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회장이 보낸 소 잡아먹고 처형된 사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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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7.29 16:12

제가 지난해 8월에 정주영 소떼 방북 때 윗선의 지시를 거부하고 양심을 선택했다가 비참하게 죽은 북한 중앙수의방역소 서성원 소장에 대한 방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정주영 회장이 보내준 소를 잡아먹고 사형당한 2명의 청년과 역시 사형장에 섰다가 살아난 다른 2명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소떼 방북과 연관돼 벌써 제가 3명의 죽음을 전하게 됐는데, 연관된 죽음들은 더 있습니다. 오늘은 그 소들이 어디로 갔는지도 최초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한국에서 보내준 소들이 북한의 전쟁예비물자로 지정됐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은 정주영 회장에 보내준 소를 먹었다는 이유로 처형당할 뻔하다가 구사일생으로 탈북해 한국에 온 분이 전해준 것인데,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에 와서 그 일을 말하니 조사당국이 “밖에 나가 이 이야기 절대 하지 말라. 말하면 너는 큰 해를 입는다”고 하더랍니다. 아마 햇볕정책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것 같아 그런 것 같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1998년 6월과 10월 소 1001마리를 끌고 북에 갔습니다. 이 소들의 행방에 대해선 확실히 밝혀진 바가 없는데, 지금 밝히겠습니다.

평남 양덕군에 은하리라고 있는데, 김일성이 많은 애정을 기울인 농장입니다. 은하리 청년분조 하면 북한에서 유명합니다. 정주영 회장의 소들은 이 은하리에 있는 자연 방목하는 목장에 몽땅 보내졌다고 합니다. 김정일이 당시 소를 여기에 보낼 때 “전쟁예비물자로 하라”는 지시도 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한국에서 보내준 소들이 군수물자가 됐다는 것인데, 전쟁 나면 수송용으로 쓰든가 잡아먹든가 하는 운명이 된 것이죠.

이렇게 말하면 한국 사람들은 분노하겠지만, 한편으로 김정일 입장에서 보면 저는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소를 몰고 간 것도 저는 이해가 되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이벤트라고 봅니다.

김정일의 입장에서 보면 소가 대량으로 왔는데 이 소들이 방목 소들이라서 농사에 쓸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잡아먹을 수도 없으니 인적이 드문 양덕에 있는 야생목장에 보내 최대한 남쪽에서 살던 환경에 맞춰 살게 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양덕 목장은 소를 길들여 농장에 보내는 일도 합니다. 또 전쟁예비물자로 지정하면 군수품이니 감히 누가 소를 다칠 엄두도 못내는 것입니다.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절이라 북한에 대기근이 와서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였습니다. 은하협동농장에서 약 100리 떨어진 곳에 유명한 고원탄광이 있는데 여기서도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사람이 배고프면 죽더라도 한 번이라도 잘 먹고 죽자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1999년 6월 양덕과 고원에 사는 30대 청년 2명이 양덕에 소가 많은데 한번 훔쳐 먹자고 계획을 세웁니다. 배고픈 사람들 눈에야 한국소나 북한소나 다 고기로 보일 게 아니겠습니까.

소를 잡자고 제안한 사람은 안전원의 아들이었습니다. 직접 들어가 소를 끌고 나와 개울가에서 죽이고 비닐로 싸서 주변에 파묻은 사람은 탄광 의용군 출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의용군이라고 하면 6.25전쟁 때 북한군에 참전한 한국 출신을 말하는데, 결국 북한에 속은 거죠. 북한군에서 싸웠으면 전쟁 참가자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한국 출신자란 이유로 탄광에 끌려가 평생 힘들게 살았습니다. 남쪽에서 간 소가 남쪽에서 올라간 사람의 아들 도끼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 두 명이 소를 잡아 삶아 먹으려니 술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친구들을 찾아가서 좋은 것이 생겼으니 너는 술을 좀 사오라고 했답니다. 탈북한 분도 친구가 고기를 먹자고 술을 사오라고 하니 자기 솜옷을 팔아 술을 사가지고 가서 염소 고기인줄 알고 같이 먹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북한의 수사에서 다 잡혔습니다. 한 달 넘게 고문 받고 4명 모두 공개재판장에 끌려갔습니다. 한국에 온 분은 국군포로의 아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와보니 삼촌이 한국군 장성까지 했다고 하던데, 북한에 포로가 된 형은 탄광에 끌려가 비참하게 살다가 일찍 사고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북한 수사기관은 출신성분이 제일 나쁜 포로의 아들을 주모자로 사건을 꾸미려했는데, 소를 죽이고 사형장에 나선 의용군 출신의 아들이 죽는 순간까지 의리를 지켜 “저 형님은 진짜 소고기인줄 모르고 먹었다”고 지켜보는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치는 바람에 사형장까지 끌려갔지만 사형이 취소돼 다시 감옥에 돌아왔습니다.

의용군 아들은 반동으로 그 자리에서 처형됐고, 소를 잡으라고 지시를 한 안전원 아들은 감옥에서 죽였습니다. 안전원 아들은 출신성분이 좋아서 공개적으로 죽이면 여론이 안 좋아진다고 감옥에서 설사병 걸리게 해 조용히 죽였답니다. 물론 안전원과 그의 친척들은 다 제대시켜 추방됐다고 합니다.

북한은 원래 소를 중요한 농사수단으로 보고, 소를 잡아먹으면 사형에 처합니다. 너무 배고파 소를 몰래 잡아먹고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북한에서 일반 소도 아니고 정주영 회장이 보낸 소를, 또 김정일이 지정한 군수물자를 잡아먹었으니 어쩌면 잡히면 사형을 당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오죽 배가 고팠으면 잡히면 죽을 것을 알면서 그랬을까요.

증언자는 사형은 면하고 돌아왔지만, 한달 넘게 계속 고문을 당했답니다. 이번에는 “장군님 잠바를 왜 술과 바꾸어 먹었냐”는 말도 안 되는 죄로 감옥에 보내려 한 것입니다.

장군님 잠바가 뭐냐면, 당시 김정일이 입고 다니던 겨울 외투를 본 따서 북한 사람들이 다 그런 스타일로 입고 다녔는데, 그걸 장군님 잠바라고 했습니다. 겨울 동복을 사려 가면 장마당에서 파는 게 다 그런 것이었는데 이걸 팔았다고 죄랍니다. 출신성분이 나쁜 포로 아들을 어떻게 하나 죽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도 사연이 있는데, 아무튼 이 분은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탈북을 했습니다. 그 이후 증언자의 남동생은 속도전청년돌격대에 있었는데 형이 달아났다고 감옥에 끌려가서 죽었습니다. 누나는 한국 동생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고문 받다가 죽었습니다.

이 분에게 참 예쁜 누이동생이 있었는데, 오빠, 언니가 탈북하거나 잡혀 죽으니 자기는 어떻게 하나 살아보겠다고 휴전선 근무 중에 지뢰를 밟아 하반신이 마비된 영예군인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북한에서 공로를 세운 하반신 마비 상이군인과 결혼하면 좋은 일을 했다고 살려둘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국군포로의 가족은 하반신 마비 영예군인에게조차 무시를 받다가 맞아죽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온 분만 빼고 온 가족이 다 죽은 겁니다. 이런 말을 전하면서 저도 정말 치가 떨립니다. 김 씨 정권은 어떻게 이처럼 악랄할 수 있을까요. 그 죄의 대가를 어떻게 치르게 하면 좋겠습니까.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