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초월 북한 연예계 썩어빠진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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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7.09 16:43


제가 유튜브 시작한 뒤 300개 가까운 영상을 만들었지만 아직 진짜 19금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작정하고 한번 하겠습니다.

단지 야한 이야기가 아니라 김 씨 일가가 지배하는 북한의 추잡한 속살을 드러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들으면 기가 딱 막히는 연예계의 추문들을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평양의 가장 중심지를 꼽으면 중구역 노동당 당사일겁니다. 여기에 김정일 집, 지금은 김정은의 집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앙당 당사 근처에 고위급 저택들도 있습니다. 중앙당사 근처에 봉화역이란 지하철역이 있는데, 여기서 내려서 좌측으로 돌아가면 3층짜리 고급주택들이 있습니다. 작가동맹 위원장 했던 월북작가 천세봉도 여기서 살았는데, 그 근처에 조선영화촬영소 총장만 약 30년 했던 백민의 집도 있었습니다.

백민이란 이름은 김일성이 지어준 이름인데, 본명이 김유흥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무슨 재간을 부렸는지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말까지 영화계 수장인 예술영화촬영소 총장 자리를 30년 넘게 지켰습니다. 북한이 자랑하는 ‘민족과 운명’ 엔딩에도 제일 먼저 백민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의 집에 가면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다녀간 집’ 이런 내용이 적힌 간판이 붙어있는데, 한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다녀가서 빨간 간판 잔뜩 붙어있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한 방에 몽땅 김일성, 김정일과 찍은 사진이 꽉 차 있습니다.

백민은 어떻게 김일성, 김정일의 신임을 받았을까요. 여러분들이 짐작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랫동안 김 씨 일가에게 여배우를 상납하는 일을 소문없이 해왔기 때문입니다. 백민의 부인도 북한 국립연극단 단장을 오래 했는데, 이 부부만 장악하면 북한 연예계는 다 장악하겠죠. 부인은 나중에 은퇴한 뒤엔 고려호텔 앞에 있는 음식점거리 통닭집 책임자를 했습니다.

연출가 출신의 백민에겐 외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름이 김별인데, 1952년생입니다. 워낙 아끼는 아들이니 평양 시내 보위부 청사 경비병으로 보냈다가, 몇 년 안돼 대를 이어 혁명을 한다면서 제대시켜 평양연극영화대학 보내 연출을 공부하게 했습니다. 이 김별이 워낙 난봉꾼이었습니다. 북한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영화촬영소 총장의 외아들이고, 본인도 영화감독이니 당연히 눈에 뵈는 것이 없겠죠.

김별은 1970년대부터 아버지 집에 당대의 대다수 여배우들을 끌어들여 난잡한 생활을 벌였죠. 뜨지 못한 여배우들은 물론 유명 여배우들도 영화계 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는 총장집에 가서 총장 아들과 인연을 쌓는다는 것 자체를 엄청난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 김별이 자기만 논 것이 아니라 자기 딱 친구들도 자주 초대했습니다. “오늘 홍영희랑 오미란이 부르는데, 너는 홍영희 맡으라우”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1970년대만 해도 맥주가 아주 귀한 것이었죠. 서로 취하면 윗방 가고 아랫방 가고 질펀하게 놀죠.

친구가 “우리 이러다 걸리는 거 아니냐”하면 김별이 “야, 얘들 다 김정일이 실컷 데리고 논 애들이야. 우리는 그러면 안돼” 이랬답니다. 그리고 여배우들도 워낙 권력자들에게 많이 당했는지 그 집에 들어오면 그걸 당연한 코스로 여기고 거부감이 없더랍니다. 19금 이야기를 하자니 좀 민망하지만, 할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오늘은 품위를 좀 버리겠습니다.

아무튼 친구도 김별이 덕분에 당대의 스타인 우인희하고도 자보고, ‘이름없는 영웅’들이란 영화에서 뜨기 전의 김정화도 자고, 혜산에서 금방 올라와 영화연극대학 다니던 홍영희랑도 자봤답니다.

