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처음 본 한국의 첫 느낌은 원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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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7.05 16:02


제가 작년에 탈북 스토리 3개를 올렸는데, 종종 제 탈북 스토리가 왜 더 이상 안 나오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유튜브라는 것이 소통의 공간이란 의미이기도 하니 오늘은 그럼 제가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겪었던 느낌과 하늘에서 바라 봤던 한국에 대한 첫 소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저는 탈북할 때 한국을 목표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영문과도 나오고 했고, 이왕 큰물에서 놀자는 생각이 있어 미국으로 가려 했습니다. 북한에서 탈북 계획을 세울 때 한국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고, 그냥 막연하게 미국이 제일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고, 북한을 무너뜨릴 힘도 미국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세계 지도를 놓고 수없이 루트를 모색해 봤습니다. 중국을 통해 모스크바로 간 뒤 유럽으로 건너가 미국까지 간다 이런 계획을 세웠습니다. 벌목공 갔다 온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들으면서 중국에선 우선 고려인이 가장 많이 사는 타슈겐트를 1차 목표로 하고, 여기에 머물며 모스크바를 통과해 유럽에 갈 준비를 하자 등등 계획은 치밀했지만, 중국에서 그만 체포돼 북송되는 바람에 예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감옥 6개를 옮겨 다니며 다 죽게 됐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탈북했는데, 이제 다시 잡혀가면 무조건 총살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빨리 안전지대로 가야 했는데, 미국보단 한국이 더 가까웠죠. 또 중국에서 한국 티비도 보니 거기도 좋아보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포기하고 한국에 가기로 했는데, 문제는 2002년 봄 당시에 한국으로 오는 루트가 없었습니다.

제가 온 이후에 몽골로 오는 루트, 동남아를 경유해 오는 루트 등이 생겼지만 그때는 한국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중국에 은신할 때 도와준 조선족들을 통해 한국행 브로커를 알게 됐습니다. 한국에 도착하면 1만 불을 준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때 1만 달러가 중국돈으로 8만3000위안 정도 했습니다. 사실 가격을 따질 문제가 아니었죠. 당연히 준다고 했습니다.

브로커들이 사진관에 데려가 증명사진 찍고 위조여권 만들어 가져왔고, 이걸 가지고 장춘공항에 갔습니다. 공항에서 브로커들은 한국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무조건 위조여권 찢어 버리라고 합니다. 왜 그런 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위조여권은 한국은 물론 중국 출입국관리소에서도 통하지 않을 허술한 거였습니다. 그런데 브로커들은 방법이 있었죠. 중국에서 출국 도장을 찍어주는 사람을 매수한 겁니다. 제가 8만3000위안을 주기로 했는데, 이중 3만 위안을 도장 찍는 사람에게 뇌물로 주었습니다. 도장 하나에 당시 중국 노동자 1년 치 임금보다 더 많이 받는 겁니다. 출입국 관리로 몇 년만 하면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브로커들은 탈북자들을 더욱 선호했습니다. 왜냐면 중국 사람을 위조여권으로 보내면 인천가면 다 걸립니다. 다시 중국으로 송환되면 중국에서 도장 찍어준 사람도 잡힙니다.

그런데 탈북자는 보내면 다시 중국으로 절대 돌아오지 않으니 중국 출입국 직원이 마음대로 도장을 찍어도 걸릴 일이 없는 겁니다. 이런 방식은 다른 탈북자들에게 피해 줄 것 같아서 지금까지 말을 안했는데, 벌써 20년전 일이고, 중국도 알았는지 이런 수법이 통하지 않은지 오래서 이제야 말하는 겁니다.

브로커들이 공항에서 몇 번 출구로 가라고 찍어주더군요. 그런데 언제 공항에서 여권 내고 가본 일이 있겠습니까. 완전 촌닭이라 모든 게 생소했고, 공항에서 잡히면 꼼짝 못하고 북송돼 죽으니 정말 긴장했습니다. 브로커들이 도장 찍어주는 직원을 매수했다고 하면 마음이라도 편했겠는데, 그런 소리도 안했습니다.

