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서울 나들이 때 영등포사창가에서 충격받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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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2021.08.01 18:41


지난달에 제가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오던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 의외로 꽤 많은 분들이 보셨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국정원에서 조사받다가 서울 시내 첫 나들이를 나갔던 이야기를 해드릴까 합니다. 첫 나들이 때 간 곳이 사창가였는데,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주성하TV는 구독, 좋아요도 좋지만 끝까지 들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저번에 조사기관 들어가던 이야기까지 했죠. 저희 때는 조사기관이 대방동에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여긴 더 사용하지 않고, 이미 북한도 충분히 다 알고 있으니 그 정도는 말해도 됩니다. 얼마 전 국정원이 시흥에 있는 합심센터를 일반에 공개하던데 20년 전 조사기관 위치 정도는 비밀도 아니죠.

여기 들어가면 중국에서 입고 왔던 옷들 다 벗어 반납하고 운동복 같은 것을 줍니다. 그걸 입고 어느 방에 갔는데, 지금 들어오는 탈북민들은 한국 가면 조사한다는 것은 다 알고 옵니다만, 저는 혼자 왔으니 그런 것도 몰랐습니다. 조사기관에 왔구나 하고 제 감으로 짐작을 하는 겁니다.

처음엔 큰 방에 들어갔는데, 한 두 시간쯤 있다가 탈북자가 하나 더 들어옵니다. 북에서 영화를 찍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둘이 좀 친해질만 할 때 또 들어와요. 그날 저녁 5명 정도 모였습니다. 모두 들뜬 심정으로 통성명하며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죠. 하루밤 자고 나니 다음날 아침 불러내더니 각각 따로 독방에 보냅니다. 감옥처럼 그런 것은 아니고 한 6~7평 되는 방에 화장실도 따로 달려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창문 내다보는데 앞에 건물 창문에 어떤 젊은 여성이 역시 저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내다보는 겁니다. 눈이 마주쳤죠. 유리창에 손으로 글을 써서 언제 왔냐, 이러면서 독방에서 조사받는 기간 둘이 심심할 때마다 창문에 글씨를 쓰며 대화를 했습니다.

그 여성이 나중에 우수 정착 사례로 조선일보 1면에도 나는데, 서울에서 여성 버스운전기사로 일하는 유금단이라고, 들어본 분들이 있을 겁니다. 독방에서 외로워 창문으로 소통했던 때가 어제 같은데 시간이 지나니 다들 잘 정착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독방 조사는 일주일 정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있는 방으로 옮겨가서 전체로 치면 두 달 정도 조사를 받았습니다. 어떤 조사를 받는지 그것은 나중에 말할 기회가 또 있겠죠. 이런 과정은 많은 탈북민들이 말해서 새롭진 않을 건데, 제가 왔던 2002년과 나중이 다르더군요. 요즘은 조사기간이 더 깁니다.

제가 있을 때가 좀 짧았던 것 같습니다. 그해에 갑자기 탈북민들이 좀 많이 들어와서 조사 능력이 한계였던 것 같습니다. 저보다 한 5년 정도 빨리 온 사람들은 반년 넘게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대답이 틀리다고 지하실에 끌고 가서 묶여서 무지막지하게 구타당한 사람들이 좀 있다고 들었는데, 김대중 정부 들어서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는지 저희 때는 구타가 없었습니다.

조사기간에 두 번 외출을 했습니다. 조사가 거의 마감할 때 옷 사려 간다고 불러내더군요. 1인당 몇 십만 원 한도에서 기본적인 옷을 사주는 겁니다. 혼자 간 것이 아니고,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요원과 함께 여성 두 명이 함께 갔습니다.

제가 앞자리에 앉고, 뒷자리에 여성 두 명이 앉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디인지 딱히 모르겠습니다. 영등포쪽 백화점에 간 것 같은데, 가서 저는 양말, 속옷 이런 것부터 시작해 15만 원 주고 양복도 한 벌 맞췄습니다.