꼽아보니 한 10년 정도 다니면서 자기는 단지 김별과 친했다는 이유로 90여명의 여배우를 겪었답니다. 이 친구란 분이 지금 탈북해 한국에 있는데, 자랑할 이야기는 아니니 그냥 자기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제게 해주었습니다. 거짓말할 분은 아닙니다.

자기가 그 정도니 김정일은 1000명은 훌쩍 넘을 거라네요. 아무튼 영화계에 뉴페이스가 오면 다 김정일이 불렀답니다. 영화계만 그랬겠습니까. 1980년대 염청이란 가수를 또 김정일이 엄청 좋아했다네요. 아무튼 북한 인민이 아는 스타는 다 김정일이 특별히 아끼던 애첩들이었던 것이죠.

부부 바꾸어서 하는 스와댕도 1970년대 북한 고위급 자식들 속에서 유행했다는데, 들으면서 북에서 산 저도 황당해 입이 벌어지더군요. 아무튼 지저분해서 다 옮기진 않겠습니다.
한번은 궁금해서 우인희보고 “김정일이랑 잤을 건데, 김정일꺼는 어느만해?”라고 물은 적도 있답니다. 우인희가 요만하다고 하는데, “아이고, 작네”하고 비웃기도 했답니다. 김정일이 키가 작은데 당연 그렇겠죠.

이 친구가 우인희 총살할 때도 참가했는데 총소리가 나자마자 수천 명의 한꺼번에 “와”하고 내지르던 비명소리가 생생하다고 하네요. 일부 사람들이 풀썩풀썩 주저앉았는데, 나중에 그런 사람들 또 골라내서 반동 죽이는데 동정했다고 또 사상투쟁회의를 했답니다.

우인희가 죽을 때 입고 나온 보라색에 가까운 투피스 옷은 그와 승용차에서 함께 자다 죽은 주정기가 선물한 옷이랍니다. 일본에서 공주들 입는 옷이라고 우인희가 제일 좋아한 옷이라고 합니다. 죽기 전까지 우인희는 자기는 죽지 않을 줄 알았다고 하네요.

그런데 들어보니 우인희도 정말 숱한 남자들 만난 것 같고, 또 김정일의 신체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김정일이 죽인 것 아닐까요. 상식으론 김정일이 건드린 여배우를 다른 사람이 손을 대면 안 되겠지만, 그때는 1970년대이고, 또 대다수 여배우 다 건드렸는데 어떻게 일일이 통제하겠습니까. 그러니 김별이 같은 사람도 있는 겁니다.

김별은 연출가이니 1980년대 ‘청춘거리’라는 영화를 하나 연출하긴 했는데, 1992년 40세에 일찍 죽었습니다. 워낙 술고래였는데, 원산에 영화 찍으러 갔다가 술에 취해 화장실 간다는 것이 3층 문을 열고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의 부인은 평양 승호구역 당비서 딸인데, 남편이 죽은 뒤 해외 파견 공작원과 재혼했고, 하나 있던 아들은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냈습니다. 백민은 김 씨 일가에 여자를 상납하고 입을 막아준 덕분에 잘 살다가 2002년 10월에 죽었습니다. 죽을 때 직책이 영화촬영소 고문총장 겸 문화성 혁명사적관 고문관장이었습니다.

여러분, 북한 연예계가 얼마나 썩었는지 상상이 되십니까. 적어도 한국보다는 덜 썩지 않았을까 생각하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방금 들은 일부 이야기만으로도 상상이 되겠죠. 하긴 윗대가리가 그 모양이고, 법도 언론도 없는데 아랫물이 맑겠습니까.

그럼 지금은 안 그럴까요. 천만에요. 고위간부들 숙청될 때 여배우들 함께 없어지는 건 지금도 똑같습니다. 수십 년 썩은 물이 어떻게 깨끗해 질 것이며, 지금도 원로 행세를 하는 여배우들이 다 그렇게 살았는데 신인들이 뭘 보고 배우겠습니까.

이게 어디 연예계의 이야기겠습니까. 썩은 사회가 한군데만 썩는 법은 없습니다. 충격적인 북한 연예계 실태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