출국 심사대에 갔는데 이 사람이 이상하다고 소리치면 어디로 냅다 도망쳐야 할지 그 동선부터 머리에 그림을 그리고 갔습니다. 그때가 가슴이 터질 듯 가장 긴장됐었죠. 그 직원은 미리 정보를 받은 여권이 오니 한번 피뜩 보더니 도장 쾅쾅 찍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 타기까지 기다리는 시간, 비행기 타려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 모두가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장춘공항이 비행기 몇 대 없어서 그렇지 인천쯤 되면 어디 가서 뭘 타야 하는지도 몰랐을 법 합니다. 공항에 들어간 순간 이젠 도망칠 길도 막히고, 곳곳에 보이는 제복은 모두 저를 노려보는 듯 했습니다.

타고 온 비행기는 중국 국적이었는데, 비행기를 타고서도 인천까지 오는 2시간 내내 긴장했습니다. 스튜어디스가 와서 뭘 마시겠냐고 묻는데도 대답 하지 않고 손만 싫다고 흔들었다니깐요. 혹시나 중국어 말투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비행기를 되돌려 장춘에 다시 돌아갈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지만, 처음 해보는 이 생소한 비행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그때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비행기가 서해를 지나고 한국 땅이 보이니 그때에야 마음이 안정됐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한국의 첫 소감은 진한 컬러였습니다. 비행기가 지금 생각하면 강화도를 지나왔던 것 같은데, 섬을 내려다보니 지붕들이 다 파랗거나 핑크였거나 했습니다. 제가 본 중국과 북한 어디에서도 당시엔 그런 진한 원색을 지붕에 쓰지 않았거든요.

그걸 보니 한국에 왔구나 싶은 느낌이 들어 “이제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지”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공항에 내렸는데, 브로커들이 떠날 때 무조건 먼저 보이는 화장실에 가서 여권을 찢어 버린 뒤 밤까지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여객기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부터 찾았습니다. 화장실이 많아서 찾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위조여권은 찢어 변기에 버렸는데 왜 밤까지 있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때가 오후 2시쯤인데, 한 20분 있다가 “에라 모르겠다 뭐가 문제가 될 건데” 싶어 그냥 나왔습니다. 나와도 실제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인천공항은 개장 2년 밖에 안됐을 때라 너무 깨끗했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간 순간 “내가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장실이 궁전 같았습니다. 중국의 어느 부자집도 이렇게 화려한 대리석 집에서 살지 못하니 여기에 이불 깔고 살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2000년대 초반 중국에서 살다 한국에 와보니 다 그런 느낌일 겁니다.

출입국 수속하는데 가서 “북조선에서 왔습니다”고 하니 어떤 반응이었을까요. 분명 여러분이 궁금해 하실거니 그렇다면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중에 브로커 비용 1만 달러는 1년 안에 다 주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초기 1년은 진짜 돈이 없어 장기까지 팔 수 있음 팔려고도 했습니다만, 브로커 비용만큼은 다 챙겨준 이유가 제 목숨 값이 1만 달러보단 훨씬 비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탈북자 중에 한국에 와서 브로커 비용을 안주어서 싸움이 많이 나는데, 그 돈으로 자기 목숨 살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자기 목숨 값이 브로커 비용 정도밖에 안되는 헐값입니까. 브로커 비용이기 전에 자신의 생명과 존엄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해 지불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LC 07/05 17:58 수정 삭제
출입국 수속하는데 가서 “북조선에서 왔습니다”고 하니 어떤 반응이었을까요. 분명 여러분이 궁금해 하실거니 그렇다면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와 이런 식으로 끊는 법이 어디있습니까. 남한 드라마 그만 좀 보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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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07/06 19:41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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