식품매장에 각종 식품이 가득 쌓여있는 것을 보고 역시 풍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크게 충격적이진 않았습니다. 중국에서도 백화점에 가면 그랬습니다. 탈북해 중국 백화점에 들어갔을 때가 진짜 충격적이지, 한국에 오니 우리말로 쓰여 있는 물건이 좀 더 풍족하게 가득 차 있을 뿐 구조는 비슷했습니다.

중국에 살다 온 탈북민이 한국에 와서 풍요로움에 눈이 뒤집혔다는 이야기하면 저는 좀 갸우뚱합니다. 아니, 중국에서도 백화점 식당 다 봤을 건데, 깡촌 살다 왔나? 아무리 촌에 살아도 한국 오는 동안 도시는 거치지 않나 이런 생각 듭니다.

충격적인 것은, 그때 데려간 요원이 일부러 그랬는지 아님 길이 거긴지 몰라도 영등포 사창가를 쭉 관통해 차를 몰더군요. 천천히요. 하긴 거긴 속도를 내지도 못합니다. 그건 충격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서울 시내 외출에 거길 가다니요. 북한에서 남조선 젊은 여성들은 온통 거리에 나가 몸을 판다는 선전을 들었던 터라, 백주 대낮에 서울 중심에 버젓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근데 고개를 돌리고 보진 못하겠더군요. 차가 지나가니 창문에 다가오며 유혹하는데, 그때는 제가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뒤에 여성 동무들이 두 명이나 앉아있지 않습니까. 제가 고개 돌려 옆을 보면 자본주의에 유혹당했다고 돌아가서 소문 낼 것 같기도 했죠. 사내가 유혹이 흔들리지 않는 자존심은 보여야죠. 그런데 이럴 때는 여자들이 더 잘 보더군요. “어머, 어머” 하면서도 볼 건 다 봐요.

저는 목이 막대기가 돼 앞만 보긴 했지만, 솔직하게 수천만 년 진화된 수컷의 본능은 어디 가겠습니까. 앞은 다 보이고, 목을 안 돌아가도 눈알은 돌아갈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진짜로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더라고요.

성매매 여성들이 속옷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옷을 입고 나와 키스를 날려대며 유혹하는데 저는 솔직히 그때까지 야동도 본적이 없는 순진한 총각이었습니다. 한국에 온 뒤 아직 아가씨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봤다면 인천공항에서 본 정도입니다. 그런데 거기는 저에게 관심이나 줍니까. 유혹하느라 그랬긴 했지만, 저를 보고 요염하게 웃어주고 키스도 날려주었던 첫 아가씨들이 성매매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제 눈엔 너무 예뻤어요.

키도 늘씬하고, 몸매도 멋있고, 피부도 뽀얗고, 요염한 미소까지, 아무튼 북한과 중국에서 봤던 여성들과는 차원이 달라보였습니다.

“저런 미인들이 왜 여기 나와서 남자를 유혹하지? 저런 미녀도 먹고 살기 어려울 정도로 남조선이 살기 힘든 세상인가?”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최초의 서울 나들이 때 3~4분 동안 그 사창가 거리를 지나가면서 저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라 불리던 그 요원은 우리를 왜 거기로 데려갔을까요. 일부러 들어간 것 같기는 한데, 장남삼아 통과했는지, 아니면 반응을 써서 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탈북민도 저 같은 경험을 했을까요.

여의도 사창가 아직 있는 진 몰라도 그때 가보고 거의 20년째 살아도 거길 가본 적이 없습니다. 피해가죠. 솔직하게 얘기하면 다른 데도 간 적은 없습니다. 하나원 나와서 4개월 뒤부터 기자를 하다보니 한번만 걸리면 제가 목숨 걸고 온 보람이 없어지는 그런 무서운 곳에 갈 마음이 없었던 겁니다. 기자 아니고 다른 일을 했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진짜 예쁜 국정원 누나 두 명을 만났습니다. 한국 와서 처음 이야기를 나눈 아가씨가 되겠죠. 그런데 재수가 없었어요. 오늘은 시간이 다 돼서 이 이야기는 다음에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