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물려준 기쁨조 차출 시스템이 재가동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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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7.01 10:41


오늘은 북한 기쁨조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기쁨조하면 김 씨 일가의 즐거움을 위해 차출된 여성들을 말하는 것인데, 김정일 시절을 우선 이야기하고, 김정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하려 합니다.

우선 기쁨조 하면 어느 범위까지 기쁨조라고 해야 할지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그냥 김 씨 일가 앞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춘 여성을 기쁨조라고 할지, 아니면 곁에서 성적 봉사까지 한 여성을 기쁨조라고 할지 합의된 규정은 없습니다.

그런데 노래만 부르는 것은 예술인도 할 수 있으니 우리는 보통 중앙당 5과라는 것에서 뽑혀 김 씨 일가의 시중을 들기 위해 간 여성을 기쁨조라고 대체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북에선 기쁨조란 말이 없습니다. 김일성 시절에 1970년대 후반에 만수무강조라는 것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북에선 이들에 대해 정식 명칭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기쁨조 연역은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 시작됩니다. 1976년인가에 중앙당에 5과가 생겨서 1기를 뽑았습니다. 김정일이 전국에 별장을 잔뜩 만들어놓고 즐기려 보니 소문나지 않을 여성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김일성의 만수무강을 위해 필요하다는 식으로 핑계를 대고 전국에서 미녀만 뽑아오는 채홍사 조직인 5과를 만들었습니다.

이 별장 만들고, 여성들 뽑는 것을 김정일이 직접 못하니, 이때 손발이 돼서 김정일의 의중을 들어 다 갖다 바치고 비위를 맞춰준 것이 매제 장성택입니다. 그리고 저도 떡고물 주어 먹었죠. 그러니 장성택이 죽은 것은 동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항간에 기쁨조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많은데, 근처도 가보지 못한 여성들이 자기가 뽑혔던 것처럼 포장하며 잘못 설명한 탓이 큽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5과는 전국 학교들을 돌며 1차로 뽑고, 군, 구역에 올라와 신체검사를 하고 2차를 뽑습니다. 여성만 해당되지는 않고. 남자도 5과에서 뽑는데, 김정일 친위부대를 주로 뽑습니다.

저도 학교 때 2차 검사까지 받았는데 그때 보니 수업시간에 남자 몇 명이 들어와서 쓱 살펴보더니 “너, 일어나” “너 일어나” 하고는 교실 뒤에 가서 서게 합니다. 그리고 키와 몸매 쭉 보고 오후에 교장실에 오라고 나갑니다.

교장실에 가보니 졸업반과 그 아래 학년 아이들이 왔는데, 학교에서 예쁘다고 하는 여자애들은 다 왔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학교마다 뽑고, 다시 군이나 구역에서 뽑은 애들 모아서 병원에서 검사하는데 이때 검사는 감염이나 결핵 같은 질병이 있는지 허물이 있는지 골라냅니다.

이렇게 다시 채로 쳐서 도에 올라가면 또 신체검사를 하고, 평양에 가서 또 해서 골라냅니다. 처녀성 검사까지 한다고 알려졌는데, 이건 도 검사부터 합니다.

평양에 최종으로 뽑혀 올라가면 전국에서 50명 정도입니다. 우리의 미인대회는 자기가 원해서 나가니 숨은 미인도 많죠. 미스코리아도 제일 예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일단 키만 되면 얼굴은 의느님들이 만들어주니 운빨도 크죠.

그런데 평양은 채로 치듯이 골라내니 평양에서 최종 선발된 50명은 북에서 최고 미인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들 정보를 김정일에게 전달합니다. 우리 방명록만한 책에 1명당 3페이지씩 할애해 올려 보냅니다. 첫 페이지에는 정면사진, 측면사진, 전체 사진 등 사진 몇 장 붙이고, 두 번째 페이지에 집안과 경력 등 스펙을 자세히 적고, 세 번째 페이지에 장군님께 충성을 다 한다는 식의 혈서를 직접 쓰게 합니다.

50명이면 150페이지 분량인데 이걸 김정은이 보고 이중 10명을 골라냅니다. 그리고 2~3명씩 불러 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2명 정도 최종으로 골라냅니다. 이들은 사실상 옛날 왕조의 후궁처럼 김정일과 사냥도 다니고, 수영도 같이 하고 노래방도 같이 다니는 인원입니다. 뽑히지 못한 여성은 당시 평양 교통안전원이나 해외로 파견됐습니다.

김정일은 워낙 난봉꾼으로 놀아 일찍부터 성기능 장애를 앓았습니다. 1992년 50세쯤 때에 벌써 성관계를 하지 못하는 수준에 갔습니다. 김정일이 주지육림에 온갖 미녀들에게 파묻혀 살아서 팔자가 좋았다고 부러워하는 분이 있다면 교훈으로 삼으십시오.

김정일이 성기능 장애가 오고 나니 5과를 더 뽑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994년을 마지막으로 김정일 진상용 기쁨조 선발은 끝났습니다. 1992년에 2명, 1994년에 2명 뽑았습니다.

이들의 훈련과 김정일과의 생활은 다 설명하면 너무 기니 여러분이 요청하면 다음에 따로 설명드리겠고, 아무튼 오늘 요점은 이게 아닙니다. 그리고 1994년 마지막으로 뽑았으니 당시 뽑힌 여성들의 나이가 40대 훌쩍 넘었는데, 그러니 40살도 되지 않은 어떤 여성이 자기가 기쁨조 출신이었다고 하면 그 말은 패스하십시오.

자, 이렇게 김정일에게 여성을 공급하던 5과가 1994년 이후부터 여성을 진상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물론 친위대나 특각 관리 여성은 5과라고 뽑았지만 실제 기쁨조는 아니었죠.
그런데 어떤 조직이든 살아남으려면 일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5과가 잘 보일 일이 없어 고민이 깊어지던 때인 2011년 김정일이 죽었습니다.

5과가 드디어 우리도 살아났다고 환호했죠. 중앙당 5과라는 이미지가 세상에 널리 알려져서 명칭은 4과인지 6과인지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제가 들은 정보로는 김정일 시절 기쁨조를 진상하던 그 방식과 루트가 2012년부터 다시 부활했다고 합니다. 즉 김정은 곁으로 이제 젊고 예쁜 미녀들이 진상되기 시작한 것이죠. 다만 이제는 북한 사람들도 5과 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서 간부들은 자기 자식들을 보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고 합니다.

김정은이 아버지처럼 젊은 미녀들을 숨겨놓고 데리고 노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북한 최고의 권력자 김정은이 12년째 옆에 두고 있는 이설주에게 지금도 지고순정을 바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들은 정보만으로도 김정은은 20세 미만 시절부터 엄청 여자를 밝혔습니다. 이때는 주로 예술인과 체육인들이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동서고금에 최고 권력을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아내 하나만 사랑했다는 얘기는 거의 들은 적이 없습니다. 권력에 취하면 술에 취하고 여자에 취하게 되고 화려한 연회장을 미녀의 노래와 춤으로 채우려 하죠.

제 개인적 의견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말씀드딘다면, 분명 김정은에겐 곁에 두고 각종 봉사를 하는 미녀 그룹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5과 선발로 충족되지 않는 부분, 즉 이미 알려진 예술인 중에 김정은의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다면 이때 현송월에게 눈치를 주면 그가 상납을 맡지 않나 생각합니다.

절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나중에 무너진 뒤에 캐보면 그 악취는 대중의 상상을 초월했다는 것이 수천 년 역사의 교훈입니다. 어둠의 왕국 북한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