한국 물건, 한국에 대한 동경을 갖게 만들었던 것들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바다에서 삐라를 주었던 어린 소년의 이야기 2탄입니다. 주성하TV는 구독, 좋아요도 좋지만 끝까지 시청해주시면 더욱 힘을 얻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태풍이 왔다 가면 아침이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태풍이 왔다 가면 바다에서 온갖 종류의 쓰레기들이 해변에 가득 널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쓰레기 속에는 미지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것들도 꽤 많았습니다. 그것이 닫긴 세상에 태어난 어린 소년이 열린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풍이 온 다음 날 아침 맨 먼저 바닷가 해변에 나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해변을 쭉 따라 올라가며 간밤 바다에 떠온 쓰레기 중에 들을 하나하나 주어 봤습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쓰레기는 말을 몰라 읽어볼 수 없었지만 아무튼 질이 좋았습니다.

한번은 의족이 떠내려 왔는데 이런 것을 어떻게 발에 차고 다닐까 한참 연구했던 적이 있고, 슬리퍼를 일본놈들은 참 멋진 슬리퍼를 신고 다닌다며 감탄했던 적도 있고, 플라스틱 파리채를 하나 주어와 몇 년 잘 썼던 적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밀려오는 것이 맥주나 커피 캔이었습니다. 그런데 남조선에서 가장 많이 태풍을 타고 오는 것은 플라스틱 병이었다.

어느 날 ‘탁주’라고 적힌 병을 주어서 한참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성분과 용량 등 써 있는 글들을 꼼꼼히 읽어보면서 남조선에서 누가 이 병을 들고 탁주를 마시는 장면을 상상해 보기도 했는데, 탁주가 뭔지도 그때는 몰랐습니다.

플라스틱 병들은 마을 사람들이 저저마다 주어갔는데, 어떤 집에 가선 간장병도 되고 어떤 집에 가선 기름병도 되기도 했는데, 가장 많이는 술병으로 쓰였습니다. 그 많은 쓰레기를 뒤지면서 꼭 먹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꽃게해물탕’ 포장지였습니다.

저는 꽃게가 뭔지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포장지 그림을 보니 동해에서 잡는 게와 다른 모양의 게가 딱 그려져 있고, 군침이 저도 모르게 쏙 넘어갈 정도로 빛깔 좋은 해물탕이 김을 몰몰 피어올리고 있었다. 딱 보기만 해도 맛있겠다 싶어 너무 구미가 돌았습니다. 들었다는 성분을 읽어봐도 계란이니 밀가루니 하면서 너무 구미를 돋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생산지를 보니 인천광역시 무슨 구 구슨 공단으로 돼 있어 계속 궁금했습니다. 집에 걸려 있는 지도를 보면 인천은 서해인데, 그곳에서 어떻게 이런 포장지가 동해 북단의 끝까지 흘러왔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 와서 보니 라면 공장이 어디 있던 전국 슈퍼들에서 다 팔리는 것을 그땐 알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꽃게탕 말고도 라면 포장지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남조선 물건도 일본 물건 못지않게 멋지게 포장 잘됐네. 남조선도 정말 일본만큼 많이 발전했나 보지”하고 지레짐작하곤 했습니다.

제가 20대 후반에 한국에 와서 보니 제가 봤던 그 꽃게 해물탕은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온갖 종류의 먹음직스러운 포장지를 가진 라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습니다.  

저는 9살에 보면서 군침을 삼키던 꽃게라면을 29살에 먹었습니다. 먹어보니 너무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입맛에 맞는 라면이 많아 꽃게라면은 밀려났습니다. 지금은 저는 라면 하면 무파마인데, 계란 탁 풀어 넣고 먹는 걸 좋아합니다. 바다에서 봤던 탁주, 그러니까 막걸리는 너무 마셔서 제발 내 앞에 띄지 않기를 기도할 정도입니다.

1999년쯤에 옆집 사람이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다가 포장이 그대로인 일본 사발라면을 하나 주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걸 들고 와서 자기 식구는 물론, 우리 식구까지 다 불러서 사발라면 하나 놓고 7명이 모여 앉았습니다.

그 진귀한 것을 모르고 먹을 수는 없으니 일본어를 좀 아는 동네 아저씨까지 불러 그 깨알 같은 일본어가 뭔지 번역까지 다 시키고 하라는 대로 물을 부었습니다. 일본 꼬부랑 국수맛은 어떨까 군침 삼키며 기다렸다가 8명이서 한 젓가락씩 먹었는데, 한번씩 먹고는 8명 중에 더 먹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진짜 맛이 이상했습니다.

주어온 옆집 아저씨는 “일본이 잘사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맛이 없는 걸 먹고 사네. 그래도 귀한 것이니 내가 다 마시겠습니다”며 물까지 싹 다 마셨습니다. 본산 제품에 대한 우상화가 가득하던 우리는 일본 음식이 그렇게 맛이 없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정말 실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일본 라면도 괜찮았습니다. 그때 건진 라면은 유통기간은 지나지 않았지만, 몇 달을 햇볕이 쨍쨍 내리쪼이는 바다를 떠오다보니 분명 변해버렸던 것 같습니다. 썩은 라면 먹고 일본 사람들이 이런 걸 먹고 사는 가며 화를 냈던 것이죠.

그렇게 바닷가를 해매면서 플라스틱 병과 라면 껍데기를 주으면서 전혀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었던 미지의 세상에 대한 꿈을 꾸던 소년이 탈북한 뒤 인생이 확 변했습니다. 오자마자 메이저 언론의 기자가 됐고, 국제부 기자로 10년 넘게 일하면서 전 세계 각국에서 한 시간에도 몇 백 개씩 올라오는 외신을 챙겨보면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체크하게 된 것입니다.

바닷가의 어린 소년은 정말 승진한 것입니다. 이건 한번도 꿈을 꾸지 못했던 멋진 일이고, 목숨 걸고 남행길에 오른 대가를 분수 넘게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북한은 제가 살던 때와 완전히 변했습니다. 돈만 있으면 한국 라면, 소주 얼마든지 몰래 사서 먹을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아마 한국 물건을 보지 못한 사람이 없을 것이고, 한국 영화나 드라마 CD도 많이 퍼졌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북한 바닷가 마을 어디에선가, 30여년전에 한 어린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태풍이 지나간 뒤 떠내려 온 쓰레기를 집어 들고 호기심에 반짝이는 두 눈으로 살펴보는 소년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세상 밖, 그 동네에서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 바다 건너 세상에서 밀려오는 쓰레기 더미를 연애편지를 기다리는 심정처럼 두근거리면서 말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