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땅 차이로 갈린 남북 공작원들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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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7.13 15:14


제가 자랄 때 우리 마을에 아들이 1960년대 남파됐다 죽은 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아마 김신조 부대나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때 남파됐다 죽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 명절 때마다 중앙당에서 선물 박스가 꼬박꼬박 내려옵니다. 촌에선 구경하기도 힘든 남방과일과 당과류, 옷감 등이 왔고, 지역 간부들이 책임지고 이 집을 돌봐주더군요.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북에서 온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북한은 출신성분 엄청 따지는데, 6.25전쟁 전사자 가족은 무조건 간부 대상입니다. 즉 자손들까지 웬만큼 모자라지 않으면 다 간부로 등용해준다는 뜻입니다.

남파됐다 죽으면 웬만하면 공화국 영웅 칭호를 주는데 이들 자손은 무조건 만경대혁명학원 나와서 6.25 전사자보다 훨씬 더 큰 대우를 받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북한에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면 정부에서 우리 가족은 평생 돌봐준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1996년 강릉잠수함 사건 때도 여러분 기억하시죠. 11명의 승조원이 포위에 들자 집단 자살한 채 발견됐습니다. 말이 쉬워 자살이지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한 줄로 서 있는데, 옆에서 탕~하는 총성과 함께 동료들이 하나하나 차례로 쓰러지고 내 차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십시오. 소름이 끼치지 않습니까.

그런데 승조원들의 시신을 보면 동요도 없이 줄을 지어 서서 차례로 죽음을 맞은 것이 드러납니다. 이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일이죠. 무엇이 북한 승조원들을 이런 괴물로, 죽음을 초월한 존재로 만들었을까요.

세뇌도 중요하지만 바로 가족 때문이 가장 큽니다. 여기서 체포되면 내 가족은 다 죽겠지만, 내가 여기서 죽으면 공화국영웅이 되고, 가족들도 간부로 키워준다는 믿음이 있죠. 실제로 제가 유튜브를 통해 말씀드렸지만, 북한은 그때 죽은 사람들 자식들은 다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냈고, 부인들은 평양에 불러올려 군복 입혀서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원래 국가란 이렇게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은 가족까지 돌봐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제가 한국에 와서 가장 이해되지 않은 일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예우였습니다.

독립운동가 가족이 어떻게 살았는지 제가 더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한국에 와서 다음해에 실미도란 영화가 나왔습니다.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평양에 보내 김일성의 목을 따오라는 임무를 맡길 정도면 나라의 운명을 걸고 목숨을 걸라는 신임을 준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실컷 훈련시켜서 대우를 해주지 않아서 반란을 일으키게 만들다니, 제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공작원들은 북한이라면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이런 사람들에게 잘못 대했다가는 웬만한 간부들은 다 잘립니다. 북한에서 공작원은 결혼할 때는 미모의 여성 사진 쭉 펴놓고 고르라고 합니다. 임무 몇 번을 잘 수행하면 영웅이 돼서 평생 국가의 대우를 받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서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이 이렇게 판이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오자마자 또 북파공작원 시위가 자주 있었습니다. 가스통 굴리는 과격행동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죠. 이들의 요구는 실체를 인정하고 대우하라는 것이고, 정부는 보상하면 정전협정 위반 사실이 드러난다고 난처해합니다.

시위에 참가한 공작원들을 향해 북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난동을 부린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보상을 받은 공작원들도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북파공작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의 억울함도 이해가 됩니다. 정부가 약속한 것을 지불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가, 세금이 남아돌아 연말이면 보도블록 다시 까는 나라가 저 정도 약속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건 시각의 문제입니다. 북한 같으면 남파 공작원은 국가의 최고 엘리트로 대우해주는데, 우리는 상황에 따라 쓰고 버리는 귀찮은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아닐까요.

2000년 9월에 북한이 데려간 비전향장기수 63명 중에 46명은 남파 공작원들이었습니다. 북한이 이들을 잊지 않고 끝까지 데려간 모습만큼은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할 점입니다. 북한은 이들을 데려 가서 감옥에 있었던 기간을 보상해 준다면서 부총리급에 해당하는 고급 주택을 주고 나이 차이가 30~40년씩 차이가 나는 젊은 아내도 얻어주었습니다.

이렇게 북한은 남파간첩도 당당하게 데리고 가는데, 우리는 왜 존재조차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1951년부터 남과 북이 공작원 침투를 자제하기로 약속한 1972년까지 1만여 명의 북파공작원들이 파견돼 이중 7726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고 합니다. 10명에 7~8명은 돌아오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의 위험이 높은 임무를 수행하고도, 전사한 뒤 명패조차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도 없었습니다. 존재가 없는 사람들로 취급받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죽었다는 통보가 가족한데 제대로 가지도 못했습니다.

손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10명 중에 절반 만 죽는 임무라 해도 거기에 갈 용기가 있습니까. 저도 없습니다. 민주화운동 유공자가 되기 더 쉬운지 지뢰가 깔린 DMZ를 넘어가기 더 쉬운지 삼척동자도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보훈처 차장이 국가유공자로 서류를 조작해 연금을 받고 있을 때, 빈민으로 살고 있는 북파 공작원들은 거리에서 가스통을 굴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분노할 일입니다. 얼마 전 동아일보에선 독립유공자, 6·25전쟁 참전유공자 등을 포함한 보훈대상자 1600여 명이 비닐하우스와 판잣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는 단독보도를 했습니다. 젊어서 나라를 위해 싸우고 늙어선 비가 새는 비닐하우스에서 삽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가기 위해선 이것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나라이니 천안함 장병들에게 온갖 막말이 가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연평해전 때 참수리 357호 영웅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우리가 다 봤지 않습니까. 우리의 젊은이들은 필요할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용기가 있습니다.

천안함 해병들도 필요할 때 목숨을 바칠 각오로 근무했을 겁니다. 예상치 못한 급습으로 침몰해 싸울 기회는 잃었지만,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온갖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퍼 나르는 그런 인간들도 발편잠을 잘 수 있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것입니다. 그런 인간들의 안녕을 위해 지금도 전방에서 젊은이들이 목숨 내대고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개탄스럽습니다.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피를 흘렸음을 자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이 될지, 아니면 전쟁이 나면 앞장서 도망치기에 바쁜 대한민국이 될지는 우리 손에 달렸습니다. 우리의 인식이 달라질 때 국가도 바뀝니다. 요즘 세태가 너무 한심해 비록 저는 북에서 온 사람이지만, 오늘 유튜브 영상을 통해 호소해 봅니다. 국가유공자는 내일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