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만화광 김정은 "한국 수준으로 만들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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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6.17 19:47


요즘에 북한에서 새 영화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김정일 시절에는 그래도 매년 10편 미만이긴 하지만, 새 영화들이 나왔고, 그중에 잘 만들었다고 스스로 칭찬하는 그런 영화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없습니다.

김정은의 치하를 받았다는 그런 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지 그 내막을 아는 사람이 이에 대해 “영화를 매년 몇 개씩 만들어 올리긴 하는데 김정은이 비준을 해주지 않아 이젠 새로 창작할 의욕도 잃은 상태”라고 전해왔습니다.

북한은 영화 창작 숫자가 적고, 또 영화를 사상적 세뇌의 중요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김정일 때부터 그의 비준을 받아야 공개돼 왔습니다. 김정은 시절에도 달라지지 않고 있는데, 그러면 왜 영화가 승인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이제부터 북한 영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2회로 나누어 이야기하겠습니다.

김정은이 집권 초기부터 영화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닙니다. 2014년 11월 김정은은 ‘조선4.26만화영화촬영소’를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북한에서 만화를 제작하는 유일한 제작기관입니다. 과거에 ‘소년장수’ ‘다람이와 고슴도치’ 등 북한 인민이 좋아한 만화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남북 합작으로 ‘뽀로로’ 제작에 참여한 곳도 이곳입니다.

당시 만화촬영소를 방문한 김정은은 북한에서 당시 가장 인기 있었다가 50부로 종영한 소년장수라는 만화를 50부 더 늘여서 100부로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했냐.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이런 말을 했답니다.

“우리 만화영화는 독창성과 매력, 높은 형상 수준과 빠른 창작 속도로 하여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세계 만화 영화계에 진출한 창작가들은 특출한 재능을 보여줘 우리가 도달한 만화영화제작기술을 남김없이 떨쳤다. 야심을 가지고 북한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만화영화 대국으로 만들어야 한다.”

만화 강국이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뽀로로나 해외 만화 수주를 좀 받아 한 것을 가지고 매우 자랑스러워했다는 뉘앙스입니다. 그리고 또 이날 “만화영화 창작에 관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강령적 지침을 지시했다”고 북한 매체가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이렇게 멋있는 말을 한 것은 아니죠. 늘 김 부자의 말씀이란 것은 선전선동부가 각색해 써주는 겁니다. 그날 김정은이 와서 칭찬도 좀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는 만화를 왜 이렇게 밖에 못 만드냐. 소년장수랑 역사 만화물은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겠냐. 내가 샘플 하나 보내줄테니 그걸 참고해서 만들어 봐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다음날 만화촬영소에 CD 하나가 왔습니다. 그런데 그 만화가 제목은 잘 모르겠는데 바로 한국 역사물 만화였다고 합니다. 김정은이 보고 참고하라고 하니 제작자들이 다 앉아서 봤답니다.

이건 뭘 말합니까. 김정은은 이미 집에서 한국 만화를 잘 보고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 어렸을 때 뽀로로를 보고 컸으니, 제가 언젠가 유튜브를 통해 말씀드리다시피 북한 관계자들이 이설주가 임신했을 때 그 아이를 위한 뽀로로를 특별히 만들어달라고 할 정도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만화를 보며 눈이 높아진 김정은이 볼 때는 자기들 만화가 성에 차지 않는거죠. 그래서 CD를 보냈는데, 또 북한 만화 창작자들은 얼마나 한심합니까. 세계의 트랜드를 읽고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 만화 한편도 김정은이 보내줘야 겨우 보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한국 만화까지 보내주며 독려하니 북한 만화가들은 80일 전투니, 100일 전투니 하면서 뽕이 빠지게 만화들을 찍어냈습니다. 무려 몇 백개나 만들었는데, 이렇게 나온 만화가 소년장수 100부는 물론, 최근까지 36부인가까지 나온 ‘고주몽’ 역시 시리즈로 나온 ‘고구려의 젊은 무사들’ 등이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갑자기 고만고만한 역사 만화가 쏟아져 나오니 무슨 일인가 놀랐겠습니다. 물론 북한 사람들이 보건대는 새로 나오는 만화가 달라진 것은 많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3D를 입히려 했기 때문에 보다 역동적이죠.

그런데 저도 몇 편 봤는데, 제 눈에는 도토리 키 대보기였습니다. 일단 스토리가 애국주의라는 고리타분함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북한이라는 우물에 갇혀 있는 작가들의 상상력이 한계가 분명히 보였습니다.

그렇게라도 만화는 갑자기 엄청 만드는데 예술영화가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김정은이 승인해주지 않기 때문인데, 제가 볼 때는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외국에 나가 할리우드 영화, 한국 영화 다 본 김정은이 봤을 때 북한 영화가 뭐가 재미있겠습니까. 천편일률적이죠.

그런데 작가들도 어쩔 수 없습니다. 조금만 잘못 썼다간 황색바람이 들었다고 숙청될 것이 분명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혁명과업 수행을 하지 않는다고 질책할 것이니 만드는 시늉은 내지만 자기들 볼 때도 재미없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 영화계는 만화처럼 속도전으로 확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다음 회에 말씀드릴 건데 아무튼 영화 창작자들도 놀 수는 없으니 새로 내놓은 혁명과업 수행이 옛날에 찍은 영화 각색하는 겁니다. 제가 얼마 전에 109상무의 영화 통제 기준을 공개했는데, 옛날 쓸만한 영화가 상당수가 ‘역적 관련 영화’ 범주에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몇 년 동안 북한 영화 제작자들은 과거 영화에서 숙청된 배우를 빼고 새 배우 넣어서 영화를 재제작합니다. 나름 신통하게 처음부터 새로 등장한 배우가 찍은 것처럼 신통하게 고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역부족인가 봅니다. 재작년부터 어떤 놀랄만한 움직임이 나타났냐면 숙청된 배우가 등장한 영화도 다시 상영합니다. 역적들과 그 관련자들의 낯짝이 비춰지는 영화 범주에 속한,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다 자결한 박미향이 나온 ‘한 여학생의 일기’가 그대로 방영되는 겁니다.

들어보니 한 여학생의 일기 주인공 박미향과 장성택의 여자 김혜경은 복권시켰다는 말도 있던데, 죽은 다음에 복권해서 뭘 합니까. 그럼에도 마지막에 엔딩을 보면 배우 이름이 쭉 나오는데, 주인공인 박미향 이름은 삭제돼 나오지 않습니다. 살아있다면, 또는 숙청되지 않은 채 죽었다면 주인공 이름만 삭제할 이유가 없겠죠.

하지만 장성택 조카사위 최웅철은 복권 안됐는지 그가 출연한 영화는 배우를 바꾸어 찍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북한 영화계가 비정상이란 뜻이겠죠. 북한 영화계의 웃기는 현실을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